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모두가 공감을 하는 바, 고흐의 그림은 오랫동안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한참을 보다가 풍경에 질릴 때쯤이면 붓 터치에 매료되어서 또 한참을 쳐다보게 된다.
예전에는 폰으로 그림을 따라 그려보고 근간에는 마우스로 그림을 따라 그리는데, 고흐의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 멍하게 그저 마우스를 움직여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 점이 정말 좋다.
아메리칸 파이를 부른 돈 맥클린도 고흐의 그림이 너무 좋아 빈센트라는 노래를 불렀다. 스타리 스타리 나잇 하며 시작되는 노래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신승훈이 돈 맥클린보다 더 잘 불러서 예전에는 신승훈의 노래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고흐가 37살에 죽기 2주 전에 완성한 그림 ‘까마귀 나는 밀밭’에는 고흐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까마귀의 날갯짓과 바람의 방향, 색채의 대비, 좁아지는 밀밭길 등,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고흐는 자신과의 싸움 끝에 쓸쓸하고 자괴감에 빠진 고흐를 말하고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이란 참.
고흐는 죽기 전까지 테오에게 자그마치 600통이 넘는 편지를 썼다. 그 편지를 묶어서 책으로 나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고흐의 편지를 읽으며 그의 아픔에 조금 다가갔다. 그 편지 속에 고흐는 자신의 감정이 변해가는 심정과 고갱과의 마찰, 감자 깎는 농부들을 그리기 위해 두상 스케치를 무려 40번 가까이해가며 농민이나 서민들의 모습을 담아내는 모습이 애달프다 못해 안타까움마저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동생 테오를 사랑했고 그에게 받은 돈으로 미술도구를 구입하는 것을 무척 미안하게 생각했다. 고흐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법을 모르는 완전히 실패한 삶을 살았다. 인간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것은 모두 포기했다. 그는 가정을 이루는 것도, 생계를 유지할 수단도, 심지어 타인과 관계를 맺는 법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그림을 그려서 자신을 현실과 타협을 맺게 하는 것뿐이었다. 이런 사람에게 동생은 끊임없이 지원을 해 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것이 바로 테오의 부인이 동의를 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당시에도 생계의 기본적인 유지가 안 되는 사람에게 돈을 매달 보내주는 걸 허락할 여자는 없었을 것이다.
단순히 남편의 형이기에 도와줘야 한다는 방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테오 역시 그렇게 형편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면 테오의 부인은 어떤 여자였을까.
테오의 부인은 어쩌면 미래를 예견하지 않았을까. 촉이 고흐의 그림을 알아본 것이다. 그렇기에 생활에 있어서 생산적인 활동을 전혀 할 수 없는 남편의 형, 고흐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테오의 부인은 고흐가 정신병에 시달리고 있고 그것이 곧 죽음을 물고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오래전에는 지금처럼 이런저런 치료방법이 다양하지 않았고, ‘병’은 ‘죽음’이라는 방식이 성립되었던 시기였다.
결국에는 테오도 죽고 고흐의 그림은 테오의 부인인 요안나가 모두 관리하게 되었다. 이건 어떤 면으로 굉장한 재테크일까. 가만 생각해보면 무섭기도 하고 참 현명하기도 한 테오의 부인이 더더욱 궁금해진다. 누가 요안나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실 분?
라고 쓰고 나서 며칠이 흘러가는 동안 요안나에 대해서 좀 알아봤습니다. 그녀는 테오와 보낸 시간들을 완벽한 행복한 날들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큰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빈센트라고 지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평생 고흐의 그림을 지켰다고 합니다.
요안나는 사람들에게 고흐의 그림을 활발하게 선보였고 고흐의 편지를 날짜별로 정리를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읽고 있는 테오와 주고받은 고흐의 편지를 자비를 들여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요안나 덕분에 고흐 그림의 진가를 사람들에게 알리게 되었습니다.
요안나에 대해서 검색을 하고 찾아보니 흥미로운 일들이 꽤 있더군요. 재미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