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
중학생이었던 나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이성에 관해 관심이 없었다. 아직 눈을 뜨지 못했다. 우리 학교는 남자 중학교였고, 우리 학교 옆에는 같은 재단의 같은 이름의 여 중학교가 있었다. 그래서 학교 아이들은, 이성에 이미 눈을 크게 떠 버린 아이들은 창문으로 내다보는 여중생들과 소리를 지르고 전기적 신호를 보내고 매일 난리였다. 두 학교 선생님들이 그렇게 막아도 학교와 학교 사이에서 몰래 만나 데이트를 즐기는 아이들은 늘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 대부분이 일진이었다.
미팅이 있어도 나는 관심이 없었고 땜빵으로 나가서 예쁜 애가 있어도 나는 눈길이 가지 않았다. 중학교 때에는 이성에 눈을 뜨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성에 눈을 뜬 아이들에 비해 아직 초등학생 같은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눈썹 정리는 생각지도 못했고, 수염도 기묘한 검은색으로 나기 시작했고, 향수도 뿌리지 않아서 청소년 냄새, 수컷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옷도 멋지게 입을 줄 몰라 체육복이나 입고 다녔다. 한 마디로 지질하고 소심한 놈이었다.
중학생들이 늘 그렇듯이 일요일은 기다리는 날이다. 일요일이면 동네 전통시장에 있는 수협 독서실에 갔다. 그곳에 간다고 하면 부모님도 안심했다. 그곳은 수협에서 제공하는 독서실로 수협회원의 자녀만 들어갈 수 있었는데 관리인 아저씨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독서실은 남녀가 같이 공부했다. 큰 공간에 칸막이가 있는 책상이 있고, 나머지 반은 도서관처럼 칸막이가 없이 큰 사각의 테이블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대학교 도서관이나 시립 도서관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항상 칸막이가 있는 책상에 앉았다.
공부하기 위해서는 아니고 나는 적고 싶은 소설이 있었는데 사람을 복제하는 내용의 소설이었다. 한창 보던 인조인간의 영화가 나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항상 나를 복제해서 한 과목씩 공부를 시켜 성적을 잘 받았으면 하는 생각을 초등학교 때부터 했다. 왜 나는 성적이 나오지 않는 것일까.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성적은 별로였다. 그것 때문에 나는 항상 위축되어 있었다. 공부를 하지 않고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오히려 당당할 수 있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전문적으로 적지는 못하지만, 복제인간으로 인해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다.
엄마에게 수협 독서실에 간다고 하면 의심이 많은 엄마도 어느 정도 공부를 한다고 믿었다. 수협 독서실의 소문은 관리인 아저씨가 공부하지 않으면 쫓아낸다는 말이 있었다. 그리고 몇몇은 그렇게 쫓겨난 이야기를 엄마도 알고 있다. 그래서 시립 도서관이나 일반 독서실에 가면 분명 공부는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중학교 성적도 하위권이었다. 도무지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초등학생 때에는 성적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중학생이 되니 성적에 대한 걱정이 크게 들지 않았다. 공부를 잘하는 애가 있으면 못 하는 애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 같은 애가 있으니 성적이 좋은 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말을 들으면 엄마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수협 독서실은 냉난방기기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에는 시원했고 겨울에는 따뜻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8월에는 오히려 서늘했다. 마치 지옥을 지키는 수문장이 내 쉬는 입김을 맞는 기분이었다. 수협 독서실은 지하에 있었다. 어느 일요일에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니 책상에 편지가 놓여 있었다. 예쁜 편지 봉투였다. 엽서에 가까운 편지였고 열어보니 한 여중생이 나에게 보낸 편지였다. 앞부분을 읽어보니 내가 토끼처럼 귀엽다는 말로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분명 나를 골탕 먹으려는 누군가의 소행이라 생각에 화가 났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편지를 찢어서 버렸다. 나처럼 냄새나고 옷 못 입고, 스타일도 구린 중학생에게 어떤 여중생이, 한창 이성에 눈뜨기 시작한 여중생이 나에게 고백을 할 것인가. 그건 누군가의 장난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빙 둘러봤다. 독서실 안에는 전부 모르는 학생들뿐이었다. 대부분 고등학생이었다. 고등학생들은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고작 고등학생일 뿐인데 마치 취업을 앞둔 대학생처럼 공부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저렇게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잠시 시무룩했다. 고등학생들에게 군인처럼 거대한 느낌을 받았다. 가끔 마주치면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저 형들이 나에게 장난을 치진 않았을 것이다. 저들은 공부에 코뿔소처럼 대들었다. 그런 형들이 나에게 장난을 칠 일은 없다.
도대체 누가 이런 장난을 치는 것일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