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코가 붉은 피 같은 존재라면
미도리는 이름처럼 대책 없는
녹음의 싱그러운 존재다.
키즈키의 죽음 후 파도가 몰아치듯
스무 살이 되어 버린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일주일에 한 번 만나 목적지도,
결말도 없이 걷는다.
영혼 없이 어떤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이렇다 할 마음을 내보이지도 못했는데
나오코는 요양소에 들어가 버리고
이것이 방황인지 먼지의 흐름인지도 모르고
허무를 삼킨 채 하루하루를 보내는
와타나베 앞에 청량감 같은 미도리가 나타난다.
나오코에 닿을 수 없는 와타나베의 붉은 우울을
정화시키는 건 맑고 투명한 미도리다.
그러나 우울이란 밝음 속에 숨어 있는
우울이 더 단단하고 크고 위험하다.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못하는
것처럼 미도리의 대책 없는 밝음이 어쩌면.
미도리는 와타나베만 곁에 있어주면 된다.
“약속을 해 놓고도 만나러 나오지 않아도
남는 게 시간이라 괜찮아,
자산 같은 시간에 책이나 읽으면 돼
(이런 대사는 책에도, 영화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나의 생각일 뿐)”
라고 해버리는 와타나베를 미도리는 좋아한다.
미도리는 그게 사랑이다.
미도리가 사랑스러운 이유는 현실감이 제로다.
온통 붉은 피로 세상이 덮이려 할 때
미도리 하나 만의 존재로도 와타나베는
살아갈만하다고 느꼈을지도 몰라.
상실의 시대…내가 사랑한 나의 미도리 https://youtu.be/2XADlc9dLfI?si=eibuGaNxw1_VSpy1
노르웨이 숲 Norwegian W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