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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Nov 30. 2024

그리운 날도 사라질 날도 33

소설

 


33.


 여전히 자취촌의 자취생들은 뿔뿔이 흩어지기 전까지 나는 선배에게 두들겨 끌려가서 밥을 먹었고 우리는 비틀어진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했고 밥을 먹고 맥주를 마셨다. 어느 날인가 “나 이제부터 교회를 다니기로 했어. 그러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리 손잡고 기도나 한 번 하고 밥을 먹을까”라고 선배가 말을 했고 그녀와 선배의 손을 한 쪽씩 잡고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 것 같은 모습으로 잠시 있었다.


 선배는 정말 기독교인 양 큰 소리로 여러 가지 기도문을 넣어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고맙다고 기도했다. 나는 양쪽으로 선배와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는데 밖의 추운 날씨와 상반된 선배 방의 따뜻함과 그녀의 손을 잡고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 것 같은 모습으로 잠시 있었다. 선배는 정말 기독교인 양 큰 소리로 여러 가지 기도문을 넣어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고맙다고 기도했다.


 나는 양쪽으로 선배와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는데 밖의 추운 날씨와 상반된 선배 방의 따뜻함과 그녀의 손을 잡는 순간 내 자취방에서 느낀 그녀의 체취와 감촉들. 그리고 그녀의 애인인 선배와 건너편에 있는 또 다른 사람과의 미묘한 관계가 대용량 시험지처럼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나의 손바닥에서는 그런 내 생각을 표출하려는 듯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은 여전히 작고 아담했으며 슬픈 세계가 숨어있었다.     

          

 선배의 손을, 내가 이렇게 남자의 손을 잡고 있어 보기는 처음이었다. 남자의 손을 잡은 것은 이런 느낌이구나. 이렇게 강인하고 내 손이 선배의 손안에 몽땅 들어가는 느낌.     

          

 손바닥의 거친 면이 전해주는 남자다움이 내 손을 잡고 살짝 눌렀다. 선배는 힘을 풀었다가 또 눌렀다가 다시 힘을 풀었다. 그것이 끝나면 쓰다듬었다가, 손가락이 지렁이처럼 움직였다. ‘숲’에서 그녀가 했던 이야기를 애써 외면해왔지만, 선배의 손을 잡은 순간은 그녀의 말이 유독 머릿속에서 나를 괴롭혔다.   

            

 괴롭히는 것은 이념적 사고방식 같은 것이다.        

       

 그 이념에 다가갈 수 없는 나의 마음에 대한 것들.  

             

 전쟁이 일어나면 받는 피해 중에 총이나 대포에 맞아서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은 전시에 불어 닥친 전염병이나 군인들의 강인한 힘에 의한 강간이나 도살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것에 비한다면 미미한 부분이다. 전쟁은 곡해와 왜곡이 가득하다. 군인들에게 강제로 끌려가서 가랑이를 벌려야 했던 여자들은 살아남아서 이후에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밝은 해를 보며 햇살을 느낄 수 있었을까. 그런 피해는 누가 보상을 해주는 것일까.


 이념이라는 것은 시간이 흘러가게 만들지만, 피해자들은 지나간 시간 속에서 갇혀 지내고 있다. 누구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 선배가 왜 내 손을 주무르는데 다른 이념에서 오는 틈새의 괴리가 나를 괴롭히는 것일까. 어째서 그럴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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