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1.
내가 국민학교 때 점심시간에 배식은 없었다. 고학년은 집에서 도시락을 들고 왔다. 점심시간이면 삼삼오오 모여서 먹거나, 각자 자리에서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도시락이 뭐 그렇게 맛있었을까 싶지만, 배고픈 아이들에게 도시락은 만찬에 가까웠다. 옆에 앉은 짝지의 반찬은 뭐가 있나, 구경하고 하나씩 바꿔 먹는 것도 재미있었다. 짝지는 보통 이성이 앉았는데, 싸움이 격렬해져서 동성끼리 앉는 경우도 있었다.
아직 국민학생이라 그런지 동성끼리 나란히 앉으면 더 재미있었다. 아직 어린이니까, 그럴 때였다. 점심시간 종이 울리면 왁자지껄해지며 고만고만한 반찬에, 같이 모여서 먹는 도시락은 맛있었다. 나는 같이 모여서 먹는 멤버가 있었다. 거기에는 여자애들도 있었다.
우리는 매일 도시락을 먹으며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돌아다니기 좋아했던 어떤 녀석은 교실 안을 돌아다니며 반찬을 집어 먹었다. 그걸 싫어하는 아이도 물론 있었지만, 반찬을 먹는 것에 크게 나무라는 분위기는 없었다. 우리 반에는 전학 온 애가 있었다. 더벅머리에 덩치가 꽤 있는 남자애였다. 점심시간이 되면 그 애는 교실을 나가서 어딘가에서 점심을 먹고 오는 모양이었다.
그 애가 전학을 오면서 우리 동네로 이사를 왔다. 그 애는 어떤 운동을 하는지 국민학생 같지 않은 몸에, 몸놀림이 재빨랐다. 어느 날 등교를 하려고 집을 나오는데 골목길을 지나 어떤 집 계단에 앉아있는 그 애를 봤다. 아마 그 집이 그 애가 이사를 온 집이었던 모양이었다. 아는 척을 하고 싶었지만, 대문 앞 계단에 앉아서 뭘 먹고 있어서 아는 체하지 못했다. 거기에 반에서도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학교에 안 가?라고 말 한 번 하지 못하고 나는 등교를 했다. 우리 동네는 학교에서 15분 정도 떨어져 있다. 학교에서 집까지 한 시간 정도 걸리면 훨씬 재미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1, 2학년 때에는 걸어서 40분 정도 걸리는 학교를 다녔다. 비록 좀 일찍 일어나서 집을 나서야 했지만, 등굣길이 재미있었다. 아이들이 가득했고, 문방구가 많아서 구경하는 재미 때문에 지각을 하기도 했다. 특히 하교 후 문방구에서 사 먹는 불량식품은 정말 맛있었다.
도시락으로 덜 채워진 배는 문방구가 해결해 주었다. 하지만 3학년 때부터 동네에서 가까운 학교로 오고 난 후에는 예전만큼 학교에 가는 길 자체가 재미있지는 않았다. 단지 빨리 등교를 할 수 있었다. 그날 그 애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이렇게 가까운데 길을 몰라서 못 오거나 하지 않았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내가 학교에 가자고 말이라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은 점심시간도 다른 날처럼 즐겁지 않았다. 반찬괴물이 돌아다니다가 나의 밥과 반찬을 홀라당 다 먹었어도 나는 가만히 있었다. 짝지가 왜 그러냐고 물었다.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당시 어휘력으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고개를 돌려 혹시나 싶어 그 애를 찾았지만 그 애는 보이지 않았다. 그 애는 그다음 날에도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은 그 애가 왜 학교에 나오지 않은지 이야기하지 않았다. 반 아이들도 그 애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않았다.
누가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 담임선생님에게 질문하고, 왜 나오지 않은지 궁금해했다. 주로 겨울에 나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어서 병원에 실려 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애에 대해서는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다. 오직 나만이 궁금했다. 나는 전학 온 그 애가 왜 학교에 오지 않았을까 내내 생각했다. 할 수 없이 수업을 마치고 그 애가 앉아 있던 그 집 앞으로 갔다. 대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문을 살짝 열었다. 그 집에는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한 동네에 있는 집이지만 들어가 보지 못한 집이 몇 채 있었다. 이 집이 속했다. 한 동네에 붙어있는 집들은 전무 고만고만했다. 한 집에 두세 대가 살고 있었다. 또는 여러 세대가 사는 집들도 있었다. 나는 대문을 좀 더 밀어서 그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마당이 있고, 야외 화장실이 딸려 있는 구조였다.
대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서늘한 기운이 들었다. 이 집에서는 생활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꼭 들판에서 나는 냄새가 났다. 사람은 살지만 살지 않은 느낌이었다. 마당 곳곳에 핀 잡초며, 생활도구가 낡거나 사용하지 않아서 때가 많이 묻어 있었다. 그때 드르륵 문이 열리고 그 애가 방에서 나왔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 몇 초간 시간이 흘렀다. 순간 당황하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다.
그 애와는 한 번도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 아마 우리 반 누구 하고도 이야기를 해 본 적 없을 그 애의 집에 불쑥 들어왔기 때문에 무서움이 먼저 들었다. 무엇보다 남의 집에 불쑥 들어온 적도 처음이었다. 너 학교에 오지 않아서, 한 번 와 봤어. 그 애는 나를 보더니 마루에 올라오라고 했다. 여기가 우리 집인 줄 어떻게 알았어? 나는 이틀 전에 계단에 앉아 있는 그 애의 모습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마루에 걸터앉아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12년 동안 살면서 그렇게 많은 말을 하기는 처음이라 나도 놀랐다. 그 애는 뭔가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그 애의 이름은 굳이 밝히지 않으려고 한다. 그 애가 이 글을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그 애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또 지금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애는 방에서 식빵과 케첩을 들고 왔다. 우리는 식빵에 케첩을 뿌려서 앉아서 먹었다. 식빵은 제일 저렴한 식빵으로 맛이 있을 리가 없지만 우리는 아주 맛있게 먹으며 이야기를 했다.
그 애가 학교에 나오지 않은 이유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학교에 준비물을 사들고 가야 하는데, 아버지는 그 돈을 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일용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을 때는 그나마 괜찮은데 그런 날이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애는 권투를 배우고 있었다. 권투도장에 가면 관장님이 빵과 우유를 줬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 준비물을 가져가야 하기에 돈을 달라고 했지만, 술 마시는데 돈을 다 써버린 아버지는 자신에 대한 책망과 더불어 그 애에게 소리를 지르다가 때리기까지 했다. 그 애가 점심시간에 교실 밖으로 나간 이유는 도시락이 없어서였다. 그 애의 주식은 싸구려 식빵과 케첩이었다. 아침에도 먹고 나온다고 했다. 아버지가 집에 있을 아침에는 대문 앞 계단에 앉아서 식빵과 케첩을 먹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