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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02. 2024

그리운 날도 사라질 날도 35

소설


35.


 그녀는 눈이 내리고 있다는 것을 지금 알고 있을까.           

    

 가장 먼저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고독했다. 그리고 외로웠다. 다른 사람보다 그녀가 나는 필요했다.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일까. 외로워서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를 사랑하고 나서 고독이 눈처럼 나에게 내렸다. 그녀는 긴 겨울 동안 자기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나는 옷을 추스르고 윗몸일으키기를 50회 하고, 팔 굽혀 펴기를 10회씩 4회를 나눠서 한 다음 앉았다 일어나기를 30회씩 세 번을 했다. 그것을 총체적으로 번갈아 가며 두 번씩 반복했다. 몸에서 열기가 났다. 시간과 장소를 정해놓고 몸을 움직여 본 적이 없기에 처음에는 천천히 몸을 깨운 다음 서서히 두 번째 파트에 몰입하고, 세 번째 부분 때에는 좀 더 집중해서 힘을 가했다.


 그렇게 몸을 움직였다. 어느 정도 몸 안에서 추위를 밀어냈다. 나는 침대의 이불을 정리한다든가, 제시간에 밥을 해서 먹는다든가, 가방은 언제나 놔두는 자리에 둔다든가 하는 반자동적인 무의식의 행동이 남들만큼 뛰어나지 못했다. 그런 부분은 내가 타인과 비교하면 모자라는 것인지 어떤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적어도 불편하지는 않았다.               


 ‘숲’에서 그녀와 만난 이후 그녀가 나를 데리러 나의 방에 다시 한번 왔을 때 나는 침대 위에서 비스듬히 기대어 책을 보다가 그녀와 함께 선배의 방으로 건너가려고 일어나서 구겨진 침대의 이부자리를 그대로 두고 나오는 것을 본 그녀가 탁탁 펴서 정돈해주며, 그냥 나오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고 나는 언제나 그렇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취방에서 나오면서 그녀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여자들이 거울을 보는 것처럼, 팬티를 먼저 입고 브라를 채우는 것처럼, 밥을 먼저 뜨고 반찬을 입에 넣는 것처럼 감각이 시켜서 하는 반자동 유기체적인 행위가 있다고 했다. 그러한 행위는 반면에 런 어웨이를 할 때 모델들이 무대 위에서 팔다리를 내미는 순서를 일일이 인지하지 않지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라 했다.      

         

 “누구나 아침에 일어나면 계획하진 않지만, 매일매일 자동으로 무의식으로 행위를 하게 되는 거야. 이불을 개는 것도 그런 의미야”라고 그녀가 말했고 난 잘 모르겠다고 했다. “기이한 사람”이라며 환하게 웃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눈이 오는 새벽에 자취방을 나오면서 침대의 이부자리를 조금 정리했다. 이불을 쫙 펴서 침대 끝과 맞도록 해 놓았다. 이부자리의 끝에 그녀가 묻어 있었다. 그녀가 그곳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침대의 이부자리 하나가 정리되자 방안의 모든 것이 정리가 된 기분이 들었다. 몸을 많이 움직인 상태에서 숨을 쉬니 입김이 방안에 이질적으로 퍼져 나왔다가 사라졌다.              

 

 마당과 자취촌의 길바닥은 새하얗게 눈으로 덮여있었다. 나는 첫눈이 내린 마당에 첫발을 내디뎠다. 밟은 곳은 발자국이 생겨났고 내가 걸어온 징검다리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처녀성을 지닌 여성의 몸을 탐닉할 때처럼 나는 조심조심 천천히 눈길을 걸었다. 내가 만들어 놓은 발자국 위에 눈이 다시 내려 조금씩 쌓였다. 그 모습을 보느라 눈이 내 어깨와 머리 위에도 내려와 체온을 떨어트리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만큼 하늘에서 눈이 떨어지고 있었다. 가늘게 눈을 뜨고 하늘에서 눈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집 밖으로 나와서 보는 눈은 창을 통해서 볼 때보다 훨씬 눈 다웠다. 속도감 있게 떨어졌고 서정적이지는 않았다. 눈이 떨어져 내려 얼굴에 닿는 느낌이 좋았다. 곧바로 녹아내려 얼굴을 차갑게 만들어서 무릇 내가 여기에 서 있구나, 내가 눈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얼굴에 닿은 눈이 녹는 느낌은 내 속에 있는 어떤 감정들은 무화시켰다. 아직 공기는 깨끗했고 하늘은 어두운 암갈색이었다. 어두운 하늘에서 하얀 눈이 내려오는 것 또한 비현실적이었다. 현실을 현실로써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른다. 현실 속에 살면서 나는 어쩌면 돈키호테 같은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를 언제나 옆에서 지켜줄 수 있을 거라는 착각.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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