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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16.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92

4장 1일째 저녁

92.

 단순히 피부가 건조해서, 통과의례처럼 바뀌는 계절에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과 다른 점은 세상이 밤의 세계로 뒤덮이면 가려움증이 괜찮아진다는 것이다. 달이 떠오르고 세상의 어둠이 고요한 파도처럼 밀려오면 마동의 가려움증도 가라앉았고 트러블의 피부도 매끈한 피부 상태로 되돌아왔다. 낮에 가려움증이 시작되어 오후 내내 긁어대는 통에 제대 후 낮 동안에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 해 가려움증 때문에 삶을 비관하게 되었다. 비관은 길거리에도 있었고 집의 벽에도 붙어 있었다. 모든 곳에 비관이 있었고 마동이 어딘가를 지나칠 때마다 비관은 거기에서 떨어져 나와 마동에게 악착같이 들러붙었다. 숨쉬기가 어려웠다. 비관은 자연스레 자살의 유혹으로 찾아왔다. 이런 생활을 끊어버리고 싶었다. 모든 것이 소용이 없었고 불안하고 우울한 생각만 들었다. 낮 동안 마동의 몸을 덮어버리는 가려움은 마동의 의식 또한 빈곤의 상태로 내 몰았고 결락의 꼭짓점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끝으로 떨어져 갈 때 밤이 찾아와 달이 뜨고 나면 의식을 갉아먹던 가려움증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날이 밝으면 가려움증은 고개를 들고 몸 구석구석 나타나서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마동에게 알은 체를 하는 모든 이들이 꼴 보기 싫을 정도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계절에 반응하는 피부로 바뀌기도 한다는 것을 들었지만 마동은 자신의 신체에 대해서 어떠한 세포 형질의 변화에 대해서 의심을 품고 있었다.


 손바닥이 심하게 가려웠던 제대 후 그 해에 손톱으로 손바닥을 긁어도 가려움이 없어지지 않아서 줄 긋는 자의 모서리로 손바닥을 긁었다. 또는 손톱깎이의 손톱을 갈아대는 날을 세워 긁기도 했다. 손바닥은 밤이 되어서도 가려웠다. 손바닥의 가려움은 3일 밤낮으로 지속되었고 마동은 3일 동안 다른 일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3일이 지난 다음 손바닥의 미칠 듯했던 가려움증이 사라졌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 여인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 뒤로 가려움증은 마동의 몸에서 완벽하게 물러나버렸다. 바다의 썰물처럼 빠져나가버린 것이다. 바다와 다른 점은 다시 밀려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후 손바닥을 보니 손금이 바뀌어 있었다.


 물론 손금이 애당초 바뀌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마동의 손금이 전부 바뀌었다는 것을 알았다. 손금을 집중해서 본 적은 없지만 자신의 손금이 3일 동안의 가려움증을 앓고 나서 바뀌어버린 것이다. 손금이 바뀌었다고 해서 생활의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손금이 바뀐다는 말은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았다. 근거도 없었고 비논리적이지만 마동은 자신의 세포 형질이 변이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이유로 해서 손바닥의 가려운 증상이 뚝 끊어지고 손금이 바뀌었는지 추측은 불가능했다. 바뀌어버린 손금은 그대로였고 더 이상 손바닥이 폭력적으로 가렵지는 않았다. 더불어 심각한 피부의 가려움도 없었다. 가려움증이 온몸을 덮쳤을 때처럼 두피에 수십 개의 수포도 생기지 않았다. 긁고 난 다음 터진 수포가 흘러내려 머리카락을 끈적이게 만들어 버리는 것처럼 괴로운 일은 없었다.


 가려움, 그것은 하나의 각성처럼 다가와서 마동을 어떤 식으로든 건드리고 지나갔다. 심각한 고통을 겪고 나면 인간은 삶에 대해서 조금은 더 달려들게 된다. 마동은 그 이치를 깨달았는지 회사에 입사해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피부의 가려움도 가을이 되었지만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계절이 바뀔 때 약간의 건조함으로 인한 미약한 간지러움이 있었지만 고통스러운 가려움과는 차원이 달렸다. 기이한 건 피부의 가려움 때문에 고통을 받았을 때에도 밤이 되면 피부는 거짓말처럼 수그러들었다. 밤이 다가오면 마동은 군 생활에서 만난 달을 생각하고 떠오른 달을 보며 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달빛을 받고 있노라면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날의 밤이라도 피부의 가려움증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피부가 달빛에 의해서 치유가 되었다.


 그렇게 마동은 믿었다. 마동에게 있어서 달빛은 자연치유력을 가진 마법의 약과 같았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다가오면 걱정하던 시절이 있었지, 하며 이제는 사라진 가려움증이 새삼 생각나기도 했다. 가을은 마동의 피부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푸석하게 만들어버리는 악마적인 계절이다. 마동은 자신의 변이에 대해서 50퍼센트의 사실이 있었고 40퍼센트의 가설과 10퍼센트의 가설적 사실이 있다고 믿었다. 손금이 변해버린 변이는 사실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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