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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25. 2024

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10

259


259.


 마트에 도착할 때까지 마동은 불편하고 어중간한 모습으로 아이스박스를 안고 있었다. 양손으로 아이스박스를 가슴에 대고 수산시장을 나와 조금 걸었고 수산시장으로 올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한번 택시를 탔고 택시는 착실하게 두 사람을 마트 앞에 내려놓았다. 마트에 들어서서 보관함에 아이스박스를 넣어두고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여름밤의 대형마트는 기분 좋은 놀이터가 되기 때문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밤의 마트는 해수욕장만큼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마동과 는개가 들어간 마트는 곧 망할 것처럼 한산했다. 사람들이 없어서였을까. 매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인사를 하는 마트의 친절 요원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여름의 밤이면 가족단위나 커플 또는 친구들끼리 대형마트를 찾아서 모여드는데 이상한 일처럼 인적이 드물었다. 인적이 드물다고 하는 말은 도심지 외각에 있는 산속에서나 어울릴법한 말이다. 적어도 도시 속 여름밤의 대형마트에서는 어울리는 말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너무 없는 거 같지 않아?”


 “밤이니까요.”


 흠.


 그녀는 여전히 마동을 이끌었다. 일층에서 지하로 내려가면 식품매장이 있고 채소와 과일코너로 두 사람은 내려갔다. 이곳의 대형마트는 처음인 그녀겠지만 성능 좋은 내비게이션처럼 막힘없이 채소를 찾아서 움직였다. 허연 김이 서린 곳에서 쑥갓과 사과들이 수줍은 속살을 드러내고 자신들을 데리고 갈 사람들을 맞이했다. 과일의 색은 유난히 짙고 반질거렸다.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과일과 채소는 마트 안의 조명을 받아서 더욱 바구니에 담고 싶은 모습처럼 보였다. 하나를 구입하면 하나를 더 주는 행사상품도 많았다. 단지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하나하나 꼼꼼하게 과일이나 채소를 눈과 손으로 확인했다. 오감을 전부 열어서 물건을 골랐다. 는개의 움직임과 물건을 고르는 눈빛은 그녀 나이의 여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좀 더 성숙한 여성으로서의 눈빛이었다. 채소를 만지는 손놀림이나 과일을 바라보는 눈빛은 꽤 오래된 전문가처럼 보이기도 하고 10년 차 가정주부처럼 보이기도 했다. 는개는 마동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것저것 세밀하게 확인했다. 마동 자신도 마트형 인간이라 식품을 고를 때 꽤 까다롭다고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체험한, 냉철하게 비교하는 는개를 보면 그동안 자신은 비교적 간단하게 식품을 구입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는개는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지 않는 것일까.


 그녀는 마동이 듣던 안 듣던 채소의 구입요령에 대해서 하나하나 설명을 하며 물건을 골랐다.


 “당신, 매운탕 좋아해요?”


 낭패다. 뭐라고 해야 할까. 어떻게 말해야 할까.


 마동은 매운탕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회를 먹을 때면 맛있게 먹어왔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여러모로 달라졌다. 좋아한다고 말한 후 먹지 않으면 음식을 만들어 준 그녀가 분명 실망할 것이다. 좋아하지 않아, 하고 말하기도 난처했다. 여자는 늘 남자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는개는 매운탕을 이미 만들어주려고 버섯이나 쑥갓 같은 매운탕용 채소를 구입하는 것을 마동은 보았다.


 “맛있게 먹을 줄은 알지.”


 는개가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쑥갓을 시작으로 하여 버섯을 구입하고 미나리를 구입했다. 철 지난 미나리지만 매운탕정도에는 괜찮다고 했다. 나무로 된 질 좋아 보이는 접시도 구입했다. 동그란 도마처럼 보이는 접시였다.


 마트에 이런 것도 팔다니. 없는 게 없군. 정말 는개는 배가 고픈 걸까.


 카페에서 는개의 눈은 명확하게 배가 고프다고 했다. 여자들은 배가 고프면 화를 내는 것이 일반론이라고 어느 잡지에서 읽었다. 허기와 공복의 상태가 번갈아 오면서 정신의 질을 떨어뜨리는 상태가 된다. 그건 마동이 회사의 연수에서 폐건물에서 여실이 느꼈었다. 그럼에도 철인 같은 체력으로 마트를 휘젓고 다닐 수 있는 는개를 보고 마동은 존경심마저 들었다. 누군가를 존경하는 마음은 위대한 업적을 이뤘을 때 드는 것이 아니었다.


 “집에 와인 잔은 있어요?” 는개가 바구니에 담긴 쑥갓을 만지며 물었다.


 “물론, 싸구려지만 두 개가 있어”라고 마동은 자신이 들고 바구니 속의 쑥갓에 문제가 있나 살펴보면서 대답을 했다.


 “두 개……. 라…….” 는개는 묘한 미소를 입술 옆으로 만들었다. 간파되지 않는 미소였다.


 “두 개씩 팔더라고.”


 마동은 어째서 그런 미소를 짓는 거지? 하는 시선을 던졌지만 는개는 그냥 지나쳤다. 그녀는 와인코너에서 와인을 구입했다. 마동에게 원하는 와인이 있냐는 그녀의 말에 마동은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지 않느냐,라고 했다. 와인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고 하자 는개는 와인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런데 비싼 와인일수록 고급식당에서 많이 남긴다고 하던데 왜 그런 거지?”


 “글쎄요, 왜 그럴까요?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고급와인을 남기는 이유는 그곳에 일하는 사람들도 고급와인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요. 값비싼 와인을 고급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마구 맛볼 수는 없기 때문에 고급손님이 남기고 간 고급와인을 맛보며 고급와인에 대해서 손님들에게 설명을 해 주고 추천을 해 줄 수 있데요. 그렇게 와인의 세계는 순환하는 거죠.”


 마동은 어쩐지 미덥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는개가 마동의 옆구리를 찔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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