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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형 1

단편소설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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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형을 한 건 꽤 오래전이었다. 하지만 연락도 끊기고 서로 만나지 않게 된 건 15년도 훨씬 넘었다. 17년 정도 된 것 같다. 형은 나보다 두세 살 많았다. 하지만 정확한 나이는 알지 못한다. 처음 만났을 때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만나면 악수를 하고, 이름을 밝히고 나이를 물어보거나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알게 되거나, 설령 나이가 많더라도, 이름을 알지 못하더라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부분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이름을 모르면 그저 이름을 빼고 말을 하면 되었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이름이나 나이 같은 건 다 알게 된다.


두세 살 많으니 형이라 부르면 된다. 그때 모두가 형이라 불렀다. 형이 제일 형이었다. 형은 꽤 묘한 사람이었다. 언제나 외로워 보이는 등을 지니고 있었다. 등은 볼품없을 만큼 초라했고 그 작은 등에는 외로움이 기분 좋게 올라타 있었다. 형의 등에 올라탄 외로움은 주위 사람들에게서 조금씩 나눠 받은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시절에는 모두가 외로워했고, 그 외로움에 하루를 겨우 견디고 있었다.


그 모두에 나와 형도 속해 있었다. 오히려 중심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었겠지만, 모여서 술을 마시게 되면 외로움에 몸부림쳤던 시기였다. 형은 자신도 그걸 아는지 항상 맨 뒤에 앉았다. 형을 알게 된 건 학원에서였다. 학원은 단과 학원으로 영어, 수학 그리고 다른 과목도 수업하고 있어서 학생들로 북적였다. 한샘학원은 당시 최고 인기 있는 학원으로 공부하러 오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도 있었다.


남녀공학이 별로 없어서 학원에서 남녀가 같이 수업을 듣다 보면 서로 친해지게 된다. 방학이 되면 학원은 미어터질 정도로 바글바글했다. 남녀 학생들이 섞여서 쉬는 시간에는 정신없었다. 남고만 다니던 학생들에게는 생소한 광경이었다. 쉬는 시간이면 피아노곡을 틀어 줬는데, 그 곡이 카펜터스의 리처드 카펜터가 연주하는 피아노곡이라는 걸 후에 알게 되었다.


나는 리처드 카펜터가 개새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카렌을 거식증과 몸에 대한 집착으로 이끈 장본인이 리처드가 아닌가 생각했다. 어린 시절부터 착한 콤플렉스를 덮어씌워 카렌은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게 하고 그저 음악적 능력이 탁월한 오빠가 시키는 대로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노래만 불렀다. 자신도 모르게 가스라이팅이 되었을 것이며 그건 사기를 당했다고 표현해도 무방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카렌은 비상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형과 알게 된 후, 술자리에서 술에 취해서 한 번 했다가 핀잔만 들었다. 형은 팝송은 듣지도 않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형과 나는 성문종합영어를 들었다. 형은 늘 마지막 줄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대부분 마음 맞는 몇몇이 같이 어울려 밥을 먹거나 당구장을 가거나 술을 마시러 갔지만 형은 늘 혼자였다. 나 역시 어울리는 건 별로라서 혼자서 학원을 나오곤 했다. 학원의 지하에는 식당이 있어서 학생들이 점심시간의 식당에서 라면을 많이 사 먹었다.


식당의 라면은 분식집 라면만큼 맛있었다. 밥까지 딸려 나오기 때문에 말아서 먹고 나면 든든했다. 먹고 돌아서면 배고플 때였다. 하지만 형은 라면을 먹지 않았다. 형은 항상 국수를 먹었다. 국수가 라면보다 몇백 원 저렴했다. 형은 김밥이나 다른 건 전혀 먹지 않고 오직 국수만 먹었다. 형과 이야기하게 되면서 왜 항상 국수만 먹느냐고 물었을 때, 형은 단순히 국수가 맛있어서 먹는다고 했다. 단지 그 이유였다. 형은 정말 국수가 좋았다.


나는 형의 행색이 초라하고 국수만 먹고 있어서 가난해서 그러는 줄 알았다. 가방도, 옷도, 신발도 심지어 쓰고 있는 안경도 너무나 초라했다. 누가 봐도 나 초라해,라고 알리는 것 같았다. 형의 외모에서 유행이라는 건 전혀 묻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나의 생각일 뿐이었다. 형과 친해진 후 형의 집에 한 번 갔을 때 대문을 열고 드러나는 큰 마당과, 마당을 지나 나타나는 저택 그리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세워져 있는 많은 골프채가 형은 가난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초라한 행색으로 다니는 것일까.


형의 아버지는 당시 2급 공무원이었고 형은 막내였다. 형의 형제자매들은 형과는 다르게 명품으로 스타일을 내는 사람들이었고 형과는 무척 달랐다. 형만 빼고 형제자매들은 얼굴이 닮았지만, 형은 예외였다. 혼자만 어디서 주워 온 것처럼 얼굴이 달랐다. 막내인 형의 얼굴이 큰 누나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였다. 그 외 모든 면이 형과 형제자매들은 달랐다. 그는 막내였지만 수명이 다해가는 노인의 콩팥처럼 볼품없는 얼굴에 남루한 행색으로 다녔다.


학력 또한 너무 달랐다. 형과 누나들은 전부 SKY 대학을 나왔는데, 형은 상고에 진학했다. 뜻하는 바가 있어서 상고에 진학한 것은 아니었다. 형은 성적이 너무 좋지 않아 겨우 상고에 들어갔고, 그때 아버지와 마찰이 심했다고 했다. 그것 때문에 성문종합영어를 듣고 전문대 시험을 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형이 성문종합영어 시간에 수업에 집중하지는 않았다. 그저 멍하게 수업 시간을 보냈다. 학원에서 말이 없는 것처럼 형은 집에서도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 빼고는 방에서 나오지도 않는다고 했다.


아버지와 형의 형제들이 주위의 사람들을 대동해서 다가왔지만, 행색에 다가온 사람들이 마음을 한 번 돌리고 형의 말투와 형편없는 언변에 남아있는 마음도 돌려 버렸다. 사실 형이 말을 썩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게 형편없지는 않았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형과는 주로 학원에서 만났는데 일요일에 약속을 정하고 만난 적이 있었다. 단둘이 약속을 한 것은 아니었다. 몇 명이 같이 만나게 되었다. 약속은 다운타운 가에 있는 백화점 정문에서 오후 두 시에 만나기로 했다. 좀 일찍 나가서 정문 앞에 서 있으면 많은 사람을 구경할 수 있다.


대부분 약속을 잡고 나온 사람들이었다. 내가 나갔을 때 형은 친구로 보이는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친구로 보이는 사람은 우리가 만나기로 한 멤버는 아니었지만, 그 사람이 같이 끼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는 형의 옆에서 다른 나머지 멤버를 기다렸고, 형은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주로 학교 이야기나 여자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십 분 정도 이야기를 하더니 친구가 형에게 인사를 하고 갔다. 나는 누구냐고 물었고, 형은 모르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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