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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17. 2024

하루키 오마주 소설 2 -3

제목미정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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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 마을에 도착했지. 그 마을에도 먹을 건 없었네. 하지만 우리는 필사적으로 먹을 것들을 찾고 있었어. 김치든, 배추든, 벌레든 뭐든 입으로 넣을 수 있는 것들은 전부 찾아서 먹었어. 굶주림은 인간을 변하게 만드네. 나는 그때 봐서는 안 될 장면을 봤다네. 우리 부대에는 굶주림과 다리에 파고든 균 때문에 반은 미친 병장이 있었지. 그는 복귀를 하면 훈장을 탈 거라고 위에서 그랬지. 그는 의기양양했지만 마치 몸속에 또 다른 사람이 들어있는 것 같았어. 그 병장은 너무 배가 고팠던 채로 일주일을 버텼지. 그때 우리 모두가 다 그랬어. 계속 행군을 했어. 행군만이 이동의 수단이었어. 헬기도, 그 어떤 지원 수단이 오지 않았어. 원래는 전투대대에서 전차와 지프를 보내기로 했지만 줄간에 전부 공격을 받고 차단되었지. 우리는 말 그대로 고립되었던 거야. 200킬로미터 이상 행군을 해야 했어. 중간에 마을이 나오면 수탈했지. 어떤 군인은 부녀자를 겁탈했지. 끔찍한 풍경이 이어졌지.


그는 그 마을에서 아기가 우는 소리가 듣기 싫었지. 아기도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려 있었네. 아기는 우는 것만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던 수단이었지. 하지만 병장에게 그 소리는 신경을 긁는 소리였던 거야. 그 마을에서 이틀을 머물렀네. 사람들은 우리 군인들을 보며 겁에 질려 있었네. 무려 이틀 동안이나 말이네. 병장은 매달리는 아기의 엄마를 발로 차고는 칼이 붙어 있는 장총을 하늘로 들었지. 그리고, 그리고 그 아기를 공중으로 던졌어. 그리고는.


나는 그때를 잊기 위해 이렇게 술을 마시지만 술을 마실 때마다 그때의 일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지. 나는 미래가 없어. 그저 과거만, 추악한 과거만 있다네. 전쟁이 끝나고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우리는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했지. 사람들을 학살했다는 이유였네. 나는 죽을 날만 기다리네. 술을 매일 엄청나게 마시는데 정신은 점점 말짱해지지. 이해하겠나?

 

이해는 오해의 일부분이다. 나는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맥주를 한 잔 마셨다. 노인이 겪은 일은 이해하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나 따위가 그런 엄청난 일을 당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를 할 것인가. 이해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노인이 겪은 일들은 이미 정해진 것들이 아닐까. 이미 그렇게 고통을 받게 정해져 있다. 정해진 것들은 시스템에 아무리 공격을 가해도, 설령 시스템이 어딘가 망가졌다고 해도 멈추지 않고 정해진 대로 이뤄진다.


나는 주인 할머니에게 잘 먹었다고 인사를 했다. 주인 할머니는 내가 먹다가 남긴 열목어 한 마리를 포장해 주었다. 나는 고맙다고 다시 한번 인사를 했다. 혹시 깨어났다면 나카티 씨에게 열목어 구이를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늦은 밤은 아닌데 마을은 컴컴했다. 집들은 대부분 불을 끄고 자는 모양이었다. 그나마 불 밝히고 있던 상점이나 다방, 가게들이 하나씩 불이 꺼졌다. 사람들도 보이지 않고 개 짖는 소리 하나 없는 마을은 적요 그 자체였다. 동네는 작았는데 다시 돌아서 걸어오니 나는 꽤 멀리까지 걸어갔다는 걸 알았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카페 여주인에게 메시지를 보낼까 하며 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가 넣기를 몇 번이나 했다. 바람도 한 점 없는 초가을 밤이었다. 고작 자동차를 몰고 몇 시간 떨어진 곳으로 왔는데 세상의 끝에 온 기분이었다. 하늘을 보니 별들은 여전히 쏟아질 것처럼 가까이 있었다. 저 수많은 별들 중에 유난히 반짝이는 별이 이란이 일까. 죽고 난 후 그 사람의 소중한 것들을 떠올리면 하찮은 물품이나 그 물품을 사용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반짝거리고 예쁜 모습이 떠오를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돌고래 호텔이 이 마을에 어울리는 이름일까. 경치는 좋은 곳이었다. 진작 알았다면 민박 집에 머물렀어도 좋을 곳이었다. 민박 집 앞에는 개울이 흐르고 있어서 여름에는 시원하고 지금 같은 계절에는 개울이 흐르는 소리를 듣는 것도 좋았다. 돌고래 호텔에서도 개울이 흐르는 풍경이 보이고 소리도 들리지만 이 마을과 이질적인 호텔이 수상했다. 하지만 어떻게 수상한지, 무엇 때문에 수상하다고 나는 생각이 드는지 알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나카타 씨가 잠들어 있다. 배도 고플 텐데.


밤이라 가로등도 없고 그저 달빛과 자동차들이 도로를 지나가는 불빛에 의존해서 시야를 확보하고 있는데 저 앞에서 검은 무엇인가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도대체 저게 뭘까. 어두운데 질감이 다른 작은 무엇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 물체가 내가 가는 길 앞에서 가고 있었다. 속도가 느리지는 않았지만 빠르지도 않았다. 적당한 속도로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그 움직이는 물체가 무서워야 하겠지만 나는 저것의 정체가 궁금했다. 빠른 걸음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다가가서 보니 외투를 뒤집어쓴 원숭이었다. 원숭이가  후드티셔츠를 입고 두 발로 걸어가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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