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2.
그로부터 며칠 뒤 학교 점심시간에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교문 밖에 있어서 나가보니 다른 중학교 3학년이었다. 그 학교에서 일진을 먹고 있는 형이었다. 나는 2학년이고 일진 형의 덩치는 나보다 컸다. 말랐지만 두
배는 커 보였다. 그 뒤로 몇 명이 더 있었다. 전부 일진들이었다.
“너, 내 여동생이 편지 줬는데 그 자리에서 편지를 찢었다면서?”
“네? 전 그런 적 없는데요.”
“너 거짓말할래? 그때 수협 독서실에서"까지 이야기했을 때 생각이 났다. 나는 일진 형에게 이야기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장난을 치는 건 줄 알았다. 어떤 애가 나 같은 놈에게 편지를 줄 것인가. 나는 일진 형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의 말은 믿어주지 않았다. 일진 형은 자신의 여동생 얼굴을 보고 내가 편지를 찢어 버린 줄 알고 있었다. 점심시간 내내 일진 형에게 협박받았다.
자기 동생 어디가 마음에 들지 않느냐고 계속 나에게 물었다. 나는 편지를 준 애의 얼굴도 모른다. 밖에 나갔다 오니 책상에 편지가 있었을 뿐이었다. 일진 형의 말로는 나에게 편지를 주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편지를 찢어버리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계속 집에서 누워만 있다고 했다. 맙소사. 그럴 리가.
일진 형은 화가 많이 났다. 동생에게 한 모욕을 참을 수 없었다. 문제는 수업이 마치면 학교 앞에서 기다릴 테니 나오라는 거였다. 진짜 맙소사였다.
교실에 와서 점심시간 이후 수업에 집중이 안 되었다. 집중한다고 해서 성적이나 선생님이 설명하는 걸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수업 시간에 딴짓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줄 수는 있다. 하지만 나는 일진 형이 신경이 쓰여 내내 그 생각에 빠져 있다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그만! 하고 소리를 쳤다. 하필 제일 악독한 수학 시간에. 큰일이다.
수학은 목이 없고 머리가 크다. 키도 작고 머리숱이 너무 많아서 뭔가 움직이는 식물처럼 보였다. 화를 잘 내고 항상 입이 덜 다물어 있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전혀 기분 좋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괴물을 신부로 억지로 맞이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수학은 외모로 눈에 쉽게 띄는 스타일이다. 선인장이 막 걸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날씬하지 않은데 항상 꽉 끼는 감색 정장을 입고 다녔다. 그렇다고 뚱뚱하지도 않았다. 저렇게 딱 달라붙는 정장만 아니면 괜찮아 보일 텐데 하는 몸매였다. 오른손은 분필을 쥐고 있고 왼손은 수학책이나 지휘봉 같은 막대기를 쥐고 있는데 눈에 들어오는 건 유난히 반짝이는 금색 시계다. 어떻게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지 않는 고급이 묻어나는 손목시계인데 우리에게 잘 보이게 하려고 자주 손목을 들어서 시계가 잘 보이게 수학책을 들었다. 히스테리가 심한데 나는 어쩌자고 마음속에 있는 말이 수학 수업 시간에 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그 순간 정적이 흘렀다. 몇몇 아이들은 곧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거라는 기대에 차 있었다. 수학은 목이 없는 등을 보이며 설명하다가 멈칫하더니 뒷모습으로 화가 보였다. 아 큰일이다 싶었다. 수학은 그날 신부가 될 여자와 싸우고 왔는지 아주 저기압이었다.
“누구야?”
낮은 수학의 목소리였다. 소리를 지르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는 건 정말 화가 많이 났다는 말이다. 나는 가만있었다.
“누구야,,”
더 낮은 목소리였다. 수학은 뒤로 돌았다. 눈에 광기가 들어 있었다. 공포스러웠다. 아이들은 나를 쳐다봤다. 눈으로 수학에게 ‘쟤가 그랬는데요’라고 했다. 나는 손을 들었다.
“일어나.”
수학은 날카로운 저음으로 말했다. 꼭 잘 드는 칼날로 회를 뜨는 듯한 저음이었다. 나는 일어났다. 수학은 오늘은 수업해야 할 진도가 있으니 수업 마치면 남으라고 했다. 순간 좆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학과 일진이 동시에 나를 찾는다. 나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고민에 휩싸였다. 15년 인생을 살면서 가장 큰 난제에 봉착했다. 수업이 끝나갈수록 심장이 벌렁거리고 심하게 뛰었다. 나는 수학이나 일진이나 어느 쪽에 가더라도 좋지 못한 결과만 기다리고 있다. 절대 낙관을 가질 수 없었다.
머리가 너무 아팠다. 수업 시간에 교실에 앉아 있을 수 없어서 양호실에 보내달라고 했다. 국어 시간이었다. 국어는 여선생님이다. 얼굴은 수더분하게 생겼지만 남자 중학교에서 살아남으려면 독해져서 아이들을 휘어잡아야 해서인지 내면은 얼굴과 달랐다. 입에서 거친 말이 나올 때면 경이롭기까지 했다. 아들이 다섯 살이다. 아들 앞에서는 욕을 하지 못하기에 우리에게 퍼붓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 선생님이었다.
국어는 양호실에 가는 이유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국어 시간은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로 시작해서 국어 시간에 빠지면 안 되는 이유 열 가지 중 두 번째를 들을 때 나의 얼굴을 시뻘게지고 숨을 할딱거리니까 아차 싶었던지 얼른 양호실로 보내주었다. 혹시 잘못되면 국어 시간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교감에게 불려 간다. 국어 선생님 입장에서는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나는 교실을 나와서 복도를 지나 양호실로 가다가 운동장으로 나왔다. 그때의 내가 왜 평소에 하지 않던 짓을 했는지 아직도 알지 못한다. 수학에게 혼나는 걸 너무나 싫어하기 때문에 양호실에 간다고 하면, 나는 양호실에 가는 편이다. 비록 꾀병일지라도 중간에 다른 마음을 먹고 샛길로 빠지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에도 친구들과 놀다가 더 놀고 싶은 유혹이 있어도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면 나는 그대로 집으로 가는 그런 지질한 아이였다. 그런데 양호실에 간다고 하며 나와서 운동장으로 나왔다.
국어 시간이 수업 마지막 시간이다. 국어 다음 청소가 끝나면 하교다. 운동장 밖에 일진 형이 기다리고 있겠다는 생각에 겁이 났다. 그러나 학교에 남아도 수학이 기다리고 있다. 수학도 겁이 났다. 일진 형이나 수학이나 둘 다 때릴 것이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걸 안다. 맞는 건 너무나 싫다. 누가 됐던 어느 한 사람에게 맞아야 한다. 수학에게는 맞아봐서 아프다는 걸 안다. 그러나 일진 형에 관한 건 오리무중이라 더 겁이 났다. 수학은 엉덩이에 몽둥이로만 때리지만 일진 형은 주먹을 휘두를지도 모른다.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일진 형을 염탐하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