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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26. 2020

건우라는 이름이 좋은 건

에세이

건우라는 이름이 좋아서 아이를(여자건 남자건) 낳으면 건우라고 지어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아이가 없다. 결혼도 하지 않아서 언젠가 소설 속에라도 건우라는 이름을 등장시키고 싶다.


건우라는 이름이 좋은 이유는 백건우 때문이고, 백건우의 음악을 듣게 된 건 순전히 친구 때문이었다. 그녀는 현재 한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다. 쾰른 음대에서 유학시절 걸핏하면 전화가 와서 힘들다고 징징거렸다.


그녀가 레슨을 마치고 접시를 닦고 이것저것 하고 전화를 하면 나는 대체로 쿨쿨 잠들어 있던 새벽이었다. 으, 하는 좀비 소리로 전화를 받으면 슈만이 어쩌고 독일 사람들이 어쩌고 오늘 식사를 대접받은 독일 아줌마는 어쩌고 하는 이야기들.


폴더폰을 귀에 걸쳐 놓고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오늘 연주하다 손톱이 빠졌어. 진지하게 이야기를 쏟아내는 그녀였지만 이쪽에서는 몽롱한 새벽이니 그녀의 진지한 모든 이야기를 정색하며 진중하게 들을 수만은 없었다. 전화비 많이 나오지 않아?라고 하면 또 다른 이야기를 주렁주렁 늘어놓았다.


아마 그녀는 내가 잠결에 대충 흘려듣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가족에게는 힘든 이야기를 못하는 성격상 누군가에게는 한국말로 전부 토하듯 뱉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 후에 그것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해본 적은 없다.


쾰른 음대는 학비가 없다. 대신에 졸업을 하려면 혹독하다. 마녀의 젖꼭지처럼 혹독한 12월을 표현한 셀린저의 문장보다 혹독하다. 혹독하고 혹독한 하루의 연속이었다. 생활비까지 책임져야 했던 그녀는 절박했고 필사적으로 건반을 두드렸다.


그런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가 백건우였다. 덩달아 클래식에 대한 무식쟁이 나 역시 백건우의 연주를 듣게 되었다. 백건우가 연주하는 걸 들어보면 나이가 많음에도 청년 같은 힘과 아이 같은 유약함과 느긋한 어른의 면모가 다 느껴지는 게 못내 신기했다. 그래서 연주를 보고 있으면 참 못 생겼네, 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고 정말 멋있구나, 하게 된다.


다행인지 아파트 바로 옆, 1분 거리에 예술 회관이 있어서 백건우가 매년 연주회를 가졌다. 게다가 가격도 엄청나지 않아서 야호 하며 왕왕 보러 다녔다. 그게 몇 년 전이었다. 어쩐 일인지 이후 매년(까지는 아니지만) 열리는 백건우의 연주회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얼핏 윤정희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게 오래된 일이었다.


김수용 감독의 영화를 좋아해서 여러 편 찾아봤다. 그중에서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영화적 작법으로 옮겨 놓은 ‘안개’ 속에 10대의 윤정희가 인숙으로 나온다. 문예영화를 고집하던 김수용의 ‘안개’를 보면 술 집에서 윤정희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소설 속 인숙이 그대로 튀어나왔을 정도로 해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본 윤정희의 영화가 이창동 감독의 ‘시’였다. 거기서 윤정희는 치매가 걸린 노인으로 나왔다. 그래서 그런지 백건우의 이 인터뷰가 애착이 간다.


인간의 삶은 필멸하게 되어있다. 살아봤자 몇 년이나 살지 모른다. 백건우의 말대로 언제까지나 자신을 몰아세우며 자신과 싸워가며 스트레스받을 필요가 없다.


내일을 위해서?라는 말보다 오늘을 버티는 것이다. 하루키도 근간의 인터뷰에서 죽음에 대해서 언급을 했다. 언젠가는 죽기 때문에 사후에 자신의 원고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게 싫어서 와세다 대학에 기증을 한다고 했다. 자기 자신과 싸우지 말고 자신 자신을 사랑하면서 그냥 오늘을 열심히 버티자. 언젠가 건우라는 이름을 소설 속에 등장시키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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