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그때 나는 몸이 얼어붙는 줄 알았다. 여름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중학생, 중학교 3학년이 되도록 이성에 눈을 뜨지 못했다. 남들은 안타깝게 여길지 모르지만 그것대로 불편한 점은 없었다. 하지만 친구는 일찍부터 이성에 눈을 떴다. 한 동네에서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초등학교를 들어가서도 자주 붙어 다니며 놀았다. 뭘 하고 놀던 항상 재미있었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주로 상상력을 동원해서 놀아야 했다. 지금처럼 컴퓨터 게임이나 휴대전화로 다양하게 놀 수 없었기 때문에 동네의 어딘가를 아지트로 삼고 만화 속 주인공들이 되어서 뛰어놀곤 했다. 보자기를 등에 묵었다는 이유로 슈퍼맨이 되기도 했고, 사이보그가 되기도 했다. 상상력으로 노는 건 재미있었다. 머리로 생각하는 건 모든 것이 다 되는 우리만의 세계였다.
우리는 초등학교 6년을 같이 다니며 자랐다. 고학년이 되었을 때 친구와 내가 조금 다른 타입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주로 동네 친구들과 밖에서 뛰어다니며 노는 걸 즐겼고, 친구는 나의 여동생과도 같이 놀았고 집 안에서 노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든 집 밖으로 나가서 놀려고 했다. 그저 친구들과 뛰어다니고, 넘어져 무릎이 까지고 아파도 그렇게 노는 게 좋았다. 그렇다고 해서 친구와 내가 붙어 다니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문방구에서 드래곤볼 종이 게임을 구입해서 우리는 같이 집에서 하곤 했다. 카드놀이나 브루마블 게임이 썩 재미는 없었지만, 여자들 남자들 다 같이 할 수 있어서 우리는 종종 모여서 하곤 했다.
일요일 오전에는 동네의 아이들이 오전 8시에 전부 나와서 동네 청소를 했다. 그건 학교에서 하는 봉사활동의 한 종류로 동네마다 초등학생들이 그렇게 했다. 일요일에 일찍 일어나는 건 죽기보다 싫었지만 일단 일어나 모여서 청소를 하다 보면 그 시간이 꽤 재미있었다. 출석체크를 하고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모여서 놀았다. 평일에 노는 것과 달리 묘한 쾌감이 있었다. 평일에는 이렇게 많은 동네의 남녀 아이들이 한 번에 모여서 놀 수 없다. 하지만 일요일 오전에는 그게 가능했다.
청소를 하고 나면 동네 어른들에게 칭찬까지 들었기에 일요일 오전에 청소하는 게 싫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남녀 아이들이 모여서 놀다 보면 고학년들은 이성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친구는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었다. 우리 학교의 육상부로 친구의 옆집에 살고 있었다. 우리보다 한 살 아래였는데, 우리와 함께 잘 어울려서 놀던 여자애였다. 육상부라 그런지 다리가 길고 키가 또래보다 컸다. 친구는 고학년이 되면서 나보다 10센티미터 이상, 키가 자랐다. 친구는 그 애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았다. 만나면 그 애 이야기 밖에 하지 않았다. 친구의 공책을 보니 몇 페이지에 걸쳐 그 애의 이름만 적어 놨다.
친구는 6학년 주제에 여자 문제로 늘 고민이 많았다. 뭔가가 생각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6학년을 지나 중학생이 되었다. 친구와 나는 같은 중학교가 아니었다. 중학생이 되고 같은 동네에 살지만 주말에나 만나서 놀 수 있었다. 친구는 중학교에 가고 나서 부쩍 키가 더 커졌다. 더불어 관심은 온통 이성에 가 있었다. 친구에게 옆 집에 살던 그 여자애와 잘 되는지 물었다. 좋아한다고 말했다가 거절당하고 관계만 어색해졌다. 지금은 다른 여자애를 좋아하고 있었다.
나는 그 무렵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하느님을 믿어서 다니는 건 아니었고 고모가 나를 데리고 교회를 가서 주일에 교회를 가게 되었다. 여름 방학에는 평일에도 교회에서 살았다. 교회에는 지하에 독서실이 있어서 거기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공부를 하러 가는 건 아니었지만 시원했기에 매일 가게 되었다. 독서실에는 고등학생 누나부터 동기들까지 여자애들 남자애들이 가득했다. 교회 곳곳에서 데이트가 한창이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이성에 눈을 뜨지 못했다. 데이트를 한다고 해서 딱히 기분이 좋다거나 하는 것에 대한 동경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친구와 나는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그 사이에 친구는 여러 명의 여자애와 사귀고 헤어졌다. 친구의 말로는 사귀었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때에는 만나기도 전에 늘 일방적으로 차인 것 같다. 친구는 야한 사진집을 어디서 구해왔는지 나에게 보여 주었다. 그 속에는 금발의 섹시 미녀가 다리를 벌리고 야시시한 미소를 띠며 나를 보고 있었다. 난생처음으로 여성의 그곳을 봤다. 그 순간 그 사진에 매료되었다. 그렇게 여체에 사로잡히게 되기 전 교회에서 나는 레브레터를 한 번 받았다. 토끼 같다고 시작하는 편지는 내가 마음에 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이성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 무반응으로 편지를 준 애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다.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에는 청년부 선생님을 대동해서 계곡으로 놀러 갔을 때 한 살 많은 누나가 내 옆을 지켜 주었다. 나는 계곡에서 옷을 입고 헤엄을 치고 놀다가 혼자서 먼저 집으로 왔는데, 그 누나가 동행을 해 주었다. 입고 있던 옷이 덜 말라서 버스를 탔다. 버스 뒷자리에서 옆으로 옮기면 누나는 다시 엉덩이를 붙이고, 조금 옮기면 다시 붙이고. 생각해 보면 그 누나는 나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도 나는 표현이 없었다. 하루는 책상에 손을 짚고 있었는데 그 누나는 내 손에 바지의 앞섶을 갖다 대었다. 나는 손을 뗄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나는 그 이후로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중 3이 되었을 때 야한 사진집을 보여주던 친구는 나를 불러서 야한 비디오를 보여주었다. 포르노였다. 대단했다. 둘 다 눈을 떼지 못하고 침도 삼키지 못하고 비디오를 봤다. 그 뒤로 나는 확실히 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니 주위에 있는 아이들에게서 그런 잡지와 영상을 빌릴 수 있게 되었다. 포르노 잡지는 친구와 함께 옥상에서 몰래 보았다. 친구는 여전히 이성에 관심이 많았고, 좋아한다고 고백을 하고 거절당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친구의 단점이자 장점은 거절당하면 빠르게 마음을 접고 다른 이성에게 관심을 보였다.
우리는 아직 중학생이었고, 이성과 성에 눈을 떴을 때였다. 친구의 집에는 옥상이 있고, 옥상은 옆집과 뒷집의 옥상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여름 방학이면 친구의 집 옥상에 텐트를 치고 일주일 씩 놀곤 했다. 각자 집에서 음식을 들고 와서 먹기도 하고, 부모님 몰래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불렀다. 야한 잡지책을 보면서 중학생 시절의 여름밤을 보냈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녀석의 키는 더 커졌다. 교복을 입으면 멋있었고, 꽤 여러 이성 친구를 만났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나 역시 미팅을 해서 여고생과 극장에서 영화도 보고 같이 어울려 놀면서 점점 이성에 빠져 들었다. 우리는 좀 더 자랐고, 옥상은 조금 더 작아진 것 같았다. 이렇게 시간의 흐름은 모든 풍경을 조금씩 바꿔 놓는다. 옥상에는 우리만의 텐트가 있고, 텐트 속에는 잡지책도 가득 있고, 술도 있었다.
어느 날 밤, 우리는 집에서 몰래 들고 온 음식과 함께 소주를 마시는데, 친구가 여자 벗은 몸을 실제로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당연히 없지. 그렇다면 이번 금요일 오후 세 시에 옥상으로 오라고 했다. 오후 세 시면 너무 더울 시간인데. 저녁에 오면 안 될까? 친구는 그때와 보면 안다고 했다. 친구네 집 옥상은 계단을 두 번 올라야 한다. 계단을 타고 오르면 작은 옥상이 나오는데, 이 작은 옥상은 대문 위의 옥상이고 거기서 다시 계단을 타고 오르면 본격적인 옥상이 나온다. 여름에는 태양열을 그대로 받아서 옥상이 더운데, 당시에는 에어컨 없이 생활했기에 그렇게 더운지 잘 모를 때였다. 더우면 등목 하면서 지냈는데, 등목을 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