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와 점순
눈이 오면 생각나는 영화를 물어보면 대부분 러브레터라고 하데, 나는 눈이 오면 언제나 ‘삼포 가는 길’이 생각나. 재미있어서 여러 번 봤지.
이 영화는 황석영 소설을 이혜영 아부지, 이만희 감독이 영화로 만든 고전이다. 피고 지는 인생사가 온전히 묘사되고 마음 깊이 슬퍼지는 장면이 많은 영화야.
이 영화에서는 단연 20세의 문숙이 진짜 미친 것처럼 백화를 연기한다.
백화는 웃으면서 소리를 지르고, 거칠게만 살아와서 거침없이 욕을 하고, 미친 것처럼 만개한 꽃과 같다. 그런 백화를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오는데 슬프다.
백화에게 그런 특질이 있다.
뭐 화냥년? 그래 난 화냥년이다. 화냥년이야. 더러운 년이라구. 더럽고 썩고 썩은 년이라고. 난 너희들 사내놈들한테 살이 빠지도록 팔고 사는 년이라고. 그게 왜 내 잘못이냐고, 왜.라고 울부짖는 백화의 모습에 우리는 빠져들고 같이 무너질 수 있다.
익살스러운 대사도 많다. 백일섭의 “헤헤 지랄로” 같은 대사도 좋다. 문숙과 백일섭은 시시때때로 익살스러운 대사로 부딪힌다.
그 대사를 들어보면 백화의 에이불비를 느낄 수 있다.
마지막 헤어질 때 백화가 받은 삶은 계란은 이 세상에 제일 슬픈 삶은 계란이다. 백화는 삶은 계란을 먹으며 꿋꿋하고 거칠게 앞으로 살아갈 것이다.
욕쟁이 백화와 풋풋한 점순의 모습을 동시에 지닌 채로.
삼포 가는 길은 춥고 고되기만 하다. 발가락은 눈밭에 빠지는 바람에 떨어져 나갈 것 같지만 함께 삼포로 가는 일행들이 있어서 참고 견딜 수 있다.
그러나 그토록 바라던 고향인 삼포는 이미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고 낯설기만 하고, 또다시 뜨내기의 길만이 앞에 놓일 뿐이다.
읽은 지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소설의 결말과 영화의 결말이 좀 다른 것으로 안다. 같이 비교해 가며 보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