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
아파트 현관에 곰팡이가 피었다. 자정을 넘겨 집으로 올라가는데 바닥에 핀 곰팡이를 발견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보란 듯이 곰팡이가 생겼다. 사람들은 곰팡이가 피었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며칠이 지났지만 누구도 곰팡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청소하는 아주머니들도 그 곰팡이를 피해서 바닥을 청소했다. 집으로 올라가면서 곰팡이를 유심히 보게 되었다. 곰팡이는 주위가 촉촉한데 곰팡이가 계속 물을 흘리고 있었다. 곰팡이에서 나온 물은 흘러 흘러 엘리베이터 틈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곰팡이가 어떻게 시멘트 바닥 같은 곳에서도 자라는 것일까. 곰팡이는 어디서나 존재한다. 인간이 생활하는 집과 일터의 습기가 있는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곰팡이의 포자가 대량으로 존재할 경우 인간에게 건강 상 위험을 줄 수 있다. 잠재적으로 알레르기 반응과 호흡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인간은 곰팡이를 이용해 치즈나 소시지, 된장 같은 음식을 생산한다.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곰팡이다. 곰팡이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러나 아파트에서 내가 보는 곰팡이는 흔한 곰팡이가 아니다. 이상했다.
한 번 보기 시작하면 한 시간은 곰팡이를 보다가 올라왔다. 거부할 수 없는 공명이 느껴졌다. 이상했다. 곰팡이는 마치 나에게 뭔가를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다음 날 밤에는 곰팡이가 좀 더 커졌다. 곰팡이는 스스로 양분을 만들어 살아갈 수 없는 종족영양생물이다. 습한 곳에 살고 있지만 아파트 현관 바닥은 습하지 않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앞에는 해가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습하지도 않다. 곰팡이가 도저히 피어날 수 없는 환경인데 바닥에서 피어나서 번식을 하고 있었다. 그다음 날 밤에는 곰팡이에서 물이 많이 나왔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 관리실에도 연락할 수 없었다.
오전에 나오면서 관리실에 문의를 했다. 관리실에는 현장 직원들은 없고 사무 보는 직원만 앉아 있었다. 30대 여자로 보였다. 현장 직원들이 전부 각 호수에 가서 집집마다 피어있는 곰팡이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마무리가 되면 바로 아파트 현관 바닥의 곰팡이를 제거하는데 투입하겠다고 했다. 퉁명한 말투다. 퉁명한 말투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안 된다. 다정함이 세상을 구한다고 했다. 물론 나에게는 다정함이 없다. 나도 알고 있다. 주위도 알고 있다. 다정함이란 이름처럼 태어날 때 달고 태어나는 것이다. 이름과 다른 점은 질량처럼 양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다정함은 크기나 길이가 변한다.
나에게 퉁명하게 말하는 관리실 직원은 달고 태어난 퉁명함은 아니었다. 어딘가에서 옮겨 붙은 퉁명함이었다. 곰팡이처럼 몸에 피어난 퉁명함이다. 이런 퉁명함은 문제를 일으키기만 하지 해결하지는 못한다. 곰팡이는 집구석구석 피어난다. 크고 작은 곰팡이가 피어나서 주민들이 관리실에 스트레스를 주고 있었다. 자기 집 곰팡이 정도는 살고 있는 사람이 해결해야지 왜 관리실에 명령조로 부탁할까. 아프트는 오래됐고 살고 있는 사람들은 부유하지는 않다. 관리비를 내고 있으니 관리비를 받는 관리실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넉넉하지 않기에 관리비가 늘 많이 들어간다고 주민들은 불만이다.
오래된 아파트이기 때문에 관리가 관건이지만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의외로 청소에 소홀했다. 방역을 주기적으로 하고 있지만 거부하는 사람도 많다. 방역만 제때제때 한다면 집에 곰팡이가 피어나거나 벌레가 나타나지는 않는다. 나는 한 번도 방역을 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일을 하러 나가고 난 후에 항상 방역작업이 이뤄진다. 아파트 현관에서 본 곰팡이가 일하는 동안 내내 마음에 걸렸다. 솔직히 그대로 놔두어도 나에게 피해는 없다. 잊으려 해도 이미 본 곰팡이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뇌의 어느 구간에서 피어나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집으로 오면서 곰팡이를 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자정이 다 돼서야 집에 도착했기에 그 시간에는 곰팡이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곰팡이를 심도 있게 들여다보면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곰팡이를 보고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떠날 수 없었다. 곰팡이가 나를 붙잡는 것 같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린 시절부터, 첫사랑이었던 여자, 군대 시절의 선임까지. 선명하게 떠올랐다. 어릴 때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 옆집의 그 녀석이 장난감을 빼앗아가곤 했다. 나는 그 녀석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 녀석은 나보다 두 배나 컸다. 내 장난감을 빼앗아간 후에 나를 밀치며 즐거워하던 옆집의 그 녀석 얼굴이 기억났다. 기억하기 싫었던 얼굴이었다.
그 녀석은 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보다 열 배는 비싸고 좋은 장난감이 많다. 나의 장난감을 빼앗아가서 그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게 아니라 박살 내 버렸다. 내가 울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던 녀석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우리 집은 그 집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월세를 잘 내지 못해서 부모님은 전전긍긍했다. 나는 아마도, 잘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때부터 분노가 커졌을 것이다. 집에서는 내가 그 녀석에게 괴롭힘을 당한다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힘없는 부모님도 그때는 미웠다. 그때에도 아버지는 방 안에 곰팡이가 많이 핀다고 청소를 자주 했었다. 그러나 청소는 곰팡이를 없애지 못했다.
이사를 가고 초등학교를 떠나면서 육 년 동안 괴롭힘을 당했던 그 녀석에게서 멀어졌다. 하지만 나는 어린 나이에 입은 상처가 컸다. 곰팡이는 내가 떠올리기 싫은 부분을 상기시켰다. 첫사랑이었던 여자는 내가 자신을 더 좋아한다는 이유로 나를 많이 부려 먹었다. 그래도 같이 있을 수 있다면 나는 상관없었다. 그만큼 그녀를 사랑했었다. 그녀는 매운 음식을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전혀 먹지 못했다. 내가 매운 음식을 못 먹는 건 싫어해서가 아니라 먹으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피부가 발진에 걸린 것처럼 붉은 점막이 도돌도돌 올라왔고 심하면 짓물러졌다. 꼭 곰팡이 같았다. 보기 싫었다. 얼굴에 곰팡이가 피었다고 아이들이 놀렸다. 피부가 불에 타오르는 것처럼 아픈 것보다 보기 싫게 변하는 얼굴이 더 싫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