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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Nov 10. 2024

그리운 날도 사라질 날도 13

소설


13.


 하지만 그녀는 침착하게 내손을 지산의 티셔츠 안으로 이끌었다. 한동안 그녀도 내 손을 잡고 놓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그녀의 가슴은 한 손에 쏙 들어왔다. 유두의 감촉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손바닥을 움직이지 못하고 그녀의 가슴을 잡고 그대로 있었다. 입술과는 또 다른 부드러움이 있었다. 물론 고독은 더욱 짙었다.


 인간의 몸이라는 게 이렇게 부드럽구나.


 손바닥으로 따뜻한 감촉이 옮겨왔다. 동시에 바닥이 꺼지는 느낌이었다. 현기증도 들었다. 그것은 고독이었다. 필시.


 여자의 젖가슴을 처음 만져보았다. 그 처음이 선배의 여자의 가슴이었다. 나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그녀의 얼굴이 어떤지 보지 못했다. 아마도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가 보고 싶었다. 고개는 들지 못했다. 온갖 무게가 나의 고개를 꽉 누르고 있었다. 목이 꺾일 것만 같았다.


 고개를 들어야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걸걸하고 활발한 선배의 얼굴이 떠올랐다. 선배의 일그러진 얼굴이 스쳤다. 그녀의 가슴에서 손을 떼려고 했다. 그녀는 좀 더,라는 말과 함께 그녀의 가슴에 대고 있던 내 손을 붙잡았다.


 “당신의 손은 여자 손 같군요.”


 내 속에 있는 내부의 시간성이 멈추거나 둔화되어서 퇴보했다. 느릿한 무엇이 내 몸속에서 혈관을 타고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있는 자취방이라는 공간이 먼 곳의 낯선 곳처럼 느껴졌다. 어떤 소리가 귀 안에서 들렸다. 근원적인 욕망이라는 것이 발아하고 있었다. 그 소리였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또 다른 나는 당연한 것이라 받아들이라고 침착하게 타박했다.


 그렇지만 떠오른 선배의 얼굴은 나를 위화감으로 내몰았다. 손바닥에 땀이 났지만 그녀는 함구했다. 나는 조금씩 손바닥을 움직여 그녀의 가슴을 만졌다. 작은 보풀처럼 그녀의 가슴에는 여리고 아름다운 세계가 있었다. 손바닥을 오므렸다 펴보면서 가슴을 문질러 보았고 손가락으로 유두를 느꼈다.


 그녀는 약간씩 몸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실이 내 앞에 딱 버티고 서 있었다. 의식을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었다.


 그녀가 내 앞에 있고 그녀의 가슴을 나는 만지고 있었다. 그녀의 보드랍고 작은 세계를 말이다. 내 마음을 유지하고 있던 총체적인 균형이라는 것이 조금은 무너졌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거짓말이라는 건 이래서 꼭 필요하다. 선배에게는 사실대로 말할 수 없다. 진실이라는 건 빈약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그녀의 작은 가슴과 입술에는 슬픔이 도사리고 있었다. 악착같이 그 언저리에서 머무르는 슬픔은 절대 거기서 빠져나오지 않으려고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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