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리운 날도 사라질 날도 10

소설

by 교관
다운로드.png


10.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라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려 깊은 미소를 짓는 그녀 덕분에 방안의 죽은 공기 냄새가 사라졌다. 하지만 그녀의 미소 때문에 나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건축양식을 아르누보라고 불러요. 전 잘 모르지만”라고 나는 그녀가 책장을 넘기는데 방해되지 않게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탄포코!”라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무슨 뜻? 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전한 미소.


“글쎄요, 무슨 뜻일까요? 스페인 말이에요.” 그녀는 답은 말해주지 않고 웃기만 했다. 초승달 같은 웃음인데도 환했다. 저 먼 하늘에서 수천 년을 그렇게 환하게 빛을 내준 달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미소는 온전히 그녀의 것이고 그녀만의 그런 미소를 만들어냈다. 아주 오랜 후에 그 말이 탱고의 사투리 같은 말이라는 걸 알았다.


“같이 먹으면 맛있는 반찬이 많은데 늘 혼자서 밥을 먹으려 한다면서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행복한 것만은 아닌 것 같아서.”


그녀의 고개가 살짝 비스듬해졌다. 무슨 말일까? 하는 표정이었다.


“다른 음식은 다 맛없게 느껴지니까요.”


내 말에 그녀가 또 초승달 같은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남자가 혼자 사는 곳에서 다분히 나는 냄새가 나네요. 전혀 그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라며 그녀가 하얀 치아를 드러냈다. 입을 벌려도 좋은 냄새가 났다. 그녀가 옆에 앉아 있으니 내 감각의 척도가 제대로 인지를 분간할 수 없었다. 아마도 그녀와 나, 이렇게 둘만이 한 공간에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침대보를 손바닥으로 쓸어내는 시늉으로 그녀에 대한 대답을 대신했다.


“사람들이 싫은 건 아니에요. 단지 어울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요. 선배에게 이런 말을 해봐야 소용이 없지만요. 선배는 계속 같이 어울리다 보면 나아질 거라고 했지만.”


틈이 공간을 갈랐다. 기이하게 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전 뭐라고 해야 할지. 애초에 그렇게 생겨먹은 거예요. 살쾡이 새끼를 어릴 때부터 키워봐야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처럼 되지 못해요. 나의 내면에서 밀어내는 것 같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좀 잘 못 된 것, 읍.”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녀의 입술이 와서 닿았다. 키스는 아니었다. 그저 그녀의 촉촉한 입술이 메마른 나의 입술에 와서 살며시 닿았을 뿐이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나의 입술에 그녀의 입술을 올려놓았고 나는 놀란 눈을 하고 가만히 있었다. 입술의 움직임은 없었다. 맛을 느낄 수 없는 카스텔라를 입에 댄 것 같았다. 방 안의 공기도 멎어버렸고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던 제니퍼 원스의 ‘페이머스 블루 레인코트’만이 고요하게 굴러다녔다. 제니퍼 원스의 목소리는 빗소리에 잘 어울렸다. 빗소리는 레인코트가 제격이야,라고 말을 했고 빗소리와 제니퍼 원스의 노래는 하나의 스피어를 만들었다. 빗방울은 조금 드세져서 자취방의 작은 창에 날렵하게 와서 부딪혔다. 그녀의 입술은 나를, 내가 가보지 못한 기이한 곳으로 데리고 갔다.


[계속]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리운 날도 사라질 날도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