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4.
녀석의 말을 들으니 정말 그랬다. 상상력은 노력한다고 해서 그렇게 성적처럼 부풀어 오르지 않는다. 나는 소설을 완성하면 녀석에게 보여주겠다고 했다. 녀석은 오케이 마트를 그렸다. 우리의 주말은 평온하게 흘렀다. 친구는 열심히 공부했고 나는 열심히 소설을 적었다. 그러나 소설은 생각만큼 막힘없이 적히지 않았다. 어떤 부분에서 막히기 시작하면 아무리 생각을 파내도 나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멍하게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여학생들이 앉아서 공부하는 책상 쪽을 쳐다보았다. 눅누가 책상 칸막이 위로 고개를 내밀어 여기를 보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나를 보고 있었다. 여학생이었다. 나에게 편지를 준 여학생인가? 하지만 고개를 내민 여자는 고등학생이었다. 우리는 눈이 마주쳤는데 서로 피할 생각은 않고 서로 눈을 쳐다보았다. 눈으로 욕을 하는 것은 아니고 어? 뭐지? 같은 느낌의 눈빛이 서로 오고 갔다. 여고생은 눈빛으로 잠시 독서실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나는 눈빛으로 알았다고 했다. 눈빛으로 대화가 된다는 게 아주 신기했다. 친구에게 화장실에 갔다 온다며 밖으로 나왔다. 수협은 전통시장 한가운데 있다. 그래서 시장이 한창 열리는 시간에 독서실에 가면 재미있다. 자주 밖으로 나와서 시장에서 맛있는 음식을 사 먹을 수 있고, 놀거리도 많다. 그러나 자주 밖으로 나가면 관리인 아저씨에게 걸리고 만다. 관리인 아저씨는 독서실 관리할 뿐인데 수협 정식 직원이었다. 아저씨 몰래 왔다 갔다 하는 짜릿함이 있어서 그걸 재미로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나는 지질하고 겁이 많아서 밥 먹으려고 한 번 나갔다가 들어오면 집에 갈 때까지 나가지 않았다.
밖으로 나오니 여고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미여고 2학년이라고 밝힌 그녀는 일진 형에 대해서 나에게 물었다. 일진 형은 그날 이후 보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연상연하 커플이었다. 우리 학교 수학 선생님도 일진 형을 찾으러 다니고 있었다. 여고생 누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일진 형이 그 뒤로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학교에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진 형은 이전에도 가출을 여러 번 해서 처음에는 그저 가출한 것으로만 생각했지만 연상 여자 친구는 이상하다고 했다. 왜냐하면 자신과는 연락이 되어야 하는데 전혀 연락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찾아왔다. 그러나 나는 아는 게 없다. 일진 형에 대한 일은 기억도 하기 싫은 게 나의 마음이다. 일진 형의 여자 친구는 그날에 대해서 자세하게 듣고 싶어 했다. 나는 그날 있었던 일을 말했다.
나를 찾아왔고, 동생이 나에게로 편지로 고백했는데 나는 그 편지가 누군가가 나에게 하는 장난인 줄 알고 찢어버렸다. 나는 그 편지가 나를 놀리는 건 줄 알고 당시에는 기분이 나빴다. 근데 그 편지는 일진 형의 여동생이 나에게 준 것이며, 찢어 버린 것에 대해서 동생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나처럼 지질하고 옷도 못 입는 놈에게 고백하는 여자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 부분에서 여고생 누나는 웃었다. 그래서 동생의 일 때문에 일진 형이 나를 찾아왔고 그날 하교를 하고 교문 밖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니 일방적으로 나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그날 수학 선생님의 일이 겹치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 나는 최대한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또 누가 있었어? 걔 옆에 말이야?”
누나의 말에 나는 생각했다. 사실 그날 너무 겁이 나서 일진 형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여고생 누나는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일진 형 뒤에 또 다른 형인지 두 명이 있었고, 여학생도 한 명 있었던 것 같았다. 거기까지 듣고 일진 형 여자 친구인, 여고생 누나는 오케이 알았다고 했다.
“그 쌍년 하고 눈이 맞아?”라며 저음을 내뱉었는데 마치 탱크가 저속으로 지나가는 것처럼 무서웠다. 그랬다. 누나의 말로는 얼마 전부터 자신을 대하는 게 심상치 않았다고 한다. 심상치 않았다는 건 평소와 다르게 자신을 물건 취급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는 것, 그래서 벼르고 있던 차에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도주했다. 그렇게 누나는 말했다. 누나 입장에서는 하늘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니 화가 머리끝까지 오르는 것처럼 큰일이겠지만 나에게는 사실 와닿지 않았다. 나는 이성에 눈을 뜨지 못한 지질한 중학생이었다.
누나는 나에게 일진 형을 같이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펄쩍 뛰었는데 제안이라는 건 일진 형을 찾는 걸 도와주면 다시는 건들지 않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얼굴에 똥을 뿌릴 정도라면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 그런 놈이라면 나중에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 내내 불안해하며 지내야 한다. 하굣길에 불려 가 둘러싸여 두들겨 맞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처음 중학교에 들어왔을 때 경험이 한 번 있었다. 초등학교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완전히 달랐다. 나는 지질해서 학교에서 일진 아이들이 나를 건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어느 날, 1학년의 일진들이 나를 불렀다. 나는 못 들은 척 그냥 집으로 갔다. 그다음 날 학교 뒤로 끌려가서 여섯 명에게 둘러싸여 맞았다. 일방적인 폭행이었다. 주먹과 발이 나의 얼굴과 몸으로 날아왔는데 맞으면서 든 생각은 의외로 맞는 게 아프지 않은데?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 나는 끙끙 앓았다. 일진은 무서운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수학의 얼굴에 똥을 던진 다른 학교의 일진 형은 더 무서운 놈이다. 그리하여 나는 누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걱정이 먼저 앞섰다. 제안을 받아들였다한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누나는 우리 학교 수학 선생님이 일진 형을 찾을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수학 선생님에게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좀 알아봐 달라는 것이다. 나는 친구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했다. 그런데 친구는 같이 끼겠다는 것이다.
“너 그러면 성적 떨어져. 너네 엄마한테 나까지 혼나”라고 말했지만, 친구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반짝였다. 그렇게 일진 형을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1막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