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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이야기가 가득했지 1

그땐 그랬지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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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버드와이저와 비엔나소시지를 먹는 날이 있다. 일이 순조롭게 끝났다거나, 마음에 드는 문구를 발견했거나, 괜히 다른 날과는 다른 기분이거나. 그러면 저녁에 슈퍼에 들러 버드와이저 6병 묶음과 비엔나소시지를 사 와서 프라이팬에 굽는다. 불판에 구우면 뭐든 맛있는 냄새가 나지만 비엔나소시지가 전도열에 익어가는 냄새가 좋다. 소시지란 무릇 이런 냄새를 품고 있다. 사람을 살짝 흥분케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별반 다를 것 없는 날이고, 같은 시간인데 결이 다르고 시간과 시간의 임계점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날이다. 이런 날은 버드와이저에 비엔나소시지다. 소파에 건방진 자세로 앉아서 먹는 맛이 좋다. 누군가는 더 맛있는 맥주와 더 맛있는 음식이 있을 텐데?라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버드와이저와 비엔나소시지다. 이렇게 먹고 있으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기억이 좀 더 확장되거나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맥주를 홀짝이며 소시지를 씹어 먹으며 옛날 기억을 떠올리는 건 꽤 즐거운 일이다. 옛날 일이라도 반드시 즐거운 일만 있는 건 아니니까. 어린 시절에는 가난했지만, 동네 모두가 가난했기에 그게 가난인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재미있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방학에는 최선을 다해서 하루 종일 놀았다. 보통 여름방학이 되면 동네 아이들은 외가나 시골에 가서 보내고 왔다. 그게 자랑거리다. 그러지 못한 아이들은 동네에 남아서 어울려 놀곤 했다. 동네에 아이들이 많아서 시골에 간 아이들을 제외하고도 같이 놀 수 있는 아이들은 많았다.


그럼에도 마음이 맞는 아이들은 몇 없어서 같이 놀다가도 재미가 없는 때도 있었다. 여름방학에 비가 내리면 공터에 있는 작은 슈퍼 앞 평상에 앉아서 무서운 이야기를 하며 놀았다. 서로가 하는 무서운 이야기는 고만고만해서 썩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재미없지도 않았다. 동네에는 이야기꾼이 있었다. 동네의 친구 누나였다. 동네 남자아이들은 대부분 누나가 있었다. 형이 있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두 살 터울의 누나가 있었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랬다. 나만 누나가 없었다. 누나가 있는 애들은 가요에 대해서 박식했다. 누나가 많이 듣고 부르니까 자동으로 가요나 가수에 대해서 알게 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정보가 느렸다. 그래서 주로 라디오를 듣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팝에 점점 심취하게 되었다.


동네 누나들은 비슷한 또래인데 우리처럼 누나들이 어울리는 건 보지 못했다. 여중, 여고에 올라가면 동네 친구들보다 반 친구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터놓고 지내기 때문이다. 누나들 중에 이야기를 잘하는 누나가 있었는데 친구의 누나였다. 특히 무서운 이야기를 잘했다. 그 누나가 이야기할 때면 평상에 앉은 아이들이 숨을 죽이고 들었을 정도였다. 물론 그 속에 나도 속해 있었다. 비가 오면 평상 위에는 비막이가 있어서 비가 떨어지는 소리가 배경 음악처럼 들렸다. 그 누나는 주로 무서운 영화 이야기를 골자로 해서 우리 동네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교묘하게 섞어서 해줬다. 듣다 보면 마치 진짜 그런 줄 알게 되는 느낌이 들어서 무서웠다.

누나가 해주는 무서운 이야기는 귀신이 나오는 이야기 같은 게 아니었다. 살인마에 대한 이야기였다. 주로 무서운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이 동네 골목 끝 집에 예전에 한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라고 시작하는 이야기는 살인마가 되어서 그 가족을 전부 몰살시키고 도망을 가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나를 비롯한 아이들은 전부 침을 삼키고 들었다. 평상을 붙여 놓은 벽에 난 창문은 슈퍼 집의 창문이다. 그 방에도 친구가 산다. 그 친구도 창문을 열어서 누나의 이야기를 들었다. 평상에 걸터앉은 아이들은 비가 튀는 것도 모른 채 이야기를 들었다. 슈퍼 앞의 평상은 동네 사람들의 쉼터 같은 곳이다. 평소에는 주로 어른들이 앉아서 막걸리를 먹는다. 막걸리를 먹다 보면 정치관이 달라서 소리가 높아지기도 하고 멱살을 잡기도 했다. 그러나 어른들은 동네 아이들이 평상에 앉아 있으면 비켜, 저기 가서 놀아!라고 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무시하지 않았다.


이제부터 누나가 어떤 이야기를 해줬는지 들려주겠다. 누나가 가출했을 때의 이야기다. 누나는 학교 가는 것도 지겹고, 매일 이 작은 동네에서 지내는 것도 지겹다고 느껴 친구들과 가출했다. 기차를 타고 간 곳은 해운대였다. 비둘기호를 타고 느리게 느리게 역마다 정차하며 해운대역으로 갔다. 역 근처에는 여관과 여인숙이 많았다. 바닷가에서 놀다 보니 가출하면서 들고 갔던 돈도 거의 써버렸다. 그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호우였다. 누나는 친구 두 명과 함께 가출했는데, 전부 고만고만한 돈이 전부였다. 누나와 친구들은 일단 묵을 곳을 찾았지만, 여관과 여인숙은 전부 만실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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