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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집 앞 집에 살았던 미대생 그 누나는 2

단편 소설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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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이 되었고 친구에게 전화하고 친구 집으로 갔다. 친구는 대문 앞에 기대고 서서 나를 기다렸고, 내가 보이자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했다. 친구는 키가 커서 그런지 허리까지 조금 굽히고 나를 조용히 시켰다. 계단을 오를 때에도 군인이 훈련받듯이 자세를 낮춰서 기도비닉했다. 나는 친구의 뒤를 따라 조심조심,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옥상으로 올랐다.


친구는 건너편 집과 마주한 옥상 벽 쪽에, 깔아 놓은 돗자리로 기어서 오라고 했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따라 했다. 돗자리에 들어가서 친구와 나는 옥상 벽에 기댔다. 같은 높이에서는 우리가 보이지 않았다. 친구는 어디서 구했는지 잠망경을 꺼내서 위로 올린 다음 나에게 보라고 했다. 도대체 이 녀석이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시키는 대로 했다.


잠망경으로 보니 건너편 집의 욕실이 보였다. 80년대에 지어진 집의 욕실이라는 건 아파트와 달리, 작은 창이 있고 그 문은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 집의 여대생 누나가 목욕을 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서 보려고 했다가 친구가 막아섰다. 그러면 큰일 난다, 잠망경으로 봐야 한다고! 등을 이쪽으로 보이고 쪼그려 앉아서 목욕했다. 빼빼 마른 듯한 매끈한 등을 구부리고 있을 때 존재를 각인하는 척추는 마치 미술품 같았다. 저 굴곡의 뼈마디 감촉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나는 이쪽으로 몸을 돌릴 법도 한데 한 번도 돌리지 않고 목욕하고 난 후에 일어나서 타월로 몸을 감싸고 욕실을 나갔다. 일어났을 때 찰나로 누나의 엉덩이가 머리에 각인되었다. 누나가 욕실을 나가고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어때? 라고 친구는 물었다. 뒷모습밖에 못 봤다고. 친구에게 너는 다 봤냐고 물었다.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젠장.


나는 친구에게 또 언제 앞집 누나가 목욕하는 걸 볼 수 있냐고 물었다. 친구도 확실히 알 수는 없었다. 친구의 말로는 여름이니까 매일 목욕을 하겠지만 대체로 밤늦게 들어와서 목욕을 해서 그때는 볼 수 없다고 했다. 또 주중, 낮에 목욕을 할 때도 있는데 그때마다 잠망경을 들고 조심조심 옥상에 올라오기도 뭣하고, 나에게 연락을 하고 내가 오는 동안 목욕은 다 끝나버릴 수 있다고. 그러나 금요일 이 시간에는 항상 집에서 목욕을 한다고 했다.


그게 친구의 조사한 바였다. 나와 친구는 서로 보면서 눈빛을 교환했다. 그렇게 우리는 일주일을 기다렸다. 일주일 동안 나는 환상 속에서 지냈다. 방학인데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다. 여름이 지나 귀뚤이가 울면 볼 수 없다. 잠들면 꿈에 목욕하는 누나가 등장했다. 당연하지만 알몸이었다. 그러나 뒷모습뿐이었다. 그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분명 앞으로 걸어오는데 뒷모습이다. 꿈인데 실제 같았다. 그 순간 뭔가 기운이 쫙 빠지면서 황홀함이 찾아왔다가 빠져나갔다. 몽정이었다. 난처했다. 어머니 몰래 팬티를 벗어서 옷장의 팬티 사이에 넣어 두고 새 팬티를 꺼내 입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금요일이 되었다. 친구와 나는 옥상을 조심스럽게 올라 돗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친구와 좀 일찍 만났다. 가장 잘 보이는 곳까지 돗자리를 옮겨 만반의 준비를 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친구에게는 우리보다 두 살 많은 누나가 있었지만, 누나는 고3에 이미 은행에 취업해서 일을 다니고 있었다. 친구의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회사에 나갔기에 친구의 집은 비어있었다. 놀기에 아주 좋았다. 우리가 좀 더 어렸을 때는 친구의 누나가 동네 아이들을 집에 모아 놓고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무섭고 재미있게 했다. 말소리의 높낮이를 조절해 가며 동네 아이들에게 귀신 이야기를 하다가 웍 하는 순간에 모두가 으악 하며 놀라곤 했다. 하지만 모든 동네 아이가 다 올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누나가 허락하는 아이들만 모일 수 있었다. 그 기준은 누나의 마음에 들어야 했다. 나는 워낙에 친구와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서로 왕래가 잦아서 늘 그 자리에 꼈지만, 어느 날 누나가 나를 탈락시켰다. 그때 멀리서 모여서 노는 아이들을 보는 그 허탈함은 아직도 느끼고 있다.


이후에 누나에게 그 이야기를 하면 누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시치미를 떼었다. 누나는 고등학교 가면서 동네 아이들과는 멀어졌고, 여고생 특유의 친구와 친밀함, 그리고 은행에 바로 취업함으로써 우리와는 거의 떨어졌다. 친구는 아주 잘된 일이라고 했다.


친구와 내가 잠망경으로 보려는 앞집의 누나는 미대생이다. 보통 한마을에 살아도 친하게 지내는 옆집이 있고,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지만] 절대 만나지 않으며 마주치지도 않는 이웃이 있다. 미대생 누나가 있는 집이 그랬다. 다 고만고만한 집들이 모여 사는 동네지만 그중에서도 미대생 누나가 사는 집은 다른 집과 거의 왕래가 없었다. 미대생 누나가 사는 집은 독채였다. 동네의 대부분 집은 한 집에 두 채 이상 살고 있었다. 미대 다니는 누가의 부모님 두 분 모두가 교수와 선생님으로 동네의 어른들도 존경의 눈빛을 띠고 있었다. 그 집에는 집을 돌봐주는 일하는 가정부 아주머니 정도만 잠깐씩 봤을 뿐이다.


미대생 누나도 우리처럼 어릴 때부터 한동네에서 자랐지만, 동네 아이들처럼 같이 어울리는 타입은 아니었다. 동네의 공터에서 놀고 있다가 누나가 지나가면서 우리를 보고 환한 얼굴로 안녕! 하고 가면 동네 아이들은 안녕하세요! 라고 할 정도였다. 누나가 인사를 해주면 동네 아이들은 그저 기분이 좋았다. 그런 분위기의 누나가 미대생이 되었고, 우리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친구는 이성에 일찍 눈을 떴고, 나는 드디어 여체에 눈을 떴다.


아무튼 금요일이 되었다. 미리 자리를 잡고 돗자리를 깔고 잠망경을 확인하고 우리는 옥상 벽을 등지고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일주일 하고 며칠 지나면 방학이 끝난다. 친구와 앉아서 이야기했는지만 이야기는 겉돌고 있었다. 둘 다 미대생 누나만 생각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누나의 목욕하는 모습을. 옥상과 미대생 누나의 집 욕실과 떨어진 거리는 불과 1.5 미터 정도였다. 욕실의 물소리가 들렸다. 순간 우리는 조용해졌다. 그때 뒷집의 아주머니가 옥상으로 올라왔다. 친구의 집 옥상은 뒷집과 옥상이 붙어 있다. 그리고 뒷집은 또 다른 뒷집과 옥상이 붙어 있다.


옥상은 세 집이 붙어 있었다. 옥상 벽은 있지만 옥상이 붙어 있기에 넘어 다니며 놀기에 좋았다. 그리고 어른들도 옥상에 빨래를 널러 왔다가 각자 옥상에 서서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뒷집 아주머니가 올라오면서 우리를 아는 체했다. 방학이라고 같이 노는 거야? 이제 공부는 좀 해야지? 같은 말을 인사처럼 건넸다. 우리는 어정쩡하게 대답했다. 아주머니가 어른이 말하면 큰 소리로 대답해야지, 라고 해서 우리는 예! 하고 크게 대답했다. 그 순간 욕실의 물소리가 멈췄다. 맙소사. 우리의 소리는 분명 미대생 누나가 다 들었을 것이다. 망했다. 젠장. 아주머니가 내려가고 나는 잠망경을 올렸다. 그러나 그때 친구의 누나가 일찍 집으로 와서 친구를 불렀다. 누나에게 만약 이 사실을 들킨다면 둘 다 죽음이었다.


친구는 잽싸게 내려갔다. 나는 마치 군인처럼 몸을 구겨서 잠망경을 올려서 욕실 쪽으로 돌렸다. 미대생 누나가 등을 보이며 목욕을 하고 있었다. 물을 뿌리고 비누칠을 했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누나는 몸에 묻은 비누를 물로 씻어낸 다음 일어나서 창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가슴이 보였다. 여자의 가슴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밑의 털까지. 털 때문에 잡지처럼 성기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 누나는 창문 쪽으로 좀 더 다가와서 갑자기 고개를 들어서 잠망경을 보았다. 그 순간 나와 눈이 마주치는 것 같았다. 아니 마주쳤다. 누나는 잠망경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몸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렇게 서서 잘 봐, 하는 식으로 내 쪽을 빤히 쳐다보았다. 누나의 벗은 몸을 봐야 했지만, 이제 큰일이구나 하는 생각 때문에 누나의 눈만 보게 되었다. 어쩌면 누나는 그걸 알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누나는 알몸을 훔쳐보는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


친구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떻든 욕실을 몰래 훔쳐본 범인을 찾아내려면 찾을 것이다. 그건 너무나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누나는 그렇게 서서 한참 잠망경을 바라보더니 몸을 돌려 욕실 밖으로 나갔다. 친구가 올라왔을 때는 모든 것이 다 끝난 상태였다. 친구는 내가 멍하게 있는 모습이 마치 미대생 누나의 알몸을 본 탓이라 생각하며 흐뭇해했다. 그런 친구의 얼굴에 나는 똥을 뿌렸다.


이거 큰일 났다. 누나가 나를 봤어, 뭐? 너를 어떻게 봐? 나는 자초지종을 친구에게 말했다. 우리는 그날 이후 개학하는 날까지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생각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동네에서 미대생 누나와 마주쳤을 때도 친구는 나는 움찔했지만, 누나는 여느 때처럼 안녕! 하며 상큼한 미소를 띠고 지나갔다. 누나를 봐도 알몸은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이상하지만 봤던 뒷모습만 떠올랐다. 억지로 상상까지 발동해서 돌아섰을 때의 앞모습과 가슴을 떠올렸지만 말랑말랑한 젤리가 나타나서 그 부분을 채워버렸다.

시간이 좀 더 흘러 기억이라는 것이 물에 불은 빵가루처럼 서서히 없어지게 되었다. 아마 누나는 알고 있었을까. 그래서 여봐란듯이 일어서서 나를 빤히 쳐다본 것일까. 물어보지 않은 이상 알 수는 없다. 살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꼭 눈으로 보는 것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꼭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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