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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04. 2024

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9

238


238.


 블라디미르의 몸은 계속 줄어들었다. 뱀의 가죽이 내용물을 빠져나가 쪼그라들듯 부풀어있던 청년의 몸은 줄어들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막아야 했다. 물은 분명 신체에 뚫려 있는 구멍을 통해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거나, 피부가 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신체를 가득 채우고 있던 물이 피부를 통해서 나오는 것 중 하나일 것이다. 피부의 피막을 뚫고 나오는 것이라면 피부의 손상이 심각하게 된다. 일반인 같지 않은 블라디미르의 피부가 변이를 일으킨다면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블라디미르의 증상을 막아야 한다는 강한 신념에 마이어스는 사로잡혔다. 문을 있는 힘껏 찼다. 비밀번호를 계속 눌렀다. 도어의 잠금장치는 4번의 오류가 나면 컴퓨터가 비밀번호 시스템 자체를 스스로 파기해 버린다. 도어의 스크린에는 어떤 숫자도 나타나지 않았고 문은 더욱 강력하게 입을 다물었다. 마이어스가 노라를 부르며 유리문에 붙어서 블라디미르의 변화를 바라보고 있을 때 블라디미르 상병이 침대 위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의 몸은 근육이 하나도 없는 등 푸른 생선처럼 매끈한 인간의 몸을 하고 있었다. 물로 만들어진 억지스러운 피부처럼 보였다. 마이어스는 놀란 눈으로 블라디미르를 바라보면서 입으로 크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봐, 블라디미르 나야, 그동안 자네를 돌봐온 사람이라구!”


 블라디미르는 털이 하나도 없는 몸으로 천천히 자신의 몸에 붙은 호스를 잡아당겼다. 뇌사상태의 블라디미르는 침대 위에 누워 있어서 늘 눈은 감고 있었다. 마이어스는 아직 블라디미르의 눈동자를 보지 못했다. 침대 위에 상체를 일으켜 호스를 떼고 있는 블라디미르는 눈은 뜨고 있었지만 그 속에서 눈동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흰자위도 검은 동자도 보이지 않았다. 안구가 하나의 회백색으로 쪄낸 오래된 두부의 색 같았다. 눈을 깜빡이지 않아서 더욱 공포스럽게 보였다. 마이어스는 그 모습에 많이 놀라서 멍하게 블라디미르의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때 노라가 열쇠를 들고 왔고 열쇠를 꽂아서 문을 오픈하려면 두 사람이 한꺼번에 두 개의 키를 동시에 돌려야 한다. 특수훈련을 받은 경비원과 노라와 마이어스는 합을 맞춘 다음 문을 열고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블라디미르의 눈에서 진한 물감처럼 강한 자줏빛의 포자가 서서히 발하기 시작했다. 그 빛은 프리즘 에메랄드를 굴절하여 관통한 7개의 빛깔이 모두 자줏빛으로 나오듯 빛의 색이 강했으며 블라디미르는 천장을 향해서 자줏빛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그 불길한 자줏빛은 하나의 빔으로 모아지기 시작했다. 블라디미르는 괴성을 지르며 노라와 마이어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블라디미르와 눈이 마주친 경비원들과 나라와 마이어스는 시야가 순식간에 협착이 왔고 눈에서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바닥에 쓰러졌다.


 블라디미르는 자줏빛 빔을 쏘아대는 동시에 몸에서 흘러나온 방대한 양의 체액이 연구실 안을 찰랑거리며 번지다가 콘센트에 흘러들어 가 전기스파크를 일으키며 불이 붙기 시작했다. 불은 서류를 태우고 휘발성 알코올 성분이 있는 약품에 붙더니 더욱 혀를 날름거리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불은 삽시간에 연구실을 화염으로 휩싸이게 만들었다. 벙커 안의 블라디미르가 누워있던 연구실은 모두 타버렸고 노라와 마이어스 역시 화염에 휩싸여 새까맣게 타버린 시신만 확인되었다.   



  

 의사는 마동에게 왓킨스와 블라디미르의 예를 들어주었다. 침착하게 이야기를 하는 의사에 비해 마동은 가슴에서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블라디미르의 연구실에서 모두 죽었는데 그런 사실을 어떻게 사람들이 알았죠?”


 “정보는 그렇게 쉽게 소멸하지 않습니다. 정보의 시대로 접어든 지는 아마 백 년도 더 됐을 겁니다. 모든 부분은 정보를 통해서 자료가 남거나 이동을 합니다. 정보는 유전자와 같습니다.”


 소피도 비슷한 말을 했다.


 “연구실은 모두 불에 타버렸지만 그 상황을 카메라는 꾸준히 담고 있었고 그 기록이 A-1034584 c-8 서류에 기재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블라디미르 체르마니노프는 연구실을 빠져나갔던 모양입니다. 미국의 군부는 엄청난 집단입니다. 우리의 상상 그 이상이죠. 그들은 불에 모든 것이 홀라당 타버린 연구실에서 블라디미르의 흔적을 발견했고 그가 빠져나갔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블라디미르는 잉구리댐에서 터진 수마로 인해 왓킨스와 흡사한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결론을 내린 미국 군부는 블라디미르의 수색을 하게 됩니다. 미군수뇌부는 미국전역에 경보를 내리고 미 특수 군과 CIA에게만 비밀리에 블라디미르의 흉상을 알리고 체포하라고 명령을 하달합니다. 비밀수색을 하게 되죠. 하지만 블라디미르 상병은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막강한 미국정부의 수색에 발각되지 않고 3년 동안 도망 다녔습니다. 블라디미르의 외모는 일반인들과 많이 달랐을 텐데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3년이 지난 후 블라디미르가 발견되었을 때는 완전한 시신으로 발견됐죠. 3년 동안 블라디미르는 군부의 첩보망을 피해 다녔는데 발각되지 않은 게 다행일지도 몰랐습니다.”


 “아마도 3년 동안은 행복하지 않았을까요?”


 마동은 의사의 말을 듣고 외모가 많이 다른 블라디미르가 길다면 긴 3년을 어떻게 지냈을까. 3년 동안 다녀야 하는 블라디미르의 마음에 애써 다가가 보려 했다. 마동은 자신의 왜 블라디미르에게 애착을 가지는지 의문이 들었다.


 “3년 동안 어땠을까요? 행복했을까요? 아니면 행복을 느끼지 못했을까요?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그걸 알고 있는 당사자는 입을 다물어 버렸으니.”


 “기이한 것은 말이죠, 3년 동안 블라디미르와 마주친 사람들이 그를 집에서 며칠 재워주고 음식을 나눠줬습니다.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같이 앉아서 티브이를 보기도 했어요. 블라디미르는 사람들에게 일반론에서 벗어난 어떤 무엇인가를 제공한 모양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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