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이야기
주성치가 빛을 두 배로 발했을 때 그 옆에는 오맹달이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빨리 펼쳐보고 싶어서 안달 나게 만드는 이유도 하루키의 옆에는, 그러니까 하루키의 에세이에는 늘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깜찍한 삽화가 있어서 이기도 했다.
아주 오래전에는 안자인지 인자인지 이거 뭐 이름이 마이클 부블래 같군. 했는데 언젠가부터 하루키만큼 친근해져 버렸다. 안자이 미즈마루 덕분에 하루키의 에세이 출간 소식이 들리면 안달 났던 적도 있었다. 오래전이지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웃음)
안자이의 삽화는 점, 선, 면으로 아주 간단하게 이루어져 있지만 하루키를 그려 놓으면 누가 봐도 이건 하루키네, 하게 된다. 부드러우면서 칼날 같다. 덕분에 여름날 안자이의 삽화가 그려진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고 있으면 모기 세 마리가 다리에 붙어 맛있게 피를 쪽쪽 빨아도 모른 채 키득키득하게 된다.
안자이 미즈마루의 본명은 와타나베 노보루다. 그래서 그런지 하루키의 소설 속에는 와타나베 노보루가 느닷없이, 뜬금없이, 기약 없이, 막무가내로 등장한다.
하루키의 글도 좋아하지만 안자이 미즈마루의 삽화를 보기 위해서 읽는 사람도 많이 생겨났다. 안자이 미즈마루의 일러스트는 지극히 단순하지만 그야말로 베스트다. 따라 그리기 정말 좋다. 따라 그리다 보면 재미도 있다.
하루키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독 안자이 미즈마루의 이야기를 에세이에서 많이 했다. 주로 여자를 좋아한다, 술을 밤새 마시네, 나를 꼬셔서 자꾸 술집으로 데리고 간다며 흉을 보지만 밉지 않은 흉이다. 하루키의 잡문집에는 안자이 미즈마루가 한 평론가와 함께 하루키에 대한 험담 같은 이야기를 한 것도 있는데 읽다 보면 하루키를 슬슬 몰아세우는 게 역시 재미있다.
이런 대 작가들이 농담을 하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우리는 앉아서 엿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고 기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안자이 미즈마루 씨가 2014년 3월에 죽고 말았다.
예전부터 내 주위의 사람들, 나의 부모나 친구들의 부모가 늙거나 병들어 죽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였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나 예술가가 예상보다 일찍 죽어버리면 알 수 없는 괴리가 찾아왔다. 이틀은 꽤 음험하게 보낸다. 그들은 나보다 좀 더 오래 살았으면 하는데 왜 자꾸 빨리 죽는가. 나보다 하루 더 살아야 내가 죽을 때까지 그들의 책을 읽고 그림을 볼 텐데.
그러고 보면 하루키는 사반세기 이상 꾸준히 운동을 하고, 그것보다 타고 난 유전자 덕분인지 꾸준하게 집필할 수 있다는 뉘앙스로 인터뷰를 했다. 그래서 조금은 안심이 된다. 일본에는 단편집이 새롭게 나왔으니 이제 한국어 번역본으로도 나오겠지. 언제 나오는가가 문제이지만.
안자이 미즈마루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 이제 하루키와 미즈마루의 조합을 볼 수 없다는 것만으로도 상심이 찾아왔다. 미즈마루 씨의 삽화를 보고 있으면 한일자의 입이 옆으로 쓱 올라가게 된다. 그건 미즈마루 씨의 힘이다.
슥삭슥삭 그려대는 그의 삽화를 이제는 볼 수 없지만 가끔 그 사람의 삽화가 그려진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