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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는 목가적 2

그 장면은 목가적이었다

by 교관

2.


초등학생이라지만 운동부라는 활동과 어머니가 안 계시고 여동생과 아버지와 살고 있던 제이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못한 탓에 또래에 비해 훨씬 성숙했다. 아버지의 폭행 때문에 제이의 얼굴에는 어두운 구석이 많았다. 늘 술에 취해있던 아버지는 엄마가 집을 나간 이유를 제이에게로 돌렸다.


제이는 가난했지만 단란했던 우리 집을 부러워했고 놀러 와서 밥을 먹고 실컷 놀다가 나의 어머니가 싸준 반찬을 들고 집으로 가곤 했다. 그런데 갑자기 기억의 공백이 크게 자리를 잡고 시간이 비행기처럼 지나가버렸다. 제이는 아버지를 따라 타 지역으로 간다며 마지막을 눈물이 고인 눈으로 눈물은 흘리지 않고 떠났다. 그 뒤로 연락이 끊겼다.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변변찮은 사무실에 다니던 무렵 새벽의 이곳 전통시장의 통닭 골목에서 우연히 제이와 마주쳤다. 아니, 제이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 녀석은 오래전 제이가 아니었다. 얼굴은 조금 커버린 얼굴이었지만 노숙자와 같은 모습으로 양손에는 하얀 목장갑을 끼고. 머리를 며칠 동안 감지 못했는지 머리카락은 방향성을 잃은 어린 강아지처럼 볼품없었다.


나는 다가가서 반갑게 아는 척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제이가 수음을 다 할 동안 기둥 뒤편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렸다.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다. 바지를 올리는 소리가 났고 나는 조용히 제이에게 가서 아는 척을 했다.


하지만 제이는 나를 알아보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 녀석의 눈은 처음으로 코뿔소를 대하는 모습의 눈빛이었다. 묘하고 깊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눈으로 나를 잠시 동안 바라보더니 [백 원만]라고 말을 했다. 그리고 아무런 말은 않은 채 백 원만, 백 원만, 백 원만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나는 주머니를 뒤져 오백 원짜리 하나를 건넸다. 제이는 목장갑을 낀 손바닥 위의 오백 원을 쳐다보더니 바닥에 버리고는 어딘가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백 원만, 백 원만 하는 말만 했다. 제이는 걸을 때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쳐져서 걸었다.


나중에 시장 상인들에게 들은 이야기로 아버지에게 맞아서 뇌를 다쳤다는 것이다. 손에 잡히는 온갖 것들로 머리를 맞았다고 했다. 아버지가 휘두르는 폭행에 뇌가 파괴당하고 나를 비롯한 어린 시절의 기억과 자신의 과거를 몽땅 봉인해 버렸다. 후에 시장의 통닭 골목에서는 제이가 행인들을 상대로 백 원만을 쫓는 앵벌이 장면을 왕왕 볼 수 있었다. 제이가 시장에 나오는 날은 산발적이었다.


제이가 통닭 골목에 나타나는 날이면 거리의 아이들이 나무 꼬챙이 같은 걸 들고 제이의 다리나 엉덩이를 찌르며 백 원만 백 원만을 따라 하며 놀려댔다.


왼쪽 뇌가 파괴된 제이를 지금은 아예 볼 수가 없다. 상인들에게 퍼진 소문은 허다했다. 방파제 근처에서 앵벌이를 하다 파도가 삼켰다는 소문도 있었고, 자동차에 치여 죽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 소문에는 자동차에 치여 바닥에 머리가 갈려 피를 흘리면서도 백 원만을 소리 냈다고 했다. 그때 한 여름의 새벽에 기둥에서 수음을 진심으로 하던 제이는 지극히 목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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