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수필

아베의 야망이 시게루에서 제동이 걸렸다

by 교관
다운로드 (9).jpg 2020년


이시바 시게루가 선거 참패를 하면서 자민당 일당 체계에 금이 갔다. 일본은 원래 300여 개의 소국가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리와 다르게 힘 있는 자가 작은 국위를 가졌다. 왕좌의 게임처럼.


그중에서 현 야마구치, 예전에는 조슈 번이라는 곳, 기타큐슈 그 일대에 왜구가 가득 살았다. 왜구가 살고 있는 그곳은 화산지대라 다른 지역에 비해 논밭이 드물었다. 배가 고프니까 아침에 눈을 뜨면 노략질을 했는데, 이곳에서 부산이 가까웠으니 자주 침략을 했다.


그곳에서 부산까지는 200킬로미터, 도쿄까지는 500킬로미터니까 가까운 조선으로 쳐들어왔고 임진왜란 출병이 그곳에서 이루어졌다. 그곳에서 아침 해가 뜨면 조선의 부산이 보였다. 하지만 부산에서는 그곳이 보이지 않는다. 해가 뜨면 저곳은 깜깜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이라는 말이 '아침이 선명한 나라'다. 현재 야마구치 사람들은 왜구의 후손들인 것이다. 그 야마구치의 유명한 포구가 시모노세키다. 지금도 부산에서 페리가 간다.


그곳이 복어를 처음으로 먹었던 곳이라 한다. 일본과 한국은 오랫동안 독 때문에 복어를 먹지 않았다. 일본에서 복어를 먹지 못하게 한 사람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다. 조선으로 침략해야 하는 일본 병사들이 모여있으니 배가 고팠다.


복어는 지느러미가 짧아서 헤엄치는 게 아니라 물가에 떠다니기 때문에 병사들이 단백질 섭취를 위해 복어를 잡아서 먹었다. 하지만 복어를 먹고 죽으니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복어 금지령을 내렸다.


복어를 먹고 죽지 말고 조선으로 가서 침략하다 죽어라고 한 인물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이고, 후에 다시 복어를 먹게 한 사람이 이토 히로부미였다. 최초의 복어 전문점이 있는 곳에 바로 시모노세키다.


이 복어 전문점 이름이 '춘범루'인데 여기서 유명한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됐다. 우리나라의 동학혁명을 진압하려고 청. 일이 대립하면서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되었다.


후에 삼국간섭 중에 라오뚱 반도를 물려주는 과정이 이뤄지는데 이전에 일본이 뤼순, 여순으로 쳐들어간다.


뤼순은 평양에서 톈진 쪽으로 보면 죽 비어져 나온 요동반도 끝자락의 도시인데 한 도시의 병사와 민간인들, 약 2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전부 싹 학살을 했다. 36명을 살렸는데 그들은 일본군을 도왔기에 빼고 아기까지 모두 몰살했다. 중국에서는 학살이라 하지 않고 '뤼순 도살'이라 한다. 이 대학살이 근대 군국주의 대학살의 시초가 되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시모노세키 복어 전문점 춘범루에서 조약을 체결한다. 자신이 개발한 독을 제거하는 기술로 복어의 요리를 먹으며 청일전쟁의 결과물인 시모노세키조약을 체결한 것이다. 춘범루가 지금은 박물관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야마구치의 시모노세키 그 동네를 가면 한국을 쳐들어 온 일본 총독들이 그곳에 다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들이 스승으로 삼는 사람이 요시다 쇼인이다. 요시다 쇼인은 29살에 죽었다. 이 요시다 쇼인의 제자가 이토 히로부미까지 내려온다.


최초의 임진왜란이 출범한 곳이 여기이며 이후 근대 한국까지 꾸준하게 침략을 하는 곳이기도 하며 그곳 출신 왜구들이 한국을 침략한 것이다. 그리고 현 가고시마, 구 사쓰마의 사람들이 야마구치 사람들과 동맹을 맺는데 이를 '사초 동맹'이라 하고 이들이 메이지유신을 일으킨다.


일본의 왕비는 가고시마와 야마구치 이 두 지역 출신이 왕비가 된다. 즉 일본의 통치가 여기 사람들이 다 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이 밑으로 죽 이어져 자민당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일본은 헌법이 없다. 없다기보다 한국은 우리가 헌법을 만든 반면에 일본은 맥아더가 2년인가 일본을 통치할 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 헌법을 바꾸고 싶은 사람이 아베였고 아베가 바꾸고 싶은 것이 헌법 9조인데 평화 헌법 조항을 바꾸고 싶어 했다. 헌법 9조에 '전쟁할 수 없다'가 있는데 이걸 고치려고 했다. 이 아베가 가장 존경한 사람이 위에 언급한 왜구 총독들이 스승이자 신처럼 여긴 '요시다 쇼인'이다.


이 요시다 쇼인이 처음으로 독도를 먹어야 한다고 말했던 사람이다. 요시다 쇼인의 제자 중 오시마 요시사마가 있는데, 고종이 잠들어 있을 때 1893년 새벽 4시에 그곳에 가서 총질을 했고, 서문을 폭파했고, 고종을 잡아서 동학군을 잡는데 전시 작전권을 일본에 넘겼고, 최초로 만주점령을 했고,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을 선고한 사람이다. 이 오시마 요시사마가 아베의 고조할아버지다.


요시다 쇼인은 '일군만민론'의 창시자로 [왕이 있고 그 밑에 국민은 평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왕을 욕하는 것이 금지다. 아베는 이렇게 일본을 다시 옛날로 돌리고 싶어 했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아마도 일본 국민들이 주권이 지금보다 더 존재가 없어지기에 좋을 리가 없다.


뤼순 학살에 대해서 검색해 보면 흥미롭지만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학살에 대해서 알 수 있다. 여기서 일본인들도 수많은 사상자가 있었다. 확실한 것은 패망이라는 그날 일본인의 99%가 웃었다고 한다.


그건 그 당시 사람들의 일기나 적어 놓은 글들이 말해주는데 전쟁이 끝나서 전쟁에 참전했던 아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대놓고 웃지는 못했지만 숨어서 그렇게 좋아했다고 한다.


아베의 야망은 요시다 쇼인의 망령으로부터 시작하여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히토 히로부미에서 오사마 요시사마까지 내려와 결국 아베에 이르게 되었었다. 아베는 55년 창당한 자민당이 일본은 거머쥐고 나아가서는 아시아를 먹으려는 야망이 있었다.


올림픽을 개최하여 세계의 이목과 세계의 사람들과 세계의 돈을 일본으로, 정확하게 도쿄로 집중시키려고 했었다. 그리고 서서히 계획했던, 한국을 배척하여 일본 자국민으로 하여금 혐한 감정을 부추겼고 한국의 경제를 말살시키려 했고,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먹으려 했고,


가장 긴 총리를 하면서 무엇보다 자민당 100년 이상 일본을 통치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한국이 일본의 도움 없이도 경제가 무너지지 않았고, 코로나 때문에 올림픽은 연기되었고, 세기말적인 적자가 일본에 났었다. 그 후로 아베는 시름시름,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본 국민들에게 외면을 받았다. 그런 아베가 총격을 당했다. 통일교에 전재산을 갖다 바친 어머니에 대해서 그 아들의 마지막 항변이었다.


htm_2014090315171820102011.jpg
NISI20250702_0000461390_web.jpg


정신없는 글이지만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바운디의 [깜빡임] 뮤직비디오를 보자. 노래는 너무 좋다 이 뮤비를 보고 뭔가가 느껴졌다면 그건 마아도. https://youtu.be/6h6AQbdTkaE?si

Vaundy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당근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