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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02. 2020

달리는 건 힘들지만 마라톤 중계는 재미있어

조깅 에세이



남자들은 여자들에 비해 스포츠에 관심이 많다. 축구나 농구 같은 구기종목은 정말 인기가 많다. 그에 비해 나는 스포츠에 별 관심이 없다. 그런데 마라톤 중계는 아주 재미있게 본다. 사람들은 그저 재미없게 달리는 것을 중계하는데 왜 악착같이 보냐고 하는데 재미없게 달리지 않는다. 아주 흥미롭다. 마라톤 중계는.


마라톤 중계를 보면 언제 시간이 지나갔나 할 정도로 아주 재미있게 사람들은 달린다. 2018년 서울마라톤이 오전에 있었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오전부터 씩씩하게 긴 거리를 달렸다. 중계가 끝이 나고도 달리는 사람이 있다. 하루 종일 달린다고 해서 나무라는 사람은 없다.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는 기록에 신경 써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완주를 하는 것에 의미를 둔다.


마라톤의 주제는 ‘달리자, 나답게’였다. 서울마라톤은 많은 연예인들과 셀럽들도 함께 뛰었다. 서울마라톤에서는 재미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데, 피에로 분장으로 반환점을 도는 사람, 정장을 입고 반환점으로 달려오는 사람, 캡처를 하지 못했지만 세종대왕 복장을 한 사람, 무엇보다 줄넘기를 하며 40킬로미터가 넘는 구간을 달리는 중년의 한 남성도 있었다. 정말 대단하다. 아주 안정된 자세로 줄넘기를 하며 반환점을 도는데 나이가 많은데도 등 근육이 권상우 못지않았다. 이 사람은 평소에도 줄넘기를 하며 최소 10킬로미터 이상 달린다는 말이다. 평소의 경험치가 없이는 절대 이렇게 안정적으로 줄넘기를 하며 마라톤을 완주할 수는 없다. 그 장면에 현혹되어 넋 놓고 보고 있다가 캡처를 하지 못했다. 캡처라기 보다 휴대폰으로 사진 찍는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사람들은 주제에 맞게 ‘나답게’ 달렸다. 멋진 모습들이었다.


이렇게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달리면 사람들도 좋아하고 즐겁게 달릴 수 있다. 그저 험악한 표정으로 달리는 나 같은 인간만 있다면 달리는 행위의 중계는 지루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즐길 줄 아는 사람들 덕분에 저변이 확대되어간다.


사진 속 흑인은 마라톤의 1등과 2등이며 시간 차이가 거의 없었다. 1위부터 10위까지는 대체로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인들이고 국내 남자 1위는 코오롱의 아주 젊은 최민용이었다. 최민용은 전체 16위인가 했는데 2분 16초 57이고, 바로 위 15위가 일본인으로 2분 16초 27인가 그렇다. 정말 간발의 차이(라고 하기에도 뭣하지만)로 16위가 되었다.


1, 2위를 한 에티오피아 선수들에 비해 결승점에 들어와서 최민용은 거의 일어나지 못했다. 30킬로미터 지점에서 페이스메이커가 떨어져 나가고 그때부터 스피드를 냈다. 인간이 뽑을 수 있는 에너지를 마지막 10킬로미터에 다 쏟아부었기 때문에 정신력이 골인 후 허물어지면 탈수현상이 온몸을 급습하고 다리의 근육이 마구 돌에 맞은 것처럼 아프기 시작했을 것이다.


국내 여자 1위는 삼성생명의 음, 이름이 생각이 안 난다. 역시 30킬로미터에서 페이스메이커가 떨어져 나간 후 홀로 마지막까지 달려야 하는데 컨디션이 굉장히 좋은 상태가 아니라 힘겨워 보였다. 마라톤 같은 긴 거리를 달리는 운동은 여성에게 가혹하다. 가슴 때문에 오랜 시간 달리고 나면 상체가 앞으로 쏠리기도 하고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프다. 그렇다고 가슴을 꽉 묶고 달리는 것도 몸에 썩 이로울 리가 없다.


일반적인 브라를 착용하고 긴 거리를 달릴 수도 없다. 땀이 엄청나기 때문에 와이어가 닿는 부분의 피부가 쓸려 찢어질 수 있다. 혹자는 마라톤용 브라를 착용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소방대원들이 무더운 여름에 더위를 호소하면서 불을 끄려 들어가는데 착용하는 장비 안에 시원한 냉조끼 같은 걸 입으면 안 되냐 하는 것과 비슷하다. 세상은 생각처럼 마구 돌아가지 않는다.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 있고 그것을 떠안고 가야 할 때가 있다. 마라톤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삶에서 그걸 경험하게 된다.


2018년 서울마라톤이 있기 얼마 전 일본에서 열린 육상대회에서 여성 선수가 PMS 때문에 하혈을 하면서 그대로 코트를 달렸다. 공포영화에서처럼 피를 철철 흘리고 달린 것이다. 마지막에 와서야 쓰러졌는데 여론의 비난이 이어졌다. 피를 그렇게 많이 쏟아내는데도 메달에 눈이 어두운 코치진이 선수를 멈추게 하지 않았다고 코치와 경기 방식에 문제를 걸고넘어졌다.


40킬로 미터라는 긴 거리를 달린다는 건 여자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극복을 하며 그동안 달려왔고 지금도 달리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달릴 것이다. 30킬로미터를 넘어서면 오로지 자신과 싸우고, 자신과 타협을 하며 달릴 수밖에 없다. 고통을 극복하는 것과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쾌감 내지는 카타르시스에 도달하기도 한다. 데드 포인트에 도달하는 범접할 수 없는 기이한 순간을 경험한다. 어떤 단어들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거의 매일 조깅을 하는 나에게 아직도 목적이 뭐냐고 하는 사람이 있다. 달리는 것에 뚜렷한 목적은 없다. 달리는 그것이 하나의 대상이 되었다. 만약 목적이 있었다면 목적을 이룬 뒤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달리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달리는 건 밥 먹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이 밥을 먹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다. 안 먹으면 안 되기 때문에 먹는다. 달리는 것도 그런 것과 흡사하다. 신체의 변화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곳, 혼자서만 아는 곳의 근육도 활발해진다. 최초 달리고부터 50분이 지나면 허벅지의 바깥쪽이 당겨 올라오는 느낌이 든다. 그럴 때 저기까지만, 저기까지만 하며 영차영차 달려서 간다. 달리는 건 재미있고 고통스럽다. 즐겁지만 즐겁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런 중계를 보는 것은 재미있기만 하다. 안타깝게도 근래에는 코로나 때문에 마라톤이 거의 없다. 언젠가 이 사태가 끝이 나고 또 재미있는 중계를 칼스버그를 홀짝이며 보는 날이 오길 바라면서.




 

1등과 2위의 선수들




피에[로 분장으로 마라톤을 즐기고 있다.




새신랑 복장으로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도 보인다.




전체 16위, 한국 1위의 최민용 선수.




국내 여자 1위 선수. 이름을 몰라 미안합니다.





조깅을 하다가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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