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
2.
비는 거침없이 쏟아졌고 생쥐 꼴이 되었다. 여관에서 묵을 돈은 없고 세 명이 합쳐봐야 여인숙에서 지낼 돈밖에 없었다. 해운대 바닷가에 밀집한 여관촌을 좀 벗어난 곳의 여인숙을 돌았다. 거기에도 마찬가지였다. 방이 없었다. 한 군데 여인숙에서 누나를 비롯한 두 명의 모습을 가만히 보더니 잠시 비 막이 밑에서 기다려 보라고 했다. 주인은 한 방에 들어가더니 곧 나왔다. 그리고 세 명을 그 방 안에서 비를 피하게 했다. 그 방에는 이미 손님이 묵고 있었다. 그 당시 서른 살 정도 돼 보이는 아주 예쁜 언니가 홀로 방에 있다가 사연을 듣고 방에서 같이 있게 해 주었다.
언니는 세 명의 여 중학생들에게 수건을 주며 몸을 닦으라고 했다. 세 명은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렇게 몸을 말리며 앉아서 언니와 함께 이야기하니 몸에 힘이 풀렸다. 아무튼 다행이었다. 그때 누나 친구 한 명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가출해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놀기만 한다고 먹지 못했다. 언니는 세 명의 여중생에게 배가 고프냐고 물었다. 누나와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도 가는 비로 바뀌었고 언니도 출출하니 밖에 나가서 먹을 걸 사 오겠다고 했다. 언니는 중학생들에게 뭘 먹고 싶은지 물었다. 만두, 햄버거, 떡볶이 같은 것들이 마구 튀어나왔다. 언니는 미소를 지으며 다녀올 테니 언니의 짐을 잘 보고 있으라고 했다.
언니가 나가고 여중생들은 종알종알 수다가 시작되었다. 하필 비가 그렇게 많이 내릴 줄은 몰랐다. 그렇게 앉아서 수다를 떨며 놀고 있는데, 한 명이 호기심이 발동했다. 언니의 짐으로 보이는 가방이 보였다. 007 가방으로 아주 컸다. 그 가방은 세 명의 상상력을 건드렸다. 가방은 이불을 쌓아 놓은 곳 옆에 있었다. 정말 컸다. 한 명이 가서 가방에 도대체 뭐가 들어 있기에 이렇게 큰 가방을 들고 다닐까. 언니도 사연이 있어 보이던데, 집을 나온 것일까? 결국 한 명이 가방 안을 보자고 했다. 누나는 안 된다고 했지만 두 명의 친구는 호기심에 이기지 못하고 가방을 열었다. 가방을 열자 그 안에서 큰 검은 비닐봉지가 나왔다. 가방 안에 언니와 친구들이 상상했던 옷과 화장품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고, 오직 뭔가를 넣은 검은 비닐봉지만 있었다.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나지 않아? 친구는 비닐봉지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언니와 또 다른 친구가 비닐봉지 쪽으로 다가왔다. 정말 이상한 냄새가 났다. 친구는 비닐봉지를 살짝 열어서 벌려 보았다. 그 순간 친구는 뒤로 벌렁 나자빠지면서 그대로 기절했다. 누나와 또 다른 친구가 놀랐다. 무슨 일이야! 그 안을 보니 아기의 시체가 있었다. 이미 부패가 진행되고 있어서 비닐봉지를 열었을 때 역한 냄새가 확 풍겼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너무 놀랐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누나의 친구가 빨리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기절한 친구를 깨웠다. 기절에서 깨지 못했다. 들고나가려고 했지만, 너무 무거웠다. 낑낑거리며 기절한 친구를 끌고 방을 나가려는데 문이 열리고 언니가 들어왔다.
세 명은 몸이 얼어붙는 줄 알았다. 몸은 비 맞았을 때보다 더 떨리고,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언니는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와 가방의 지퍼를 닫았다. 그리고 세 명을 노려보았다. 세 명은 그대로 얼어붙고 눈에서 눈물이 줄줄 나왔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기절한 친구는 겨우 정신을 차렸지만, 꼼짝할 수 없었다.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거세게 내렸다. 바람이 불어 비가 창문에 닿는 소리가 심하게 들렸다. 언니는 세 명의 여중생을 나가지 못하게 했다. 누나는 이거 큰일 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는 자꾸 거세지는 것 같았다. 세 명의 여중생은 겁에 질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 언니가 가방을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다. 그 우는 소리가 비 오는 소리와 함께 섞여 너무나 무서웠다. 언니는 그칠 줄 모르고 울었다. 누나를 비롯한 두 명의 친구는 그야말로 지옥에 발을 들여놓은 기분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