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11

315

by 교관


315.


“병실에서 누워있는 딸아이를 두고 나올 때 아파서 아빠를 절박하게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나와야 합니다. 제게는 무엇보다 그 모습이 안타깝고 아픕니다. 그래서 범인을 잡아야 합니다. 꼭 잡고 싶어요. 수빈이에게 아빠는 이렇게 나쁜 사람을 붙잡는 일을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끝끝내 못 잡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결과를 알고 있으면서 하릴없이 이렇게 다니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아세요?” 류 형사의 눈빛도 절박했다. 고독한 눈빛이었다. 다른 건 없었다. 개념도 없었다. 원망이라든가 타인을 향한 경멸도 없었다. 오로지 지금은 고독함을 지닌 눈빛이었다.


“애비 되는 입장에서 늦게 가진 딸아이인데 고장 난 신장을 물려 준거 같아서 너무 마음이 안 좋습니다. 그 아이 생각을 한다면 열심히 뛰어다녀서 살인범을 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결과는 이미 나와 있습니다. 범인이라고 하는 존재가 만약, 만약에……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는 힘을 가지고 있다면 전 그 범인에게 무릎을 꿇고 내 딸아이의 병을 고치는데 힘을 좀 써 달라고 빌고 싶습니다. 사건을 조사하면서 그 닿을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 무엇이 존재한다면 그 힘을 딸아이를 낫게 하는 데에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지요. 제 입장이 되면 별에 별 생각을 다 하게 됩니다. 딸아이와 같이 있어줄 시간도 없습니다. 박봉이라 돈을 없지요. 병원비는 천정부지로 부풀어 갑니다.”


류 형사는 갑자기 말을 뚝 끊고 허탈한 모습으로 크게 웃었다. 사고가 갑자기 우주로 내팽겨진 듯 난처하게 웃었다. 이유 없는 슬픔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고민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그 크기가 물리적이지 않아서 가늠할 수 있는 분량은 아니지만 각각이 지니는 고민은 깊이가 꽤 깊고 곪을 대로 곪아서 어떤 식으로든 터지기를 바라는 고민이 대부분이었다. 류 형사의 허탈한 큰 웃음은 그의 얼굴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웃음이 류 형사의 얼굴에서 이탈하여 혼자서 억지스러운 웃음을 만들어 류 형사의 얼굴에 아무렇게나 들어가서 붙어버린 웃음 같았다. 외부에서 힘이 센 조각가가 손으로 얼굴을 주물럭거려 만들어 놓은 웃음이었다.


“집에 들어가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없을 정도입니다. 병실에도 못 가본 지 3일째입니다. 진척이 보이지 않는 사건을 붙잡고 있어서 내 입장에서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것입니다. 지푸라기가 있으면 잡아서 내 몸을 칭칭 감고 싶은 심정이죠. 발생한 사건은 전무후무 할 겁니다. 이런 일이 예전에는 없었지요. 앞으로도 이런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예전에 없던 것들이 요즘에 생겨나는 건 허다합니다. 몸속의 기생충을 몰아낸 인간은 이제 아토피라는 것에 걸리지요. 아토피도 예전사람들은 걸리지 않았던 질병이지만 요즘 아이들은 아토피라는 질병 때문에 고생을 심하게 합니다. 부모입장은 힘이 듭니다. 물론 아이자신이 제일 힘이 들겠지만 말입니다.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원인이 있고 과정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그동안 훈련을 받아왔습니다. 경찰들이 대부분 그렇듯 말이죠. 매뉴얼이 다 있어요. 아주 체계적이고 명료합니다. 통찰력과 직관보다는 합리와 논리로 사물을 판단하는 겁니다. 그래야 정확하니까 말입니다. 그 뒤에 받쳐 주는 것이 통찰과 직관이다, 이 말입니다. 그런 제가 말이죠. 음…….”


틈이 길었다. 마동은 긴 틈을 고요하게 기다려 주었다. 류 형사도 애써 할 말을 찾으려 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류 형사는 이미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렇게 훈련을 받고 경력을 쌓아온 제가 말이죠. 그러니까 지금 당신을 보는 순간 뭐랄까. 알 수 없다고 해야 할까. 마동 씨에겐 우리들이 닿을 수 없는 힘 같은 거 말이죠. 아, 마동 씨에게서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진다는 말은 아닙니다. 것보다 당신은 그 힘을 가진 존재에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왜 그런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알 수 없는 건 언제나 왜 그런지 모른다는 겁니다. 왜 그런지는.” 너덜 해진 볼펜의 끝이 끝내는 류 형사의 입으로 들어갔다.


“어떤 사람들은, 그, 왜? 눈을 들여다보면 응원 같은 힘이 느껴져서 파이팅을 하게 되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간혹 있더라 말이죠. 경찰생활을 하면서 그러한 사람들을 몇 명 만나봤습니다. 그 힘은 정말 강렬했습니다. 모르는 이로 하여금 파이팅을 불러내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은 모른 채 아무렇지 않게 우리들 속에 같이 살고 있었던 것이죠. 간혹 아이의 엄마가 위험에 처한 자신의 아이를 구한다거나 하는 초인적인 힘도 뿜어내게 됩니다. 코치가 선수들에게 파이팅을 불어넣어 주듯 일반적으로 스치는 사람들에게 응원을 받는 힘을 느끼게 된다는 건 상당히 놀라운 일입니다. 직장상사에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가 그 무엇을 대신할 수 없는 힘을 지니게 하기도 합니다. 마동 씨는 직장생활을 하시니 더 잘 알 수도 있을 겁니다.”


류 형사는 비워버린 커피 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마동은 류 형사에게 커피를 권했고 류 형사는 속이 안 좋다는 모션을 취한 후 괜찮다고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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