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2.
그렇지만 그녀가 매운 음식을 먹으러 가자고 해도 나는 불만이 없었다. 매운 음식을 주문해도 맵지 않은 반찬에 밥을 먹으면 그만이었다. 그녀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나에게 지쳤는지, 어느 날 친구 커플과 함께 맵기로 유명한 낙지볶음을 먹으러 가세 세 명이 나에게 그걸 먹기를 바랐다. 모두가 그동안 내가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 불만이 없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내 앞에 제일 매운 단계의 낙지볶음이 놓여 있었다. 내가 먹어야 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어쩔 수 없이 매운 낙지볶음을 먹었다. 나는 고통스러웠다. 고통스러워했다. 세 명은 나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했다.
친구 커플은 그동안 그러지 않았는데 어째서 나에게 죽창을 찔러대는 것일까. 삶이 무료할 때 그들은 희생양을 찾았고 그게 나였다. 자신들보다 약자면 더 비난하고 약자라고 느끼게 만든 다음 고통에 즐거워한다. 그리고 모든 불행은 약자의 탓으로 돌린다. 나는 가장 매운 낙지볶음을 먹고 고통스러워하다가 얼굴에 발진이 나고 숨을 가쁘게 쉬다가 그 자리에 쓰러져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음식점 주인이 놀라서 119를 불러 나는 응급실에 와서야 진정이 되었다. 내가 먹는 낙지볶음을 캅사이신을 부어서 더 맵게 해달라고 미리 말을 해 놓았다. 주인은 약간의 돈을 더 받았다가 크게 놀라고 말았다.
나는 세 사람과 관계를 끊었다. 친구 커플은 후에 나를 찾아와 만나기를 바랐지만 전부 거절했다. 누군가의 고통으로 즐거워하는 사람은 살인자보다 더 나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 대한 미움이 컸고 점점 분노로 가득 찼다. 어린 시절의 그 녀석 때문에 나는 친구를 사귀는 것이 어려웠다. 친구가 없는 편이 나에게 나았다. 타인의 고통으로 즐거워하는 사람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더 미웠다. 친구커플이 찾아왔을 때 나가서 욕이라도 퍼붓고 싶었지만 나는 그러질 못했다. 그런 내가 가장 미웠다. 나 자신에게 제일 분노했다. 나는 모든 것이 싫어서 스무 살이 되자마자 입대했다. 군대에서 타 지역에 사는 선임이 나를 타깃으로 지정하고 괴롭혔다. 구타를 할 때에는 표가 나지 않는 곳을 골라서 폭행했다.
주로 워커를 들고 앞부분으로 머리를 내리찍었다. 그러면 맞아서 혹이 생겨도 겉으로 전혀 표가 나지 않았다. 맞는 건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 건 힘들었다. 그 선임 혼자 나를 사람 취급하지 않으면 또 괜찮았지만 자기 밑으로 전부 나와 같이 있거나 나에게 말을 걸면 폭행을 휘둘렀다. 나는 중대장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중대장도 그 선임을 한부로 대하지 못했다. 아버지 백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후 야간 근무 시간이 가장 안 좋은 2시부터 4시까지만 섰다. 점오 후 잠이 좀 들었다 싶으면 일어나서 야간근무를 나가야 했고, 근무가 끝나고 들어와서 바로 잠들기도 힘들었다. 곧 아침이기 때문이다. 아침 점오시간에 일어나지 못할까 봐 눈뜨고 기다리기 일쑤였다.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늘 잠이 부족했고 졸다가 그 선임에게 들켜 세탁실에 끌려가서 군화 앞부분으로 머리를 엄청나게 맞았다. 사람을 이렇게도 괴롭힐 수 있을까. 악마로 태어나지 않고서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누가 실수로 내 머리를 건들기만 해도 나는 경기를 일으킬 판이었다. 중대장이 바뀌고 나에게 부당한 대우에 관한 것들을 이야기하라고 했다. 나는 망설이다가 새로 온 중대장에게 이야기를 했고 중대장은 그 선임을 영창에 보냈다. 그 뒤로 나의 군 생활은 더 꼬이기 시작했다. 나를 괴롭히는데 이유는 없었다. 싫어하는 것에 딱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괴롭히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폭언을 쏟아내고 주먹을 휘두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자연스러운 일이 틀어졌을 때 분노하고 분노를 어떤 식으로든 표출한다.
그 선임은 휴가 때 키우던 강아지에게 휘발유를 불어서 불을 붙여 강아지가 심한 화상을 입어 죽기 일보적전의 모습을 인터넷에 올렸다. 그 일이 언론을 탔다. 하지만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나를 구타한 일로 영창을 갔지만 곧바로 풀려났다. 중대장 역시 불이익으로 전출을 갔다. 선임은 아버지 덕에 별 탈 없이 잘 넘어갔다. 그런 인간이 점점 괴물이 되어갔다. 설명이 불가능한, 태생이 그런 인간이 우리 삶 속에 숨어 살고 있다. 운이 없으면 그런 인간에게 걸려 타깃이 되어 인생이 망가지기도 한다. 그런 인간은 타인을 망가트리고 불행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한다. 그저 즐거워하는 일이 타인을 괴롭히는 것뿐이다.
그들은 지금 뭐 하면서 지낼까. 곰팡이를 오랫동안 보면서 예전의 일들이, 잊어버리고 싶었던 일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물품 하나하나, 구석의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떠올랐다. 만약 내가 그들을 다시 만난 다면 어떤 행동을 취할까. 그들을 살면서 다시 보리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다. 그들은 나의 아픈 상처다. 더 이상 아픈 곳을 건드리기 싫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 시간이나 곰팡이를 보았다. 곰팡이는 미세하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커져갔고, 좀 더 검은색이 짙어졌다. 축축한 물도 많이 흘렀다. 다음 날 곰팡이가 제거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들었을 때 곰팡이는 물을 잔뜩 흘렸다. 그 물이 쪼그려 앉아있던 나의 신발에 달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