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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그 여자와 스쳐 지나갔는데 2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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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 여자는 SNS 친구로 등록되어 있었는데 나보다 열 살 정도 적었다. 결혼을 했다. 아니했었다. 애도 있다. 일하는 곳에서 인정도 받고 있다. 여자와 나는 글을 좋아해서 글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시와 소설, 에세이 같은 글에 대해서 말이다. 그 여자는 SNS에서도 인기가 많다. 일단 여자가 써 놓은 짤막한 글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이상하게도 여자의 글을 읽고 있으면 글이 살아나서 나의 몸을 훑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매력을 넘어 마력적이라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몰랐다. 나 혼자만 여자의 글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여자의 글을 좋아했다. 거기에 여자는 예뻤다. 옷도 잘 입는다. 번 돈으로 자신을 가꿀 줄 안다. 날씬하다. 남편도 없다. 모든 게 완벽하다. 그런데 나는 왜 고백을 받고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을까.


여자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는 현직 프로 작가도 있었다. 시인이나 에세이 작가 등, 전문 글쟁이도 여자의 글을 좋아했고 그 마음을 댓글로 표현했다. 딸과 함께 올리는 사진 속 여자의 얼굴은 환하고 예뻤다. 글은 너무 순수하고 깨끗해서 오히려 불안하기까지 했다. 여자의 얼굴은 초등학생 딸을 둔 엄마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필터 같은 것도 쓰지 않아서 더 그렇게 보였다. 비록 결혼은 한 번 했고 아이도 있지만 항상 남자친구가 있고 자주 바뀌었다. 여자의 남자친구는 자주 바뀌었지만, 여자를 만나는 동안 적극적이고 정성을 다했다. 그런 모습을 가감 없이 여자는 SNS에 올렸다. 여자의 딸과도 잘 놀아주고 아빠처럼 대해주었다.


여자는 얼굴이 예쁘고 옷도 잘 입고 늘씬하지만 나는 여자와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나와는 동떨어진 세계의 사람이다. 그런 생각이 강했다. 그저 SNS를 통해서 소설을 비롯한 일상 에세이 같은 글을 공유하고 이야기하는 정도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여자에게서 나는 아주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차가운 숨을 쉬는 고양이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저녁에 조깅을 하는 코스는 강변이다. 도심지를 흐르는 강변을 따라 조깅을 한다. 사람들이 운동을 많이 하는데 갈대밭으로 들어가면 비교적 사람들이 없다. 어느 특정한 구역은 기묘한 곳으로 한 60미터 정도 기온이 몹시 낮다. 일부러 그 구역으로 조깅을 하는데 항상 거기만 사람이 없다. 여름에도 그 구역은 서늘하며 주위가 갈대로 둘러싸여 있다. 조깅코스이기 때문에 조깅을 위해서, 또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전거도로를 조성해 놨다. 가끔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기는 하지만 맞은편에 있는 강을 따라 있는 조깅코스에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 구역은 사람이 없다. 겨울에는 몸서리가 칠 정도로 기온이 낮다.


평소에 느끼는 낮은 기온과 느낌이 몹시 다르다. 마녀의 입김 같다. 이질적이고 그 구간을 지나갈 때는 숨을 쉬기 싫고 이상하다. 무엇보다 사람이 없다. 이 도시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조깅 코스를 달리는데 그 구역에만 이상하다 할 정도로 사람이 없다. 그런데 한 번은 그곳을 지나면서 시간을 봤는데 저녁 8시 04분이었는데 50미터 정도의 그 구역을 지나니 8시 15분이었다. 이상했다. 50미터라고 해봐야 1분 정도 달리면 된다. 그 구간을 지나오는 동안 나의 시간이 11분이 사라졌다.


그 구간을 지나쳤을 때 다른 날에 비해 강변의 길고양이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그들이 마치 나를 구경하는 듯 양옆으로 앉아서 바라보았다. 그때의 그 고양이들은 이 세계의 고양이들이 아니었다. 시간을 도둑질하는 고양이들이다. 한 마리씩 몇 분씩 도둑질하면 그 사람의 시간이 한 시간 이상 사라지기도 한다. 그때 고양이에게 받았던 느낌이 SNS 여자에게도 들었다.


이건 순전히 나의 생각일 뿐이지만 여자와 나의 공통점을 굳이 찾아보자면 자기혐오와 나르시시즘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가 있다. 그 혐오는 나에게서 나온다. 나를 향한 혐오이기도 하다. 사람들을 만나서 아무 소리나 지껄이는 나에 대한 혐오가 출발점이다. 쓸데없고, 쓸모없는 이야기를 주절거리는 나의 모습이 너무 혐오스러운 것이다. 사람들을 안 만날 수는 없다. 만날 때마다 나의 본모습, 나의 무의식은 어딘가 벽 속으로 숨어 들어가고 의식적으로 대하는 혐오에 가까운 나의 모습이 나온다. 그 모습을 약간 떨어져서 또 다른 내가 보고 있다.


또 다른 내가 보는 나의 모습은 혐오 그 자체다. 그런 나의 이야기에 호응하는 사람들 역시 혐오스럽다. 주위가 온통 혐오로 가득하다. 그와 동시에 나는 나를 사랑하고 있다. 내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다. 내가 나를 놓아 버린다면 나는 아마 어딘가에 버려진 꾸러미처럼 사라져 버릴 것이다. 여자의 글을 보면 분명 여자도 나와 비슷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자의 글은 진실하다. 여자는 투명하게 글을 썼다. 자신의 모든 것을 까발렸다. 물론 거짓말도 하겠지. 그건 여자의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다. 같이 있기 싫은 사람이 같이 밥 먹자고 하면 식사 전이지만 저 밥 먹었어요.라고 말이다.


그런 식의 거짓말은 누구나 한다. 적어도 글에 여자의 거짓이 묻어 나온 적은 없다. 여자는 딸을 위해서라도 살아가야만 한다. 태어났으니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우리는 자주, 종종 또는 가끔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그러는 도안 여자의 딸아이는 자랐고 그녀의 곁에는 남자친구가 또 바뀌었다. 나와는 어울릴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 여자가 나에게 고백했었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만약, 그때 나도 좋아한다고, 사랑하는 것 같다고 만나고 싶다고 이 말을 바로 했다면 지금 나는 바뀌었을까. 매일 생각나는 여자가 생각이 나지 않았을까. 나는 나의 물음에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그때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이 “그래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라는 말처럼 멋진 말을 하지 못했다. 나는 그런 놈이다. 그러나 여자는 그걸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고백을 하고도 내가 그것에 대해 확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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