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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18. 2024

하루키 오마주 소설 2 -4

제목미정

2-4


https://brunch.co.kr/@drillmasteer/3996


멀리서 보면 그저 움직이는 물체 같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작은 사람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럴 수밖에, 원숭이니까. 그러나 원숭이라고 해도 사람처럼 걸었다. 팔이 길어서 뒤뚱거리며 걸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았다. 어쩌면 속도를 조절해서 사람처럼 걷는지도 모른다. 원숭이가 그 정도로 정교하게 생각을 하는 것일까. 나는 좀 더 빨리 걸어서 원숭이를 따라잡았다. 원숭이는 나를 힐끗 보더니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했다.


놀라지 마십시오, 저는 인간의 언어를 할 줄 압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저는 시나가와 원숭입니다. 부를 때 시나가와 원숭이라고 불러 주세요.


나는 놀라지 않았다. 원숭이가 인간의 말을 한다고 해서 그게 그렇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마치 이 마을에서는 사람들이 네 발로 다닌다고 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저는 저기 돌고래 호텔에서 일을 합니다. 손님은 오늘 거기 체크하셨지요?라는 시나가와 원숭이의 말에 나는 그렇다고 했다.


저는 시나가와에서 꽤 오래 살았답니다. 거기에서 인간의 손에서 자랐기에 인간의 언어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바다 건너 이 먼 곳까지 온 거지?


네, 지진 때문입니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저는 죽을 뻔했답니다. 그때 저를 구해준 사람에 의해 여기 이곳까지 오게 되었어요. 이곳 불영계곡의 물도 아주 좋습니다. 오래전에는 이것보다 더 깨끗하고 맑았다고 합니다. 그때 저는 아직 태어나기 전이라 잘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단지 저를 키워주신 주인은 물리학 박사로 클래식을 아주 좋아했답니다. 사모님께서도 저를 아주 좋아해 주셨고요. 두 분에게 자녀가 없었기에 저를 자식처럼 보살펴주었습니다. 이런 말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금술은 좋아서 밤에는 사모님의 신음 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시나가와 원숭이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큰 소리로 웃었다. 원숭이의 웃는 모습을 보니 현실감이 뚝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원숭이도 웃을 줄 안다. 웃고 싶을 땐 모두가 웃어야 한다.


너는 돌고래 호텔에서 일을 하니?


네, 그렇습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을 하는데?


호텔에서 필요한 일을 합니다. 잡일 같은 것이죠. 작은 전등을 간다던가, 술심부름을 한다던가, 청소라든가, 수건 수거 같은 것들 말이죠. 숙박시설에는 손이 많이 갑니다. 이렇게 시골에서 사람들을 많이 부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저 같은 원숭이를 채용해서 적은 월급으로 잡일을 시킬 수 있죠. 물론 채용 계약서 같은 건 업습니다.


술심부름이라는 건?


방으로 술을 배달하는 겁니다. 저는 방 안으로 직접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문 앞에 두고 갑니다. 그러면 손님이 문을 열고 가지고 들어가죠. 돌고래 호텔의 맥주는 정말 맛있습니다. 저는 비싸서 사 먹지 못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손님이 남긴 맥주를 마실 때가 있습니다.


시나가와 원숭이는 맥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몹시 기분이 좋아 보였다.


맥주도 마실 줄 알아?


그럼요, 그 맛있는 걸 왜 못 마시겠어요. 돈이 없어서 잘 못 마실 뿐입니다.


그럼 내가 사줄게, 그런데 우리 방에는 일행이 잠들어 있는데 어디 마실 수 있는 곳이 없을까?


그렇다면 제 방에서 마시지 않겠습니까? 누추하지만 그래도 꽤 아늑하답니다. 그리고 원숭이 방 치고는 아주 청결합니다. 저는 청결에 대해서는 까다로운 편입니다.


우리는 어느새 호텔 앞으로 왔다. 시나가와 원숭이는 바로 자신의 숙소로 가자고 했다. 시나가와 원숭이는 능숙한 자세로 호텔의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로비에는 우시카와가 앉아 있었다. 그러나 우시카와가 아니었다. 우사카와였는데 우시카와가 아니었다. 엘리베이터로 가면서 보니 우시카와의 모습을 한 번데기 같았다. 마치 물로 된 고무풍선을 덮어쓴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바늘로 찌르면 탁 하고 터지면서 그대로 바닥으로 흘러버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째서 우시카와의 모습일까.


저건 뭘까? 나는 시나가와 원숭이에게 물었다. 원숭이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엘리베이터의 꼭대기 층을 누른 다음, 저건 공기번데기 같은 것입죠.


공기번데기?


네, 일종의 이데아 같은 것입니다. 아니 메타포인가. 아무튼 허상입니다. 그러나 존재하고 있는 허상입니다. 허구이지만 허구라는 것이 실제 하는 것에 반하는 것이라 한다면 이 허구나 허상은 그것대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아마 이 세계에 그림자를 두고 어딘가로 가버린 것 같군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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