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Jun 20. 2024

하루키 오마주 소설 2 -6

제목미정


2-6


https://brunch.co.kr/@drillmasteer/3996


이런 이야기 손님 이전에 누군가에게 한 번 한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이제 맥주도 다 마셨고 나는 내 방으로 가야겠어. 만나서 반가웠어.


여기서 나가실 때는 조심해서 가야 해요. 잘못 문을 열었다가는 세계의 끝으로 가게 됩니다.  


세계의 끝?


네, 세계의 끝에 있는 마을입죠. 들어갔다가는 나오는데 무척 힘들 겁니다. 아니면 나오지 못하게 되거나 말 입죠. 엘리베이터가 손님의 방이 있는 층에 도달하기 전에 한 번 멈출 겁니다. 그때 호기심으로 내리지 마세요.


혹시 그 마을이 의식의 마을인가?


나의 말에 시나가와 원숭이는 축축한 벽면의 한 지점을 바라보았다. 마치 시계를 보듯이. 그러나 거기에 시계 같은 건 없었다.


네, 그럴지도 모르죠. 어쩌면 무의식의 마을에 더 가까울 지도 모릅니다. 그 마을은 자신이 만든 마을이거든요. 그래서 그 마을에서 나오지 못한다면 저는 구해드릴 수 없다는 말 입죠.


시나가와 원숭이의 안내를 받아 엘리베이터를 탔다. 시나가와 원숭이는 덕분에 맥주와 열목어 구이를 잘 먹었다며 오늘은 배부르고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을 거라며 인사를 했다. 인사하는 꼴이 영락없는 사람이었다. 엘리베이터에 타고 2층을 눌렀다. 나카타 씨의 졸음 덕분에 우리의 숙소는 2층이었다. 엘리베이터는 탔을 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어떤 분위기냐고 묻는다면 제대로 답하기는 어렵다. 그럴 때가 있잖은가.  시나가와 원숭이의 숙소 방으로 가기 위해 올라탔을 때의 엘리베이터보다 어쩐지 깨끗한 느낌이었다. 새것 같은, 마치 사람이 한 번도 타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문득 삶이 힘겹다 느껴질 때,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어딘가에서 자주 본 문구였다. 광고에 주로 쓰이는 문구. 휴대전화 문자로 광고 문구가 날아왔을 때 보면 이런 문구였다. 삶이라는 게 문득 힘겹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늘, 언제나 힘겹다. 문득 그걸 잊고 지낼 뿐이다. 그때 문이 열렸다. 아직 2층에 도달하지 않았다. 시나가와 원숭이가 묵는 층과 비슷한 복도였다. 축축하고 습한 냄새가 났고 복도는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시나가와 원숭이는 내리면 안 된다고 했지만 안 내릴 수 없었다. 어두운 복도의 한 편에 쥐가 서 있었다. 쥐는 모습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


여긴 어쩐 일이지? 쥐가 물었다.


이란이 수목장에 들리려고. 자넨 나이를 먹지 않은 것 같아.


쥐는 나의 말에 의미 없는 미소를 지었다.


나이를 먹으면 돌이킬 수 없는 숫자가 많아지는 법이야.


계속 거기에 머물러 있었나?라고 나는 물었다. 쥐는 커피 한 모금 마실 정도의 틈을 두고 말했다.


여기 있었지. 언제나 여기에 있었네. 그렇다고 해도 자네나,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다 알고 있지. 하지만 나는 어둠에 속한 상태로 있는 거야. 계속 그런 상태에 머물다 보면 어느새 몸이란 것은 하나의 가설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머리를 천장에 부딪히면 아프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고, 배의 상처도 쉴 새 없이 아프단 말이네. 발바닥으로 땅을 느껴.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감촉에 지나지 않아. 그것은 말하자면 몸이라는 가설 위에 성립되어 있는 일종의 개념에 불과한 거야. 그러니까 신체는 이미 소멸해 버렸지만 개념은 남아서 그로 인해 몸이 나름대로의 기능을 하는 거야.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하루키 오마주 소설 2 -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