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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그 여자와 스쳐 지나갔는데 1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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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여자를 오늘도 마주쳤다. 그 여자는 뚱뚱한 편에 속한다. 하지만 키가 커서 그런지 그렇게 뚱뚱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단지 덩치가 있구나. 하는 느낌이다. ‘덩치가 크구나’ 하는 것과 ‘덩치가 있구나’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는 말이다. 그 차이를 말하라고 한다면 어디까지나 글에 드러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입으로 그 차이를 말하지 못하는 걸 이해하기를 바란다.


여자는 얼굴에 화장도 거의 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내가 여자의 화장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건 보면 알 수 있다. 화장기 없는 얼굴이지만 화장을 한 것처럼 보였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여자의 피부가 좋다는 말이다. 잡티라든가 주름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이는 알 수 없지만 30대로 보였다. 어쩌면 30대를 가장한 20대일지도 모른다. 피부가 좋아서 그런지 화장하지 않고 다니는지 모른다. 어쩌면 나와 마주치는 그 시간에는 아직 화장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아무튼 화장은 여자의 얼굴을 더 예뻐 보이게 만들고 돋보이게 한다. 화장하지 않는다는 건 세상이 전부 귀찮거나 화장기 없는 얼굴도 자신 있는 것이다.


여자와 마주치는 순간은 대략 오전 11시 정도다. 그 언저리 시간에 마주친다. 오전 11시는 아주 단순하거나 매우 복잡한 시간이다. 하루를 움직이는 모든 곳에서 기초를 다지는 시간이 오전 11시다. 이 시간에 복잡한 구조를 전부 돌린다. 반면에 어떤 이들에게 오전 11시는 그 이전의 시간에 바쁘게 움직인 후 한숨 돌리는 시간이다. 라디오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 시간이 지나면 또 전쟁이 시작된다. 오전 11시는 새벽 4시와도 비슷하다. 커피를 마시기는 이르고, 술을 마시기에는 늦은 시간. 그런 시간이다. 그 시간에 거의 매일 지나치는 여자가 있다.


그러다 보면 여자의 얼굴이나 몸을 보게 된다. 얼굴은 나보다 크다. 그게 여자와 마주치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다. 바지를 입은 모습은 본 적이 없다. 편견이지만 덩치가 있는 여자는 바지를 잘 입지 않는 것 같다. 긴치마를 입을 모습만 기억이 난다. 내가 알고 있는 덩치가 큰 어떤 여자도 긴치마만 입고 다녔다. 바지를 입지 않았다. 그러다가 각고의 노력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했다. 날씬해지지는 않았지만 뚱뚱한 모습에서 벗어났다.


그래서 바로 청바지를 구매해서 입고 다녔다. 잘 설명은 할 수 없지만 뚱뚱하다가 날씬해졌을 때 걸음걸이가 달라진다. 뭐랄까 약간은 거만하면서 자신감이 붙는 걸음걸이가 된다. 팔을 살짝 벌리고 어깨를 펴고, 허리가 많이 잘록해졌지? 같은 분위기가 나는 걸음걸이다. 또 살이 쪘을 때보다 천천히 걷는다. 이 기쁨을, 이 몸매를 그동안 나를 알고 있던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겠다는 식이다.


그런데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오늘 지나칠 때 보니 바지를 입었다. 청바지를 입었는데 치마보다는 몸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보기 싫은 것도 아니었다. 치마가 어울려 보이는 건 청바지가 불편해 보였기 때문이다. 외국은 뚱뚱한 사람도 입을 수 있는 청바지가 많은 것 같은데 한국에는 잘 보지 못한 것 같다.


나와 마주치는 여자는 뚱뚱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키가 커서 그렇다. 그리고 덩치가 있다. 이 말이 가장 맞는 표현이다. 어떻게 봐도 내가 좋아할 타입의 여자는 아니다. 얼굴이 나보다 크고 덩치도 나보다 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여자가 생각이 났다. 왜 그럴까. 덩치가 있고, 얼굴이 나보다 크고 긴치마만 입고 다니는 그 여자는 내가 좋아하는 여자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데 그 여자가 생각났다. 그렇다면 여자의 얼굴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얼굴인가 한다면 그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생각이 날까. 의문이다.


세상을 살면서 의문이 참 많이 생긴다. 의문 중에 합당한 의문도 있고 그렇지 못한 의문도 있다. 지내면서 왜 그럴까 하는 의문은 매일 하나씩 드는 것 같다. 그 의문 속에는 자연발생적으로 드는 의문이 있고 내가 의도를 가진 의문도 있다. 그런데 여자가 생각나는 건 어디에도 들지 않는 의문이다. 도대체 어째서 지금까지 나와는 무관한, 내가 좋아할 만한 타입의 여자도 아닌데 멀리 떨어진 연인처럼 생각이 나는 것일까. 몸을 가만두지 못할 정도로 생각이 자꾸 났다.


만약 누군가에게 갑작스레 고백받는다면 여러분은 상황대처를 어떻게 할까. 내가 그 여자에게 가서 자꾸 생각이 난다면 여자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SNS로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여자에게 느닷없이 좋아해요, 만나고 싶어요.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오래전의 일이다. 그때 나는 순간적으로 굳어버렸다. 뭐라고 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시간이 휙 지나가 버렸다. 오프라인에서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면 어찌어찌하겠지만 인터넷상에서 사진으로만 서로의 모습을 알고 있어서 우물쭈물하는 가운데 그대로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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