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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03. 2024

그리운 날도 사라질 날도 36

소설


36.



 한참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목이 아팠다. 무엇보다 체온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져서 추웠다. 눈썹도 촉촉해졌다. 나는 다시 걸음을 걸었다. 어딘가 목적지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작정 걸었다. 눈길을 걷는다는 건 생각처럼 만만치 않았다. 운동화의 갈라진 틈으로 눈이 들어와 녹아서 발가락도 차가웠다. 아침이 오면 사람들은 눈으로 덮인 길을 바삐 걸으려고 조심하는 아이러니 같은 모습들이 보일 것이다.


 야전 상의의 옷깃을 목까지 올리며 어깨를 움츠리고 천천히 걸었다. 길 위에 내 발자국을 만들어 내면서, 나는 앞에 깔린 바닥을 보면서 오랫동안 걸었다. 하얗게 변해버린 세상을 보았다. 알록달록하던 풍경이 덮여 하나의 색으로 통일이 되었다. 그렇게 바뀐 세상을 보며 앞으로 그저 걷기만 했다. 촛불을 생각했다. 촛불을 생각했는데 김춘수의 촛불이 또 생각났다. 양초에 불을 붙이면 모든 것이 보인다. 면경의 유리알도 보이고, 의롱의 나전도 보이고 어린것들의 눈망울과 입언저리까지 모두 살아난다.


 촛불은 반경 내에 있는 것들의 윤곽을 살려낸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윤곽도 있다. 그 윤곽은 무엇일까.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며 걸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눈이고, 생각은 촛불이었다. 김춘수의 시는 모든 것이 지적이다.               


 나는 얼마나 걸었을까. 나는 어디까지 걸어온 걸까.     

          

 문득 새벽의 정적을 깨트리는 자동차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고요한 음영만이 가득했다. 눈이 내리는 아주 미세한 소리만 씨락 씨락 들렸다. 아직 생존해 있는 벌레들에게 소리를 들려주듯 눈은 고요의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시계를 보니 자취방에서 새벽 세 시쯤에 나와서 세 시간 정도를 걸었다. 돈도 얼마 없었고 그저 고개를 숙이고 걷기만 했다. 자취촌에서 멀리 떨어져 나와 버렸다.


 세 시간이 나 걷다니, 미쳤다고 생각했다. 이곳이 어디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아마도 자취촌의 뒤편에 있는 작은 동산으로 올라와 그 뒤로 보이는 산으로 난 도로를 따라 걸었나 보다. 건물이라고는 한 채도 보이지 않았고 자동차의 모습도 눈에 띄지 않았고 산책하거나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모습도 전혀 볼 수 없었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서 걸었다. 오전 7시가 가까워져 오니 날은 서서히 밝아왔지만, 하늘은 여전히 어두운 얼굴을 하고 눈을 뿌리고 있었다. 새벽에 내리는 눈보다 곱절은 많이 내렸다.        

       

 나는 또 얼마만큼 걸었을까. 왔던 길을 분명 뒤돌아서 걸었지만 모르는 길로 자꾸 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지나온 발자국은 새롭게 내린 눈이 모든 것을 하얀 원상태로 되돌려 놓았다. 도대체 어디를 가고 있는 걸까 나는. 길을 찾을 수 없었지만, 조바심이 나거나 겁이 났던 것은 아니었다. 낯선 곳에서 느껴지는 마음의 안정이 신기하다면 신기했다. 나는 본디부터 겁이 많은 인간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계속, 어딘가를 향해 계속 걸었다. 마치 행군하는 군인처럼.        

       

 어쩌면 새로운 풍경에 매료되었는지도 모른다. 늘 가는 곳, 손을 뻗으면 닿는 모든 것 안에서 나는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눈에 보이는 새로운 모습을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 새하얀 풍경에 동화되어 가고 있었다. 이렇게 걷다 보면 익숙한 모습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분명 그렇게 생각하며 모르는 길로 계속 걸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를 만큼 걸었다. 눈은 한 시간 전보다 압도적으로 더 내렸고 밟으면 ‘뽀드득’에서 ‘뿍뿍’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밟는 순간, 앞의 과거는 말살시키고 눈을 밟는 찰나를 확대해서 즐기게 했다.               


 뽀득, 푹푹, 뽀드득.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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