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단편소설
하루키의 단편집 '회전목마의 데드히트'에는 '레더호젠'이라는 단편이 나온다. 레더호젠을 네이버에서 찾아봐도 정확한 해설은 없다. 독일의 전통의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정도다. 멜빵바지처럼 생겼는데 좀 다르다. 그냥 청바지에 멜빵이 붙어 있는 것 같은 독일 전통의상이 레더호젠이라고 한다.
단편 속에서 아내는 독일로 갔다가 독일에서 내부의 무엇인가가 빠져나가버리고 만다. 하루키의 많은 소설에서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이 내부의 무엇이 빠져나가 버리고 마는 일이 평범하게 일어나지만 단편소설 '레더호젠'은 사실에 입각하기 때문에 더 흥미롭다.
이 단편집은 하루키가 만난 사람들에게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엮어서 낸 소설 같지 않는 소설이라고 앞부분에서 말하기 있지만 이 역시 진짜인지 새빨간 거짓말인지 알 수는 없다. 하루키는 인터뷰를 할 때 어떤 작가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세상에 없는 작가의 이름을 지어내서 말하기도 하는, 참 재미있는 사람이다.
레더호젠은 꼭 동화 속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든다. 하루키의 글에는 동화 속의 인물 같은 비현실적 캐릭터가 많이 등장한다. 양사나이도 그렇고, 난쟁이도, 고양이 고마 녀석도, 키키도, 강치도, 티비피플도, 공기번데기도, 일각수도 그렇고 모두가 동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같다.
동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라는 생각을 어릴 때 많이 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하지만 어릴 때처럼 입을 야무지게 다물고 반드시 이뤄낼 것처럼 생각하지는 않는다.
동화나 만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체로 몹시, 아주, 기분 좋게 흥미롭다. 그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입 꼬리가 살바도르 달리의 수염처럼 된다. 서글프지만 하지만 현재, 내 주위에서 동화 속의 주인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미래소년 코난은 알아도 코난의 이야기는 잘 모른다. 코난의 세계관은 2008년의 디스토피아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에 관해서 아는 사람은 내 주위에는 없다. 엄마 찾아 삼만리는 알아도 마르코가 엄마를 찾아 그 어린 몸으로 얼마나 바다를 건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행스러운 건 인터넷으로나마 마니아들이 있고, 그들과 공유를 하고 소통을 가진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만화 속에는 인어공주가 있었다. 인어공주는 다른 주인공에 비해서 나에게는 아주 흥미로운 주인공이었는데 그건 (호러블 한쪽으로) 이상해서였다. 인어공주에게 시큰둥한 어린이는 나뿐이었을 것이다.
언어 공주가 예쁘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이상하다'였다. 팅커벨이 더 좋았고 각종 엘프가 훨씬 나았다. 물속에서 물고기 꼬리를 달고 헤엄치는 모습은 최악이었다. 마치 작은 차에 휠이 큰 바퀴에 붕붕 소리가 큰 마후라를 달고 달리는 차만큼 비극적이었다.
인어공주는 물고기꼬리보다는 그냥 여자 다리가 훨씬 예쁘고 그 다리로 물속에서 헤엄치는 모습이 어린 나의 눈에는 더 예뻐 보였다. 물고기 꼬리보다 그냥 여자의 다리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훌쩍 커버려 성인이 되고 조카를 데리고 대형 수족관에 갔을 때에도 어설픈 꼬리를 달고 헤엄치는 인어공주의 모습도 비극이었다.
물고기 꼬리에서 여자 다리로 바뀐다면 수족관은 더 아름다워졌을 것이다. 어린이들도 고등어 몸통 같은 물고기 꼬리보다는 역시 누나의 다리가 예뻐, 언니의 다리가 훨씬 예뻐! 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까.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시인 김중식의 시에서처럼 세상의 모든 창작과 아름다움은 비극에서 시작된다. 비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