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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14.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90

4장 1일째 저녁


90.


 마동은 달리다가 사념이 가득한 목 없는 사람들이 불쑥 나타는 바람에 이어폰을 빼고 멈춰서 숨을 쉬었다. 이어폰에서 스타 쉽의 ‘낫띵스 고나 스탑 어스 나우’가 마동의 마음과는 다르게 신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동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사람들은 바다가 제공하는 정취를 마음껏 누리고 있었다. 다시 달렸다. 그리고 상상 속에서 벗어나 꿈 리모델링 레이어 작업을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오로지 머릿속에서만 말이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하루였는데 머리의 회전이 빠르게 움직인다는 것에 놀랄 뿐이었다. 그리고 역시 불안했다. 다시 팔뚝을 보니 땀이 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살갗이 뽀송했다.


 조깅코스에서 잠시 벗어나 대형 전자마트 앞으로 갔다. 대형 전자마트는 해안가에 자리 잡고 있었고 맞은편에는 더 큰 초대형마트와 가전마트도 같이 있었다. 밖에서 보이는 전자마트 안의 티브이 속에서 나오는 일기예보는 이번 주가 지나면 본격적인 무더워가 시작될 거라는 예보를 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불볕더위가 닥쳐오면 가전제품을 판매하는 대형마트에서 냉방기기를 구입한다. 냉방기기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냉방기기는 엄청나게 팔려나가서 각 가정에서 하루 종일, 여름 내내 돌아간다. 여름은 더 더워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그런 것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당장 시원해야 여름을 견뎌낼 수 있었다. 전자마트 티브이 속에서 일기예보가 나왔지만 마른번개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마른번개에 대한 이야기는 공중파 방송 3사 어디에도 언급을 하지 않았다. 마동은 다시 해안의 조깅코스를 달리기 시작했다. 조깅코스의 중간중간 운동기구들이 있어서 근력운동을 하기도 했다. 쇠로 만들어진 운동기구를 손으로 꽉 잡는 순간 어제 내린 비 비린내와 쇠 비린내가 뒤섞여 묘한 냄새를 풍겼다. 한데 섞인 비린내는 지배적이었다. 그건 마치 앞으로 일어날 어둠의 학살의 냄새였다. 마동의 머리를 짓뭉개는 압도적인 냄새였다. 어제 이전에는 도저히 맡아보지 못했던 강력한 냄새가 코로 힘 있게 들어와서 머리를 강타했다.


 웅웅. 우우 우웅.


 이명이 귓전으로 파고들었다. 그 소리는 혼선된 전화소리처럼 마구잡이로 혼재되어서 정제되지 않은 소음으로 귀 안에 있는 달팽이관을 비롯해서 소리를 감지하는 여러 기관을 세차게 흔들었다. 순간 머리가 아팠고 조여왔다. 마동은 해안가의 운동기구들이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잠시 멈춰 섰다. 유리벽에 쇠가 갈리는 이명 소리 때문에 조여 오는 머리를 부여잡고 허리를 굽히고 이명이 주는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고통은 5분 동안 마동을 어마어마하게 무섭게 만들었다. 5분여 동안 강도 높은 지진 같은 이명은 왔을 때처럼 갑자기 사라졌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잠시 왔다 가버린 고통이 있고 나서 마동은 천천히 일어나서 몸을 푼 다음 다시 달렸다. 해안의 조깅코스 끝은 등대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이어졌다. 등대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서 묘한 감정의 눈빛을 보이는 개 한 마리가 보였다. 그 개는 대형 그레이트데인 견으로 마동을 바라보는 눈빛이 낯익다는 느낌이 들었고 눈빛 속에는 그리움이 잔뜩 깔려있었다. 마치 전쟁에 참여한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의 눈빛 같았다. 보통의 개라는 존재가 지니는 눈빛과는 달랐다. 마법사가 저주를 걸어 놓은 개처럼 보였다. 마법사는 동물의 외형만 바꿀 수 있었지, 눈빛은 바꾸지 못했다. 대형견은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옛날의 그리운 전경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마동은 그런 내용의 이야기가 앉아있는 대형 그레이트데인의 눈빛을 보고 떠올렸다. 대형 그레이트데인 견을 지나쳐 등대 속으로 들어갔다. 등대 속으로 달려가는 머리 위 하늘에서 마른번개가 한 줄기 떨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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