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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대신 식빵에 케첩을 먹던 그 애는 2

단편소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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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는 이후 점심시간에 나의 도시락을 같이 먹었다. 엄마한테 배가 많이 고파서 밥을 많이 싸달라고 했다. 그 애는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나중에는 같이 먹었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먹는 게 서툴렀던 그 애는 그늘진 운동장 한 구석에서 나와 함께 먹었다. 그 애는 덩치에 비해 아는 것이 많았다. 덩치만 보면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데, 고질라나 로봇에 대한 것도 많이 알고 있었다. 그 애에게 로봇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 건 꽤 즐거운 일이었다.


그때 나는 꽤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로봇 태권브이가 마징가 제트를 본 딴 로봇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지만, 그 애는 권투도장에 로봇에 관한 박사 같은 형이 있다고 했다. 그 형은 모든 로봇을 다 알고 있었다. 대장군부터 짱가, 그로이져 엑스, 용자라이덴까지. 마징가 제트의 초기 버전은 쇠돌이(가부토 코우지) 할아버지(가부토 주죠 박사)가 오토바이를 타고 등으로 올라가서 머리의 조종석에 박힌다고 했다. 그리고 마징가의 무기들과 그 힘에 대해서 알기 쉽게 설명을 해 주었다.


팔다리를 움직이려면 얼마 큼의 동력이 드는지, 그런 것에 관해서 해박했다. 그 애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는 건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나의 주위에서 로봇에 관해서 이렇게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 당시 로봇을 좋아해서 프라모델을 많이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친해졌다. 그 애 덕분에 케첩의 맛도 알게 되었다. 그 애를 만나기 전에는 케첩을 거의 먹지 않았다. 그 애 덕분에 요즘도 허기가 지면 가끔 식빵에 케첩만 뿌려서 먹기도 한다. 그러면 입맛이 버려지면서 자연스럽게 다이어트가 된다.


그 애는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날이 늘어갔다. 그럴 때마다 집에 가면 그 애를 만날 수 있었다. 어느 날은 얼굴에 멍이 들어 있었고, 어느 날은 머리가 엉망진창으로 잘려 있었다. 그 애한테는 남동생이 있었는데, 나는 남동생이 없어서 그런지 우리는 꽤 친하게 지냈다. 그 애는 아버지에게 덤벼들고 싶지만 어린 남동생 때문에 참고 있었다. 그 애와 동생은 우리 집에서 같이 밥을 먹기도 했다. 어머니는 반찬도 챙겨주었다. 난 좀 더 맛있는 반찬을 챙겨주라고 했지만, 우리 집도 가난의 그늘이 드리우고 있어서 먹거리가 풍족하지 않았다.


그 애와 식빵에 케첩을 뿌려 거의 매일 나눠 먹었다. 남동생의 점심은, 먹거리를 챙겨 주는 곳이 있었다. 그 애는 그곳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 애에게도 식사를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그 애는 자신에게 줄 음식은 남동생에게 저녁까지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애는 남동생을 이렇게 방치하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컸다. 하지만 남동생을 위해 그 마음을 삭히고 있었다.


그 애는 권투 도장에 나가서 권투를 배우며 잡일을 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그래야 했다. 국민학생인데 고단한 생활이었다. 아침에 그 애 집에 들러 그 애와 함께 등교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아침인데도 그 애가 집에 없을 때가 있었다. 학교도 나오지 않고 집에도 없는 날은 어딘가에서 동생을 위해 일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어딘가가 권투도장이라고 나는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게 반년 정도 시간이 흘렀다. 언제부터인지 반 아이들이 나를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짝지도 그렇고, 같이 어울렸던 멤버들도 나를 피했다. 이유는 그 애와 같이 어울려 다니기 때문이었다. 그게 무슨 문제일까. 반 아이들은 그 애를 멀리했다. 소문은 그 애가 권투실력으로 다른 반 아이를 처참하게 때렸다는 것이다. 그 애한테 맞은 다른 반 애가 걷지도 못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 애는 그럴 애가 아니다.


그 애가 덩치가 있어서 그렇지 얼마나 재미있고 착한 녀석인데. 그러나 멤버는 나의 말을 믿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내가 속고 있는 거라는 말만 되돌아왔다. 답답했다. 그 애와 지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 텐데 왜 그러는지, 어째서 어울려보지도 않고 그저 그럴 것이라 생각해서 전부 그 애를 멀리하는지 화가 났다.


그런데 그 소문은 사실이었다. 나는 그 애에게 사실이냐고 물었다. 그 애는 나에게 미안하다고만 했다. 그 애는 그 사실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계속 물었지만 그 애는 그만 돌아가라고 했다. 너 때문에 반 아이들과 싸우기까지 했다,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나도 이제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당하고 있다며 울면서 소리 질렀다. 하지만 그 애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렸다.


나는 버림받았다.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에게 버림받은 것이다. 배신을 당했다. 배신이라는 게 이렇게 기분이 나쁜 건지 처음 알았다. 그날 집에서 엉엉 울었다. 운다고 해결되는 일도 없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그렇게 며칠 흘렀다. 그 애는 전학을 갈 거라고 담임이 말해 주었다. 담임은 마치 나를 보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기운도 없이 그렇게 교실에서 보냈다. 점심시간에도 밥을 먹지 않고 그대로 버렸다.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다는 게 이렇게 아프고 힘들 줄 몰랐다. 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나오는데 누군가 나를 불렀다. 그 애가 다니던 권투 도장의 로봇 박사 형이었다. 형은 나에게 그 애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그동안 다른 반 애가 그 애의 동생을 놀렸다는 것. 엄마도 없고, 아빠는 술쟁이에, 가난해서 늘 같은 옷만 입고 다니고, 그 애는 도시락 하나 싸 오지도 못하고, 너 옆에 가면 냄새가 난다고 동생을 볼 때마다 놀렸다는 것. 그 애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하다가 동생을 그렇게 놀렸다.


그러다가 동생의 발을 걸어 넘어트리고, 머리가 지저분하다고 머리카락을 가위로 자르고, 밀쳐서 벽에 부딪쳐 혹이 나기도 했다. 동생이 우는 모습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그 애는 다른 반 애를 찾아가서 개 패듯이 패버렸다. 권투도장에서는 절대 사람에게 주먹을 휘둘러서는 안 된다고 배웠지만, 그날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애는 결국 또다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전학을 가는 걸로 폭행은 없었던 일로 하기로 했다. 잘못은 다른 반 애가 먼저 했지만, 비난은 고스란히 그 애가 다 받아야 했다.


나는 그 애 집 앞에서 그 애를 매일 기다렸다. 전학 가는 날, 집 앞에 기다리고 있던 나를 그 애가 한 번 안아 주었다. 안은 팔에 힘을 꼭 줬다. 그걸로 된 것이다. 중학생이 되면 너 보러 이 동네 놀러 올게,라며 그 애는 갔다. 하지만 그 후에 그 애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 지금쯤 나를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분명 권투를 잘해서 권투로 이름을 날릴 법도 한데, 티브이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 권투보다는 다른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눈으로 확인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남이 하는 말이 절대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걸 사실인 양 퍼 나른다. 진실이라는 건 확인이 되었어도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건 아마도 진실을 진실되게 믿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한 대로 자신들의 말을 퍼 나르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놀아나 집단으로 행동하는 무리가 무섭다. 그런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 갈수록 그 같은 습성이 굳건해져서 누군가에게 결정적인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고는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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