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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15.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91

4장 1일째 저녁


91.


 집에 들어오니 자정이 넘었다. 늘 달리는 조깅코스의 거리보다 10킬로미터를 더 달렸다. 20킬로미터에서 23킬로미터 가까이 달렸다. 평소보다 2배를 더 달렸지만 힘이 들고 숨이 차오른다는 느낌은 없었다. 마동은 자신의 몸에 대한 변화를 감지하고 달리는 것에 집중하며 등대에서 집까지 한 번에 달려왔다. 평소에 달리는 거리를 넘어서는 구간에 돌입하여 조깅을 했을 때 근육의 경직이나 무리가 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더욱 강렬하게 달렸지만 근육에는 아무런 이상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텐션이 더욱 가해지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땀도 흐르지 않았고 준비운동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마동이 오랜 시간 달리기를 할 수 없는 이유는 평발이기 때문이다. 조깅을 시작하고 10킬로미터를 넘어서면 발바닥에 무리가 전해진다. 중간에 잠시 쉬면서 발을 주무르거나 발바닥을 풀어주는 노력을 아끼지 앉아야 한다. 발바닥의 주상골이 바닥으로 주저앉을 수 있다고 오래전 정형외과에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발바닥의 주상골이 바닥으로 주저앉게 되면 후경골근이 악화되어서 다리가 오자가 되기 십상이고 긴 시간의 조깅은 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들었다.


 마동은 매일 밤 조깅을 하고 들어오면 주상골의 침하를 막기 위해 발바닥 족궁을 살리는 아크 스포츠라는 운동을 꾸준히 해 왔다. 발바닥 내측에 집중하여 발바닥으로 바닥을 움켜잡아서 발등이 떠오르도록 하는 운동이었다. 트위터 팔로워 중에 헬스 트레이너가 올려준 정보를 보고 마동은 그 운동을 해왔고 효과를 느끼고 있었다. 마동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이들은 만난 적이 없고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었다. 매일매일 무엇인가 하는 것에 지치지 않고 싫증 내지 않는 것 그것이 마동이 지향하는 바였고 바라는 바였다. 매일 밥을 먹듯, 배설하듯, 샤워를 하듯 매일매일 무엇인가 해야 한다면 받아들이고 꾸준하게 해 주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마동에게는 하루를 살아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조깅도 그런 의미로 매일매일 지치지 않고 하고 있다.


 마동이 집으로 들어와서 운동화를 벗어놓고 현관에 앉아서 양말을 벗고 발바닥을 체크해보았다. 보통 이렇게 긴 거리를 쉬지 않고 달리게 되면 발은 붓고 발가락은 벌겋게 색이 올라오고 발톱은 물러지기도 한다. 발바닥으로 통증이 전달되는데 오늘 밤은 달리는 동안 전혀 그런 징후가 없었다. 마동은 발바닥을 들여다봤을 때 입에서 흠, 하는 신음소리가 순간 새어 나왔고 발목과 발의 전반적인 모습을 거실로 올라와 다시 한번 확인했다. 평발인 자신의 발이 오목하게 바뀌어 있었고 침하하던 주상골이 올라와 있었다. 발에 무리가 전혀 없었다. 마동은 무릎을 구부리고 나머지 다리를 쭉 폈다. 그리고 허벅지에 텐션이 가해지도록 한쪽 무릎을 굽혔다. 전혀 무리가 없었다.


 분명한 것은 몸에 어떠한 변이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기분이 나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신체가 변이 했다. 땀이 나지 않는 경우는 어떠한 증상으로 간주해버리고 나면 받아들이기가 쉬웠다. 하지만 평발이었던 발 모양이 변해버렸다. 그건 어떻게든 받아들이기 힘든 변화였다. 마동은 자신의 신체변화에 대해서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동굴에 하염없이 떨어지듯 생각을 깊게 해 보았다. 생각의 골이 길어질수록 생각의 끝은 더욱 멀어지기만 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생각의 끝에 도달할 수 없었다. 근처도 가지 못했다. 마동은 자신을 조용하게 타박해 보기도 했고 타일러 보기도 했다. 변이는 완벽한 완전하게 쌓아놓고 어떤 누구도(심지어는 주인도) 들여다보지 못하게 했다. 변이라는 것은 마동의 등에 정확하게 달라붙어 고개를 돌려도 볼 수가 없었다. 변이라는 것의 존재는 인지했지만 더 이상 파악할 수는 없었다.


 그저 신체의 변화일지도 몰랐다. 변이가 몰고 올 어떠한 상황에 대해서 알 수 없었지만 이렇게 멋지게 조깅을 하지 않았는가. 그렇지만 이것은 분명 어떠한 시작에 불과하다는 불길한 예감을 마동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마동은 이미 오래전에 신체의 변이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5월 군번이라 7월에 제대를 하게 되었는데 제대하던 해의 여름을 지내고 가을을 맞이하는 어느 날 바람이 고즈넉하게 불고 단풍이 힘없이 떨어졌다. 그날 자신의 몸이 상당히 가렵다는 것을 느꼈다. 군에서 제대를 하고 무엇 때문인지 바뀌는 계절에 피부가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제대 후 첫 계절이 바뀌는 가을에 몸이 가렵더니 겨울로 접어들었을 때는 손바닥이 심하게 가려웠다. 몸이 가려운 건 어떻게든 참아 내거나 해결을 했지만 손바닥이 피부병처럼 가려우면 그저 긁을 수밖에 없었다. 입대를 하기 전이나 군 생활을 하면서 마동의 피부는 건조한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제대 후 태양이 솟아오르고 낮이 되기 시작하면 가려움증을 땅을 뚫고 올라오는 지렁이처럼 스멀스멀 몸을 점령했다. 오후가 되면 공격적인 가려움으로 마동은 자신도 모르게 긁어버려서 피부의 트러블로 짓물러지기도 했다. 피부가 압도적으로 가려울 때는 긁어대는 행위 이것 하나만 할 수밖에 없었고 시원함을 느끼는 동시에 고통도 함께 딸려왔다. 피부가 자신의 피부가 아닌 것 같았다. 또 다른 어떤 형질의 존재가 마동을 에워싸고 있는 것 같았다. 형질의 그것은 마동의 피부에 어떤 다른 형질의 피부를 자가 인식하는 단계로 극한의 가려움증을 유발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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