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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Nov 11. 2024

그리운 날도 사라질 날도 14

소설


14.


 왜 그렇까. 도대체 왜 그렇게 느껴질까.


 인생이란 반드시 행복만이 가득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꾸준하게 행복하게 살다가 한 번 불행이 닥친 이들과 죽 불행하게 지내다가 한 번 행복이 온 사람이 있다면 어느 쪽이 좀 더 나은 삶일까.



 내 속의 총체적인 균형이 깨지듯, 그녀의 하나의 고통과 또 하나의 슬픔과 하나의 기쁨과 행복이 서로 평행하며 지내왔지만 그 균형이 깨져버렸다. 그녀의 가슴은 나의 손을 통해 그렇게 말했다. 가슴은 미미하나마 뛰고 있었으며 죽어서도 그 부드러움을 간직할 것 같았다.


 그녀는 나를 보며 자기 자신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나의 어떤 모습일까. 나 같은 인간에게서 그녀는 자신의 어떤 모습을 발견한 것일까. 그녀는 아름다웠고 밝았고 무엇보다 선배처럼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와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가슴은 나에게, 손에 힘이 너무 들어갔다고, 힘을 빼라고, 살살 만져 달라고 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손바닥으로. 나는 긴장하고 있었다. 긴장이 풀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매 순간 긴장하며 살아가고 있었을까.



 방안에 바람이 들어왔다. 방이 난방과 냉방에 취약했지만 바람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바람이 불어와서 방안을 어떤 기운으로 채웠다. 바람은 낯선 저편에서 불어오는 것이었다. 바람은 그녀를 위한 바람이었다. 그녀를 따라서 그녀의 공간에서, 그녀의 시간 너머에서 내가 잇는 자취방까지 그녀를 따라서 온 것이다. 언어를 잃어버린 채 나는 그녀의 온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바람에는 그녀의 비누향이 있었다.


 스무 살 인생이란 좀 더 풀어헤쳐져도 상관없는 삶일지도 모른다. 긴장이 몸에 스며들어와 땀을 유발하고 목을 꺾고 하나의 냄새만 맡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가슴은 그녀만의 언어를 미묘한 문장으로 풀어냈다. 문장을 이으면 중편 소설 한 편이 나올 것 같은 직유가 가득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언어를 머릿속에서 나 나름대로의 형태로,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앞의 나날들이 두려웠다. 두려움 속에는 속 좋아 보이는 선배도 있었다. 선배를 생각하면 이러면 안 된다고 하지만 그녀의 가슴을 만지면서 그녀의 수 십 개나 되는 고통을 느꼈고 더불어 나의 통증도 느끼고 있었다. 고통은 희열을 동반했고 그 둘은 따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고리 같은 것이었다. 그녀의 옷을 벗기고 비 오늘 물구동이 속에서 온통 흙을 묻혀가며 거칠게 섹스를 하는 상상을 했다. 발기를 했고 나는 그녀의 가슴에서 손을 뺐다. 그 후에 나는 나도 모르게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다. 정확하게는 정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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