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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28.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35

6장 2일째 저녁

135.

 말이 끝나고 소피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마동은 소피의 얼굴과 동양 여자들의 얼굴을 머릿속에서 비교를 했다. 그리고 동양 여자가 무술을 하며 적을 무찌르는 영화가 상영되는 미국 극장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영화 속 무술을 하는 동양인들 대부분은 정의롭고 신비로운 몸동작으로 서양의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그렇지만 가슴에 아크 원자로를 박고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며 손과 눈에서 광선을 쏘아대는 할리우드 영화의 벽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디렉트 메시지: 소피, 낮엔 미친 듯이 졸음이 몰려오지만 밤에는 불면으로 보내는 거야. 불면이라는 것이 너무 생생하고 끔찍해. 한겨울에 흐르는 살얼음이 낀 개울가에 발을 담그는 것처럼 말이야. 어쩐지 근육도 낮 동안은 쪼그라들어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텐션이 가해지며 되살아나는 느낌이야. 아니,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야. 신체도 변이라고 있어. 어때? 이야기를 들이니 굉장하지?


 디렉트 메시지: 그래, 동양의 친구, 당신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놀라움이야. 당신은 이제 당신의 몸을 추스르는데 전념하라고. 내일이 밝아 왔을 때 어떤 변이로 고통을 받을지 모르니 말이야. 중요한 건 다 잘 될 거라는 거야 친구.


 마동은 소피에게 고맙다고 했다.


 디렉트 메시지: 동양의 친구. 나 말이야 포르노 박람회가 다음 주에 한국에서 열리게 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나를 만나면 좋은 곳으로 안내해 줘야 해. 당신은 어서 커피를 들도록 하라구. 난 일을 하러 가야 하니까. 동양의 멋진 친구가 잠들기 전에 다시 이야기를 하도록 하자구. 갓 블레슈.


 마동은 소피가 나간 트위터의 화면을 보며 멍하게 앉아 있었다. 손에 들려있는 휴대전화의 액정은 소피가 빠져나가고 더 이상의 생명의 빛이 보이지 않는 무생물이 되었다. 마동은 메마른 입안으로 껄끄러운 맛의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커피가 입안으로 들어와 혀와 목이 색칠하지 않는 마분지처럼 더욱 말라 버리는 것 같았다. 소피가 트위터에서 사라지고 가져온 부재는 마동에게 몇 개의 상념을 가지고 왔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또 다른 자아는 마동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점점 복잡해졌다. 마동 자신이 아닌 몇 개의 상념 속에서도 이명이 들렸다. 알아들을 수 없는 자글자글한 소리다. 어떤 존재들이 수면 위로 입을 내밀고 언어라고 할 수 없는 잡음을 끝없이 내뱉었다. 가까이 가도 그 소리가 명확하게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상념 속에서 삶과 다른 삶의 경계는 분명하지 않았다. 다른 삶이란 아무래도 삶을 끝냈을 때 나타나는 삶이다. 상념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바다가 살아있는 의지를 가지고 시간과 공간을 떠돌고 있었다. 그 속에서 마동은 작은 나뭇잎처럼 위태롭기만 했다.


 카페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비를 피해 들어와서 음료를 마시며 시간을 죽여가고 있었다. 의미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앞으로 나가는 시간에 대항하는 길은 의미 없이 시간을 죽여가는 길이라는 것을 터득해버렸다. 그렇게 보였다. 비는 이제 거세게 쏟아지지 않았다. 카페밖에는 사람들이 우산 없이 걸어 다녔고 등을 굽히지도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마동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페를 나오려 하는데 40대 여직원이 남은 커피와 케이크를 캐리어에 담아 주었다. 마동은 고맙다고 하며 그것을 건네받아서 집으로 왔다.


 비는 흩날렸고 날은 점점 어두워졌다. 조퇴를 하기 전 사무실에서 천장이 빙빙 돌아갈 정도로 어지러운 가운데 디자이너들에게 꿈 리모델링 단계별 레이어 작업들을 개체(個體) 량에 맞게 지시를 했다. 이 작업이 마무리가 되려면 최소한 한 달이 걸린다. 디자이너들은 각자 도맡은 일은 우수한 메커니즘처럼 잘 처리하는 편이었고 그들의 실력은 대단했다. 단순히 레이어에 대한 작업 실력을 보자면 리모델링 디자이너 각자는 마동의 실력을 훨씬 웃돌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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