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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24.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00

5장 2일째

100.


 [2일째]

 마동은 전화소리에 눈을 떴다. 눈꺼풀이 강력 접착제에 의해서 완벽하게 서로 붙어버린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마동은 어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회사에서는 병든 닭보다 못한 상태에서 브리핑을 듣고 뇌파 채취를 마치고 정부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저녁에도 조깅을 평소보다 긴 거리를 달렸고 밤새도록 꿈의 리모델링 디자인 작업을 하다가 지쳐 잠이 들었다. 배기량이 작은 자동차에 기름을 넣고 고속도로를 중형차가 달리는 속력으로 하루 종일 달린 기분이었다. 수마가 파멸적으로 덮쳐와서 중간에 한 번 일어나지도 못하고 잠이 들어 있다가 낯선 전화 벨소리에 눈을 겨우 떴다. 전화 벨소리는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처음 맡았던 희미한 입술의 냄새처럼.


 이질적인 벨 소리가 어째서 내 집에서 들리는 것일까.


 마동은 처음 듣는 시끄러운 전화 벨소리에 결국 눈을 떴다. 힘들었다. 벨소리는 집전화기 소리였다. 집전화기의 벨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리는데 시간이 걸렸다.


 맙소사. 집전화기의 벨소리가 이런 소리였다니.


 집에 있는 홈 폰이 울릴 일은 거의 없었다. 들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전화를 개통하긴 했지만 집 전화는 그야말로 사용하는 일이 없었다. 집 전화벨 소리는 기본에 아주 충실한 예의 그 따르릉 하는 굉장히 시끄러운 소리였다. 마동이 가끔씩 가는 오래된 물품을 판매하는 골동품점이 있다. 시간이 남으면 마동은 가끔씩 들르는 곳이다. 그곳의 주인은 외국에서 평생 여행을 하면서 그러모은 골동품을 팔고 있었다. 들어가면 마고리엄의 장난감 백화점에 온 기분이 들게 하는 잡화점이었다. 하늘을 나는 기차, 날개 달린 붉은 돼지, 상아로 만든 얼룩말과 장식재, 향이 좋은 가구까지 신기한 것이 흘러넘치는, 없는 게 없는 골동품 점으로 그곳에 오는 손님들 역시 묘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마동은 그곳에서 눈에 띄는 전화기를 집어 들었는데 실제로 통화가 가능한 전화기라고 주인은 말해주었다. 집전화기는 필요 없었지만 구입을 했고 덕분에 개통을 하게 되었다. 회사의 신상 서류에는 마동의 집 전화번호를 기입한 것이다. 전화기는 아주 낡은 참치모양의 전화기였다. 참치모양 전화기의 벨소리는 하나뿐이었고 그 소리는 따르릉 하며 울리는 오래전 전화기의 벨소리였다. 그리고 몹시 시끄러운 소리다. 그 소리가 지금 울리고 있었다.


 따르르릉 따르르르르릉.


 참치모양의 전화기는 그칠 줄 모르고 내일이면 세상이 끝나기라도 하듯 울어댔다. 마동은 팔을 뻗어 손으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팔은 밤새도록 누군가에게 몽둥이질을 당했는지 무거워서 들기조차 버거웠다. 손으로 참치모양의 수화기를 집어 드니 아주 낯설었다. 손가락의 움직임과 방안을 감도는 공기, 눈에 들어오는 벽의 풍경 등 모든 것이 이질적이었다.


 오늘은 뱃속에 많은 음식을 넣어야겠군. 마동은 그렇게 다짐했다. “네……. 여보세요…….” 목소리가 잠겨서 나오지 않았다. 수심 200미터 밑에서 입을 벌리고 말할 때와 다를 바 없었다. 수회기 너머에서 달팽이관이 떨어져 나갈 만큼 크고 시끄럽게 누군가 말을 했다.


 “이봐! 자네! 지금 제정신이야! 아직 자고 있으면 어떡해! 한 시간 있으면 클라이언트가 올 거란 말이야! 오늘 대략적인 계획과 작업방향에 대해서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하잖아!”


 수화기 너머로 소리치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차리는데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최원해 부장의 목소리였다. 안경 안으로 비치는 작은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는 기분 나쁜 벽을 들여다보는 눈빛을 지닌 최원해의 목소리 역시 눈빛만큼 기분을 나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귀안에 있는 기관들이 충격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정말 최원해가 이 회사에 들어와서 버티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손목에 차고 있는 태그호이어를 보았다. 손목시계는 몇 년이 지났지만 스크래치 하나 없이 원형을 그대로 잘 유지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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