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에세이
자야는 당시의 여성으로는 보기 드물게 인텔리 여성이었다. 과부인 어머니가 깨어난 여성이라 공부와 개혁이 필요하다고 느꼈지만 일본이 다른 모든 산업을 막고 광산업만 허락한 조선에서 광산의 붐은 많은 조선 사람들을 나락으로 떨어트렸다.
자야의 집은 마당과 안채, 별채가 있는 좋은 집이었지만 사촌이 집문서를 훔쳐 광산 사업에 투자를 했다가 망하여 자야는 기생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공부의 끈을 놓지 않고 그녀의 영험함을 알아본 조선어학회에서 그녀를 일본으로 유학을 보낸다.
기생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공부의 길을 열게 해 준 어학회 선생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본에서 공부를 한다. 그러던 중 어학회의 최순자(해방 후 재무부 장관과 국회부의장을 지냄) 선생이 동경 청년회관에 볼일을 보러 왔다가 자야를 만나서 놀라운 소식을 전한다.
자야를 일본에서 하와이로 유학을 보내 조선의 여성 일꾼을 만들고자 논의 중이라는 귀한 소식을 듣고 준비하라는 말을 듣는다. 그런데 소식이 감감하여 알아보니 조선어학회의 몇몇이 구속되어 함경남도 홍원의 형무소로 수감이 되었다.
자야는 자신의 은인인 선생이 옥중생활을 하고 있어서 먼 길을 가서 면회를 요청하지만 일본인 옥리는 그 앞에서 단 번에 거절을 한다. 자야는 조선어학회 민족지사들이 갇혀 있는 함경도 땅을 벗어나지 못하고 함흥에서 엉거주춤 머물게 되는데 그해가 1936년이었다.
자야는 다시 기생이 되어 큰 연회에 참석하여 함흥 법조계의 유력한 인사를 만나 면회를 허락받을 요량이었다. 하지만 훨씬 시간이 지나서 알았지만 민족주의자나 사상범은 일체 면회가 되지 않았다.
일본은 한국에 드디어 한국말 사용을 금했고 치욕의 경술국치 이후 조선 사회의 역사를 뒤엎어버리려는 일제의 흉포한 식민지 학정이 이루어지는 어려운 시기였다. 그 무렵, 자야는 함흥 영생 고보의 한 영어교사를 만난다.
그날 자야는 함흥 권번에 소속이 되어 함흥에서 가장 큰 요릿 집안 함흥 관로 나갔던 첫날이었다. 자야는 옥중 해관 선생을 만나기 위해 타관 객지에 잠시 와서 머물고 있는 처지였고, 서울에서 바람 센 함흥 땅으로 부임해 와 있는 멋쟁이 영어교사, 시인 총각 백석이었다.
두 사람은 그 어려운 시기에 첫눈에 사로잡혀 사랑을 하게 된다. 백석은 연거푸 술잔을 기울이고 용기를 얻어 자야의 손목을 잡는다. 꽉 잡힌 자야의 손목에 불꽃 튀는 사랑의 메시지가 뜨거운 전류처럼 화끈거리며 전달이 되었다.
백석은 그 자리에서 자야에게, 오늘부터 당신의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엔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 라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예상치도 못한 백석의 말에 자야의 귀는 놀랐고 의심했지만 부드럽고 다정스러운 백석의 말소리는 자야의 뇌리를 찔러서, 허전한 소녀의 텅 빈 가슴에 화살처럼 마구 내려 꽂혔다.
백석은 마누라의 아호를 자야라고 짓고 두 사람은 힘들고 아픈 사랑을 하게 된다. 그때 백석은 약관 26세로 동경의 아오야마 학원 영문과를 졸업한 준재였고 이미 ‘사슴’이라는 시집을 발간한 시인이었다.
19세였던 1930년 조선일보 현상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와 아들’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으며 백석은 소설보다 고향의 정경과 토속적인 풍물을 노래한 시에 관심이 많았다.
1934년 이후 조선일보 기자로 일했었고 그곳에서 발행하던 잡지 ‘여성’에서 편집을 맡아 일했다. 그리고 3년 동안 일해온 신문사를 그만두고 1936년 4월 서울을 떠나 함흥의 영생 고보에서 교편을 잡게 된다.
축구도 잘했고, 이국적인 곱슬머리에 미목이 수려하며 결벽에 가까운 깔끔함이 백석이었다. 당시 서양화가 정현웅은 ‘문장’에 친구인 백석의 프로필을 그리면서 삽화에 그에 대해서 말했다.
‘미스터 백석은 동상과 같이 아름답다. 미스터 백석은 서반아 사람도 같고 필리핀 사람도 같다. 미스터 백석에게 서반아 투우사의 옷을 입히면 꼭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백석은 자야와 영화 같은 사랑을 하게 된다. 당신만 아는 이름 ‘자야’, 모던 보이와 북관의 여인들, 바다 같은 사람, 나와 나타샤 등 두 사람의 이야기는 소설을 넘어선다.
‘내 사랑 백석’은 백석이 지어준 아호 ‘자야’, 김자야 여사의 짧은 사랑, 긴 그리움으로 쓴 에세이다. 에세이라고 하지만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보다 더 애틋하고 안타깝다. 일제강점기에 사랑을 하게 되어 그를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고 가슴에 품고 살았던 김자야 여사, 자야의 사랑 이야기.
요즘처럼 ‘사랑해’라는 의미가 퇴색된 지금, 오직 사랑이라는 그 의미에 사무치게, 개츠비가 데이지를 향했던 것처럼 이루어질 수 없어서 더 아름다웠던 백석과 자야의 러브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