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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27. 2020

시대를 역행하는 모기향 냄새를 쫓아서

일상 에세이

이제 곧 여름이다. 나에게 있어 여름을 대표하는 단어는 집 앞의 ‘바닷가’와 ‘모기향’이다. 바다 자체보다는 바다를 끼고 있는 해변을 좋아한다. 해변의 느낌, 발에 닿는 백사장의 기분과 뜨거운 태양 밑에서'해변의 카프카’를 읽으며 칼스버그를 홀짝이는 편안함을 매년 가질 수 있는 바닷가가 좋다.


그리고 또 하나 ‘모기향’이 좋다. 정확하게는 모기향 냄새를 좋아한다. 일본 드라마 ‘나기의 휴식'에서 모기향을 피우는데 나기는 모기향 냄새를 좋아한다. 드라마의 그 장면이 참 마음에 든다. 나도 모기향이 타들어가는 냄새를 좋아한다. 모기향 냄새는 모두가 좋아할 거라는 나의 생각이 빗나간 건지, 어느 여름부터 모기향은 서서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어릴 때 모기 향내가 좋아서 빨리 여름이 왔으면 하던 때가 있었다. 모기향이 타들어가는 냄새는 나를 사로잡았다. 서서히 타들어가는 모습과 다 끝나버린 뒤의 모기향 모습은 원형을 유지한 채 재로 변해있는 모습까지 완벽에 가까웠다. 생과 사의 모습을 잠들기 전과 후에 볼 수 있었다.


아버지는 모기향을 피우면 방에 모기장을 쳤다. 모기장을 치는 순간 마치 캠핑을 온 것처럼 흥분이 되었다. 티브이 주사선 속의 세계에 들어가 있는 미묘한 기분. 그 속에 앉아서 조안나 골드를 먹고 있으면 완성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느낌이었다.


바다는 5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50년 전이나 비슷하고, 바닷가 역시 크게 달라진 것 없이 매년 여름이면 백사장을 뜨겁게 해서 나를 즐겁게 해 준다. 하지만 모기향 냄새는 이제 맡을 수 없게 되었다. 전통시장의 생선코너에서 모기향을 피우는 정도다.


이제 어쩌면 모기향 냄새가 그때처럼 좋을지도 알 수 없다. 추억이라는 건 기억이라는 필터를 거치면 제멋대로기 때문이다. 여름에 모기향을 피우며 그 냄새를 듬뿍 맡으며 맥주를 마시는 그런 일탈적인 평온함을 어른이 되어서 얼마나 더 가질 수 있을까. 나는 수단이 좋지 않음에도 지치지도 않고 헐렁헐렁 삶을 보내고 있다.


한 브런치 작가의 글을 봤다. 살아남기에 관한 글이었다. 시월드에서 살아남기, 흙수저로 살아남기, 까칠한 상사 밑에서 살아남기,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살아남기, 계약직으로 살아남기, 갑질에서 살아남기, 정년까지 살아남기, 오만가지 다이어트에서 살아남기, 쇼핑 유혹에서 살아남기, 대출에서 살아남기, 열등감에서 살아남기, 비난에서 살아남기 등등등이라는 제목으로 100권짜리 전집을 만들 수도 있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를 기점으로 해서 더욱 심해진 건 사람들이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노동이 자기실현의 과정이 아니라 노동이라는 건 생존의 수단이 되어 버렸다. 사는 게 전쟁이 되었다. 생존투쟁을 하고 있는 현재가 되었다.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여기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게 목표가 되어 버렸다.


어쩐지 나처럼 돈도 제대로 벌어 들이지 못하면서 모기향 냄새나 쫓고, 여름이면 바닷가에서 책이나 읽으며 맥주나 홀짝이는 삶을 사는 사람은 살아남지 못하는 사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나 같은 인간은 이런 세계에서 일찌감치 퇴화되어서 사라져야 하는 것이 마땅한 현실이다. 나는 분명 생산성이 낮게 일을 한다. 무엇보다 일을 하는 시간이 짧다. 그 때문에 당연하지만 자본과는 거리가 먼 생활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삶의 만족도는 나쁘지 않다. 살아남기 위해 투쟁을 하는 시대에 맨발로 다니는 삶은 어딘가 모르게 어긋나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가 이재명 지사의 다스뵈이다 출연 방송을 보니 -노동이 생존의 수단이 되었다.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가 없다. 그래서 먹고살 수 있는 만큼의 돈을 벌어야 한다. 최하 한 달에 200백만 원은 벌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러니까 박터지는 것이다. 기업에 막 투자한다고 일자리가 생기나? 안 생긴다. 그러면 어떤 일자리가 생기나? 누가 나한테 한 달에 백만 원만 주면 매일 꽃구경이나 하고 행복하게 건강하게 살고 싶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일주일에 세 번만 길거리 공연을 하면서, 생산성은 낮지만 삶의 만족도가 높은 일자리가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안 된다. 생산성이 낮기 때문에 먹고살 수가 없다. 그래서 새로운 문화예술적 일자리,  '삶의 만족도가 높은, 생산성은 낮은 일자리가 생겨나게 되면' 굳이 노동시장에 가서 머리 깨지고 하면서 일자리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런 일자리가 과연 가.까.운. 시.일.에 사람들에게 와라락 하며 다가올 것인가. 돈이 많다면 삶의 만족도가 그렇지 못한 이들에 비해서 높을 것인가. 삶의 만족도라는 건 어쩌면 개개인이 가지는 유전적인 요인처럼 날 때부터 요만큼 내지는 이만큼 가지고 태어난 성질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잭 케루악의 ‘론섬 트라베라’는 높은 산꼭대기에 있는 오두막에서 고립되어 외톨이로 3개월 동안 산불 감시원으로 지내는 이야기다. [사람은 그 인생에서 한 번쯤은 황야로 들어가 건강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지루하기까지 한 고독과 절망을 경험해야 한다. 자기는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뒤에 자기 자신의 진실, 숨겨져 있는 능력을 깨달아야 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하루키의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서도 스미레가 그런 생활을 동경한다. “매일 산꼭대기에 서서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고 어느 산에서도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거야. 하루 종일 해야 하는 일이 그것뿐이야. 남는 시간에는 책을 읽고 소설을 쓰는 거야. 밤이 되면 털투성이의 커다란 곰이 오두막 주위를 어슬렁거리면서 배회하고. 그것이야말로 내가 추구하고 있는 인생이야. 거기에 비하면 대학 문예과 따위는 오이꼭지 같아.”


나는 어쩌면 잭 케루악의 소설 속 산불 감시원처럼 죽 생활을 해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생산성이 낮은 일을 하면서도 삶의 만족에 대해서 그렇게 불만 없이 지내왔을 것이다. 넌 현실에 있어서 다른 이들만큼 신경 쓸 일이 없어서 그래, 같은 말을 많이 들었다. 결혼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아직까지 대출이 없고 빚이 없다. 그럼에도 나의 이름으로 된 조그마한 스튜디오가 있고 거기서 오랫동안 일을 하고 있다. 물론 머물러 있는 시간은 몇 시간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요즘에는 그러지 않지만 불과 3, 4년 전만 해도 '오늘은 하루 종일 사진을 찍고 싶군'라는 생각이 들면 그대로 작은 카메라를 들고 티 지방으로 훌쩍 가버리고 말았다.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지 않아서라고 주위에서는 그럴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대체로 늘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부모는 가난했기에 나에게 무엇인가를 물려줄만한 자산이라는 것이 없었다. 가난은 어렸던 나를 부모에게서 떼어서 외가에서 2년 동안 지내게 했다.


요즘은 미니 픽션, 마이크로 픽션이나 플래시 스토리라는 용어를 가지고 있는 손바닥 소설이 새로운 베스트셀러의 영역이 돌입했다고 한다. 이 흐름은 간결성, 다양성, 파편성, 신속성, 가상성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이런 소설 쓰기 방식은 21세기의 흐름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가독성에 있다.


나는 분명하게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재미도 없고 원고지 5,000매 정도의 가독성이 떨어지는 긴 글을 적어서 매일 올리고 있는 형편이다. 여름이면 또 영국에서 오는 죠의 가족과 바닷가에서 훌러덩 벗고 맥주를 마시며 허허실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삶이 파괴되지 않는 건 아마도 나의 만족도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지금까지 지내왔다.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을 어느 정도 타협시킨 다음 해보는 것이다. 그러다 막히면 그때 가서 아, 안 되는군, 어떻게든 해보지 뭐. 같은 생각이다.


확실히 나는 다른 이들에 비해 예민하고, 많이 불안하고, 좀 더 조급함을 가지고 있지만 안 되면 할 수 없고, 가 나를 이대로 끌고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좀 못 벌면 적게 쓰면 되지, 같은 생각으로.


올여름에도 바닷가에 드러누워 모기향을 피우고 냄새를 맡으며 맥주를 홀짝일 수 있을까. 그것이 역행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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