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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줄은 몰랐지만 3

소설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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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로부터 며칠 뒤 학교 점심시간에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교문 밖에 있어서 나가보니 다른 중학교 3학년이었다. 그 학교에서 일진을 먹고 있는 형이었다. 나는 2학년이고 일진 형의 덩치는 나보다 컸다. 말랐지만 두

교문 밖에 정말 일진 형이 와 있는지 궁금했다. 나는 운동장으로 나가서 교실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벽을 타고 교문 쪽으로 다가갔다. 허리를 약간 굽히고 교실에서는 내가 보이지 않도록 살금살금 움직였다.


나는 누구도 보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모습을 하필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던 수학이 창문으로 나를 발견했다. 화장실은 학교 교실과는 달리 끝에 붙어서 창으로는 담벼락이 잘 보였다. 수학은 내가 도망가는 줄 알고 있었다. 화가 가분수 꼭대기까지 오른 수학은 씩씩거리며 나를 잡으러 왔다. 좋지 못한 상황과는 다르게 날이 너무 좋았다. 학교 다닐 때 날씨는 뭐랄까, 수업 시간에 나오면 항상 아주 좋다. 이런 날 학교를 나가서 밖에서 놀았으면 하는 생각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따라다녔다.


고개를 꺾어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해를 쳐다보았다. 꺼져가는 오후의 세상을 빛내고 있었다. 수학은 그 장면을 마치 자기 말을 듣지 않고 놀리고 있는 것처럼 받아들였다. 수학은 번뜩이는 금시계를 손목으로 탁탁 털고 손도 씻지 않고 운동장으로 나왔다. 오직 나를 잡겠다는 일념 하나였다. 그 모습은 좀비와 다를 바 없었다. 나는 교문 근처에서 조심하며 교문 밖에 일진 형이 있는지 살폈다. 하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하교 전 교문 앞은 너무나 고요했다. 폭풍 전야 같은 느낌이었다. 일진 형은 수업이 마치는 시간에 맞춰 오는 것일까. 그러려면 한 30분 정도 남았다. 교문을 나가 벽을 따라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학교 담벼락을 따라 학교를 한 바퀴 조심조심 돌았다.


그때 수학은 나를 잡으려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수학은 교문을 나서자마자 누군가에게 무언가로 얼굴을 맞았다. 근데 그건 질퍽이는 것으로 아주 냄새가 고약했다. 악취 중에서도 최상위에 있는 똥내였다. 일진 형과 친구들이 나를 발견하고 교문 옆에 대기하고 있다가 수학이 걸어 나오는 타이밍과 내가 담벼락을 한 바퀴 돌았을 때의 타이밍이 엇비슷하면서 수학의 얼굴에 일진 형이 던진 똥 봉지가 맞아서 터진 것이다.


“어떤 새끼야!”


수학은 화가 머리끝으로 올라 폭발하고 말았다. 일진 형은 이거 큰일 났다며 친구들과 함께 도망쳤다. 수학은 일진 형을 따라갔다. 온몸에 똥을 잔뜩 묻힌 채, 똥내를 풍기며.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나는 너무 놀랐다. 그 일을 계기로 수학은 일진 형을 잡으러 다니기 시작했고 나에 대한 일은 까맣게 잊었다. 일진 형은 교복을 입고 오지 않아서 수학을 피해서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얼굴에 똥을 맞은 이상 수학은 포기를 몰랐다. 그 일 때문에 그날 저녁 예비 신부를 만나서 혼수품 보러 가는 약속이 깨졌다. 예비 신부와 다투고 나서는 더욱 전투력이 상승해서 일진 형을 찾으러 도시의 각 학교를 전부 뒤졌다.


그러나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수학의 바람과는 달리 시간이 걸렸다. 일진 형의 사진을 찍어 놓지 않아서 수학은 시간을 내서 일일이 학교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찾지 못했다. 일진 형은 그 뒤로 우리 학교 근처에는 오지 않았다. 절대 올 수 없었다. 수학의 소문은 학교에 쫙 퍼졌고, 수학의 별명은 똥수가 되었다. 수학의 이름 끝 자가 ‘수’였다.


주말에는 수협 독서실에 나왔다. 친구가 따라붙었다. 친구는 나의 이 모든 일들을 알게 되었고 나에게 편지를 줬다는 그 애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여중생은 독서실에 없었다. 전부 여고생들뿐이었다. 친구는 같은 반이었지만 같은 동네는 아니었다. 다른 동네에 살지만 내가 수협 독서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니, 같이 오고 싶어 했다. 수협 회원의 자녀들만 들어올 수 있다고 말하지 못했다. 관리인 아저씨가 검사하지 않지만 어쩌다가 한 번 할 때가 있다. 검사를 해서 회원증이 없으면 쫓겨난다.


나는 사실 회원증이 없다. 이상하지만 내가 올 때마다 관리인 아저씨는 검사하지 않았고 매주 오다 보니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출입하게 되었다. 그래서 회원증 검사를 하면 나 역시 빼도 박도 못한다. 검사를 해서 회원증이 없으면 쫓겨나야 한다. 다행히 관리인 아저씨는 내가 인사를 하고 친구를 데리고 들어가니 그대로 통과시켜 주었다. 그 순간이 정말 조마조마했다. 가슴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래 왔나.” 라며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수협의 지하는 참으로 이상하다. 더운 날에는 시원하고, 추운 날에는 따뜻하다. 봄은 포근하고, 가을은 안락하다. 친구는 반에서 10등 안에 든다. 역사를 좋아하는 녀석이다. 친구와 친해지게 된 건 제도 시간에 녀석의 숙제를 도와줬기 때문이다. 녀석에게는 이상하지만, 상상력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제도 시간에는 자신이 앞으로 살 집의 도면이나 그림을 투시도 형식으로 그려보라는 거였다. 친구는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기술 선생님은 무섭다. 특히 제도 시간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혼날 수 있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내가 그리고 있던 집의 도면을 주었다. 내가 원하는 집은 타원형의 통유리로 둘러싸여 있는 집으로, 버튼을 누르면 커튼이 자동으로 걷히고 침대는 벽으로 들어가서 공간 활용을 하기에 용이한 집이었다. 미래형 인텔리전트 홈 시스템을 구축한 집이었다. 물론 친구에게 이렇게 설명도 해주었다. 그래야 기술 선생님이 물었을 때 답을 해야 하니까.


근데 녀석이 머리는 또 좋아서 질문에 대답은 잘했다. 아니 상상력을 더 해서 설명을 해버려 기술 선생님의 칭찬을 들었다. 그 덕에 기술 점수 50점 반영이 되는데 만점을 받은 건 그 녀석 혼자였다. 그 덕에 나는 점수가 낮았다. 그 뒤로 녀석은 나에게 도시락도 나눠주고 같이 공부하기를 바랐다.


“실은 나 소설을 쓰고 있거든. 방해하지 않으면 같이 할게.”


친구는 열심히 공부했고 나는 열심히 소설을 적었다. 친구는 내가 쓰는 소설에 관심이 많았다. 이 녀석 알고 보니 고전 소설을 아주 많이 읽었다. 의외였다. ‘호밀밭의 파수꾼’부터 ‘위대한 게츠비’, 특히 ‘고도를 기다리며’는 세 번이나 읽었다.


“왜 소설을 그렇게 많이 읽었어?” 나는 물었다.


“상상력이 없어서 엄마가 소설을 읽어보래, 그래서 읽었지. 근데 상상력이라는 건 늘지 않아. 상상력은 태어날 때 안고 태어나는 거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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