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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08. 2024

김약국의 딸들

박경리 소설가

박경리 소설가가 손주를 업고 창문틀에 원고지를 대고 글을 썼다.


사위인 김지하 시인은 옥고를 치르고 외동딸인 김영주는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고 있어서 손주를 돌 볼 사람은 박경리뿐이었다.


아기를 업고 밥을 해 먹을 수 없어서 소설가는 마른 북어포를 뜯어먹어가며, 손주를 달래 가며 서서 글을 적었다.


글을 적으려면 불빛과 탁자가 있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절실함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은 인간이 가지는 잔인함, 그리고 무력함, 인간이 인간에게 행 할 수 없는, 더 없는 잔인함에 관한 이야기였다.


잔인함이란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 감정이라 생각한다. 거기에 어떤 무엇에 의해 불이 붙으면 자제를 잃고 확 타오른다. 그리고 본성과 본능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


사고하거나 생각하기를 꺼려한다. 나 이외의 타인이나 모든 것은 악으로 간주한다. 한 마디로 비극이다.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다. 김약국의 딸들을 보면 잘 나타난다.


박경리 소설가는 글을 써야만 하는, 그리고 글은 써지기를 원하고 있어다는 건, 절실함을 넘은 어떤 계시 같은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건 초기 작품들이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미망인의 이야기가 많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박경리는 비극의 중심에 있었다.


예술은 잔인하다. 예술은 고통스럽게 한다. 삶도 잔인하다. 삶도 고통스럽고 잔인하게 인간을 몰아세운다. 사위인 김지하 시인은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몰래 썼다. 타는 목마름으로 몰래몰래 썼다. 그 이름 민주주의여.


박경리의 딸 김영주 토지문학 재단 이사장은 박경리의 ‘토지’를 알리기 위해 생을 보냈고, 2019년 73년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김지하 시인도 코로나 시기인 2022년 5월 8일에 세상을 떠났다.


민주주의가 뭔지 희미하고 흐려질 때 다시 불러보는 민주주의여. 김지하 시인이 떨리는 손으로, 떨리는 가슴으로, 떨리는 치 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 민주주의를 오늘 밤에 큰 소리로 외쳐보자.



김약국의 딸들 https://youtu.be/FLh9Lb3G8JU?si=xzDQxOsL3dPjJXm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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