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는 형 2

단편소설

by 교관
P7123512.jpg

형은 술을 좋아해서 왕왕 술자리를 가졌다. 술을 마시러 가면 술을 마시는 속도가 빨랐다. 그러다 보면 먼저 술에 취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가 꽤 있었다. 형은 술을 마시는 속도가 날이 갈수록 빨라졌다. 형이 술을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하는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빠르게 술에 취하고 나면 세상은 아름다워 보인다. 밤거리의 불빛이 나를 위해 반짝이는 것처럼 보인다. 일단 술에 취하면 누구도 나를 건드리지 않는다. 평소의 나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을 하는 사람의 보기 싫은 모습도 보지 않을 수 있다.


학원에 가지 않은 날에도 형은 종종 연락이 왔고 멤버 몇몇과 술자리를 가졌다. 그렇게 학원에서 수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형은 타지방의 한 전문대로 가면서 멀어지게 되었다.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17년 정도가 지나간 후 형에게 연락이 와서 형을 만나게 되었다. 그때가 벌써 몇 해 전이었다. 형은 이후 전공을 살리지 않고 제빵 기술을 배워서 빵집을 열었다. 형에게 있어 가장 큰 변화는 결혼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형보다 13살이나 어린 아내를 맞이해서 같이 빵집을 했다.


형은 좋아 보였다. 비록 행색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좋아 보였다. 형이 좋아하는 소주를 마시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몇 년 시간이 흘러, 얼마 전에 다시 한번 형에게 연락이 왔다. 최근에 만난 형의 모습은 생기라고는 전혀 남아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살아있는 시체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말도 겨우 했고,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형의 내부의 모든 것이 전부 빠져나가 버린 사람 같았다. 몸이 너무 말라 있었다.


형은 나에게 부탁하려고 어렵게 나왔다고 했다. 어렵다는 말은 거동이 아주 불편한데 집 밖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형의 이야기를 들었다. 형은 빵집을 하면서 신혼을 즐겼다고 했다. 자신에게 13살이나 어린 신부가 시집을 오다니, 너무나 영화 같은 일이라 행복했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찰나로 지나갔다. 혼자서 빵을 굽고 빵집을 경영하는 건 만만찮은 일이었다. 형은 신혼집에서 출퇴근하는 것에 상당한 피로를 느꼈고 빵집의 한편에 방을 마련하고 거기서 먹고 자면서 열심히 빵을 굽고 빵을 팔았다.


아내는 집에서 나와 낮 동안 빵집에서 형과 같이 빵을 팔았다. 하지만 아내는 빵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더니 일 년이 지났을 무렵에는 아예 빵집에는 나오지 않았다. 열심히 빵만 구워서 팔았는데 돈은 모이지 않고 카드빚은 자꾸만 늘어갔다. 그렇게 몇 년 지나서 보니 가계가 말이 아니었다. 아내는 집으로 젊은 남자를 불러 같이 지내면서 형이 벌어다 준 돈을 흥청망청 써버렸다. 그 사실을 알고 형의 형제들이 나서서 그의 문제를 잡아 주었다.


형은 도저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내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내는 애초에 그걸 노리고 형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아내가 진술한 내용 중에는, 형이 어디를 봐서 좋아할 만한 구석이 있는 남자인가,라는 말을 했다. 형은 아내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것에 충격이 컸다. 같이 잠을 잔, 몸을 섞은 사이라는 것에 대한 믿음이 강한 형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남자관계가 복잡했다. 형은 형제들과 그 문제로 마찰을 벌이다가 결국 형제마저 형을 저버렸다.


빵집은 망했고, 집은 경매로 넘어갔고, 아내는 구치소에 갔고, 형제들은 외면했고 부모님 하고도 연락하지 않았다. 그때 이미 부모님은 나이가 너무 많이 들었다. 형은 그렇게 고독하게 홀로 단칸방에서 국수를 먹으며 지냈다. 형은 생계를 이어가야 했기에 공영주차장에서 주차요원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그건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막내에게 해 줄 수 있는 배려였다. 형은 주차요원으로 일을 하는 것에 불만은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게다가 그 일은 머리를 쓴다던가, 누군가에게 해코지하거나 나쁜 소리를 들을 일도 없었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그저 시간이 되면 나가서 일을 하고 일이 끝나면 집으로 오면 된다. 형은 그런 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용역업체 직원으로 공영주차장에서 일을 하면서 몇 년 만에 준공무원이 되어 제대로 월급을 받으면서 공영주차장의 주차권을 발급하는 자리에 올랐다. 부스 안에서 주차권만 확인하면 되었다. 시간이 남아돌았다. 거기서 인터넷으로 나의 소식을 접했다. 내가 쓴 소설이 출간되었고, 그게 짤막하게 기사로 났다. 그렇게 이혼의 아픔을 딛고 혼자서 생활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점점 변하기 시작하여 인공지능이 모든 부분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전기자동차가 늘어나면서 공영주차장에 전기자동차의 주차 공간이 늘어남과 동시에 주차요원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아르바이트도 점점 사라졌다. 주차비는 카드나 휴대전화로 요금을 납부하는 자동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형은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형은 혼자서 구석진 방에서 매일 술로 지새웠다. 그러다가 콩팥이 망가지고 말았다. 복수가 심하게 차올라 배가 땡땡하게 부풀었다. 119에 연락했고, 응급실에 실려 갔다.


그 뒤로 투석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다. 형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후자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최근에 만난 형에게서 죽음의 냄새가 진동했다. 형은 나에게 부탁이 있다고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달라는 것이다. 왜 그러냐고 물었다. 자신의 삶은 너무나 초라하고 볼품없어서 만약 죽고 나면 아무도 자신을 기억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허무가 강했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에 대해서 기억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누구도 자신에게 관심이 없고, 자신도 누군가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지만, 난생처럼 사랑하는 아내를 만났다.


그러나 그 아내가 사기꾼이었다는 사실에 받은 상실감은 의외로 너무나 크고 무거웠다. 사기를 치려고 일부러 접근했지만, 형은 그 사실을 보류하고 있었다. 자신이 처음으로 사랑한 여자였기 때문이다. 형은 나에게 아내를 사랑했고 지금도 여전히 보고 싶어 한다고 써달라고 했다. 형은 기력이 다했는지 몹시 힘들어했다. 형이 병원으로 가는 모습이 내가 그를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는 형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