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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13.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89

4장 1일째


89.

 불안으로 똘똘 뭉쳐진 집단.


 마동은 달리면서 타인에 대해서 그간 안 하던 생각을 했다. 마동은 자신에게 의문을 던지기도 했다. 왜 그럴까. 마른번개가 내리치는 모습이 마동의 눈에는 너무나 뚜렷하게 들어왔다. 마른번개는 어쩌면 마동에게 무엇인가 전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른번개가 나에게 어떠한 관념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마른번개는 어째서 어제부터 지치지 않고 계속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것일까. 날씨 연구가들은 마른번개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기나 한 것일까.


 저 멀리서 한 번씩 내리치는 마른번개가 마치 인간들에게는 선전포고를 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마른번개에는 어떤 친절함도 배어있지 않았다. 소리도 없었다. 냉혹한 악의를 지니고 그저 빠지직하는 거대한 한 줄기의 빛이 바다의 한 곳으로 떨어질 뿐이었다. 꼭 무슨 일이 터져 버릴 것 같은 전조처럼 보였다. 평소 해변의 조깅코스를 달리면 회사 근처의 강변 조깅코스를 달릴 때와는 다른 공상에 젖어들곤 했다. 조깅을 하면서 공상 속에서 한 시간 정도 날아다닌다. 공상 속이니 마음대로 해도 되고 그곳에서는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공상은 때때로 노래 가사를 듣다가 나타나기도 했고 달리면서 눈에 들어오는 풍경에 관한 것이기도 했다. 그건 아마도 달리는 내내 바다가 눈에 보이기에 그럴지도 모르는 일이다. 바다는 고요하지만 그 속을 알 수 없는 여자와 흡사했다. 바다는 언제나 암묵적이기만 했다. 늘 이렇게 잔잔하고 평온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오늘처럼 잔잔한 바다라면 신발을 벗고 발을 담그면 시원함에 머리통이 놀라기도 한다. 자연이란 참 좋구나, 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갈매기가 된다. 갈매기가 된다면 참 좋겠지. 하늘 높은 곳에서 끝없이 펼쳐있는 바다를 내려다볼 수도 있고 말이야. 갈매기는 오를 때 날갯짓을 해. 다리를 몸통에 바짝 붙여서 활동을 하기 때문에 다른 새들에 비해서 굉장히 날렵해 보이지. 활공을 할 때는 날개를 쭉 펴서 바다 위를 날아다녀. 시간이 된다면 갈매기를 바라보는 것도 꽤 흥미로운 일일 거야. 갈매기는 물과 인접해서 서식하는 다른 새들과 조금은 달라, 황량한 바다를 제외하고 우리는 대부분 바다에 둥둥 떠 있는 경우가 없지. 항상 내려앉은 내 자리에 다른 갈매기가 앉아있으면 쫓아내야 하는데 서열이 높은 놈이 앉아있으면 쫓아내지 못하고 그 자리를 피해서 빙빙 돌며 비행을 할 수밖에 없어. 그것이 갈매기의 운명이라고 할까.


 갈매기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지? 새끼를 바다에 빼앗긴 갈매기의 울부짖음이 꼭 여귀의 울음소리와 같아. 왜 갈매기들이 바다에 내려앉아서 둥둥 떠 있지 않을까. 우리들은, 갈매기들은 바다의 무서움을 조금은 안다는 거야. 새 주제에 말이지. 네가 좋아하는 바다는 지엽적이야. 네가 좋아하는 바다는 늘 인간 가까이 있는 바다일 뿐이야. 네가 평온하게 보이도록 인간이 잘 가꿔놓은 바다지. 테트라포드를 설치하고 거센 조류를 인간의 생활 궤적에서 최소화시켜 놓은 거야. 산과 마찬가지야. 인간 가까이 잘 가꿔놓은 산과 깊고 깊은 산의 차이를 알아?


 사람의 손을 타지 않는 잡초와 수풀 속에서 아마 한 시간도 있지 못할 거야. 그들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음에도 어느새 너의 팔뚝에 날카로운 상처를 내지. 너의 목에서 마른 비명을 자아내게 해. 바람이 불어와 인간 세계에서 들을 수 없는 흉포한 소리를 내지. 자연의 평온함이란 두려움이야. 바다도 그래. 고작 1킬로미터만 나가보면 네가 늘 좋아하는 바다와는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야. 바닥이 보이지 않아, 바다의 색은 온통 검푸른 색이지. 멍이 들면 나타는 색이지. 심하게 멍이 들면 나타는 색이라구. 무서운 색이지. 탁하고 아주 짙어. 거센 조류와 물살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고 파도가 생체기라도 내면 그 파동에 배가 심한 롤링을 하지. 넌 그러면 주위의 무엇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갈 거야. 바다는 깊이를 알 수 없어.


 우리는 그것을 알아. 그래서 바다에 빠진 이들을 건져내지 못하는 거야. 바다는 일단 꿀꺽 삼키고 나면 다시 묘하게도 평온한 얼굴을 할 뿐이야. 바닷속에는 목이 없는 인간들이 살고 있어. 아주 많지. 몹시 많단 말이야. 수천? 아니 수만은 될 거야. 그들의 몸속에는 사념만이 가득해서 바다가 얼굴을 바꾸고 나면 목 없는 인간들이 바다 위로 몰려나오지.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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