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May 23.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99

4장 1일째 저녁

99.

 불법이란 어느 곳에서나 일어나는 다각적인 현상이군.


 소피는 자신의 트위터에 아동포르노는 보지 말자는 맨션을 많이 올렸고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리트윗 하며 호응해주었다.


 디렉트 메시지: 소피, 여긴 새벽 한 시야. 회사 업무를 집으로 들고 와서 그것을 마저 한 다음에 잠을 청해야겠어. 몸살 기운은 떨어진 것 같은데 오늘은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 그런데 말이야, 이상하게도 배가 고프지 않아.


 디렉트 메시지: 회사 업무? 이곳이나 그곳이나 직장이라는 곳은 사원을 괴롭히는구나. 그래, 동양의 멋진 친구, 따뜻한 우유라도 한잔 마시고 잠이 들도록 해. 내 걱정하지 말고 동양의 친구나 잘 챙겨 먹고 말이지. 기억해 두라구 오컴의 면도날을 말이야. 가드 블레스 유.


 화면에서 소피의 작은 활자가 남긴 부재는 마동이 앉아있는 거실을 금세 공허하게 만들었다. 소피에게는 결국 털어놓지 못했다. 그렇지만 소피는 무엇인가 마동의 심적 상황에 대해서 눈치를 챈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부나 시모펠리스와는 다르게, 다른 방법으로 말이다. 과학으로 전부 설명할 수 없게 말이다. 단순히 마동의 생각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다.


 그동안 혹시, 어딘가 누군가에게 무엇에 의해서 끊임없이 감시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마동은 만약 그 감시자가 소피라면 괜찮다는 느낌을 받았다. 트위터를 나오기 전 팔로워들의 글을 훑어보았다. 그 속에는 누군가를 향해서 끊임없이 욕을 하는 사람, 그 비방을 다른 곳으로 퍼 나르는 사람, 아무도 듣지 않지만 혼자 허공에 하릴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 맛있는 음식의 사진만 올리는 사람, 자신의 모습을 비난하는 사람, 강아지 이야기만 하는 사람 등 실재처럼 트위터 속에도 사람들은 서로 겹치는 부분 없이 다양하고 현학적인 모습들이었다. 대체로 미저러블 하거나 좀 더 호러블 한 멘트들이 많았고 사람들은 누가 더 테러블 한 것인지 내기를 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자극적인 내용일수록 사람들은 반응을 크게 보였다. 물론 기쁘고 반짝이는 내용도 많았지만 금세 화면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대체로 네거티브 한 내용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마동은 트위터를 나와서 노트북의 리모델링 프로그램을 켜고 작업을 시작했다.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던 기억 분자들이 그릇에 담아놓듯이 없어지지 않고 머릿속에 그대로 있었다. 마동은 빛깔 좋은 그릇에 맛 좋은 음식을 옮겨 담듯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리모델링 꿈의 작업 내역을 고스란히 프로그램 속에 쏟아부었다. 손가락을 움직여 레이어를 재배열하기 시작했다. 그때 띠링하며 휴대전화의 뉴스 애플리케이션에서 속보를 알려 주었다. 지금 이 시간 위싱턴 DC에서는 사상초유의 폭우로 인해 물난리의 소식이 전해졌다. 하수도는 물이 역류하여 도로 위를 점령했고 그 큰 도시는 마치 포세이돈이 신경질적으로 집어던진 물 폭탄에 아수라장이 됐다는 내용이었다.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물이 더 이상 흐를 곳이 없어서 위로 올라오는 반 운명적인 모습이었다. 마동은 소피의 큰 눈과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봐야 언제나 트위터에서 영상과 사진으로만 봐왔던 얼굴이었다. 미국인처럼 생기지 않은 동그란 얼굴과 큰 눈동자 그리고 솜털이 있는 뽀얀 피부.


 누군가 미국인처럼 생긴 여자는 어떻게 생긴 거야?라고 묻는다면 참 난처하다. 어찌 되었던 소피는 라라 플린 보일처럼 생기지는 않았다. 소피의 얼굴은 어느샌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에 오버랩되었다. 그리고 서서히 소피의 얼굴이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로 바뀌었다. 소피의 눈과 얼굴과 피부는 미스터리한 눈, 거부할 수 없는 가슴골, 다정하지 않는 차갑고 아름다운 손으로 바뀌었다. 아랫도리에 또다시 동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마동은 일어나서 앉았다 일어나기를 여러 번 했다. 생각을 머리 밖으로 밀어내려고 노력했다. 노트북에 정신을 쏟고 꿈의 재배열을 시작하고 재구성을 하는 작업을 심도 있게 했다. 마동은 머릿속에서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밀어내고 일차적인 디자인 작업을 마치고 나니 새벽 5시가 되었다. 여름밤이라 4시가 좀 넘어서니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5시를 알리는 초침과 함께 창문 밖으로 이미 해가 뿜어내는 붉은빛의 소자들이 넘실거렸다. 날은 밝아오기 전 그때가 제일 어둡다고 하던데 마동의 눈에는 그저 밝은 아침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 밝게만 보였다. 잠을 청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마동은 누워서 불을 껐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9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