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가 피었다 3

소설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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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러자 곰팡이의 물이 그대로 흡수가 되었다. 곰팡이의 물이 내 몸 안으로 들어왔다. 그날은 꿈을 꾸었다. 어린이가 나왔다. 어린 시절의 나였다. 나는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얼니 시절에 옆집의 그 녀석이 너무 괴롭혀서 대부분의 얼니 시절의 기억은 그때로 집약되어 있었고 그 기억은 호러블 한 것이었다. 그 녀석은 성냥에 불을 붙여 내 옷에 던지기도 했다. 옷에 불이 붙어 너무 무서웠다. 불을 끄기 위해 울면서 땅바닥에 몸을 굴렸다. 그 녀석의 얼굴을 떠올리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꿈속에 나타난 그 녀석이 동네의 다른 아이를 괴롭히고 있었다. 세워놓고 작은 돌을 던져 맞히면서 놀았다. 나는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나처럼 괴롭힘을 당하는 그 아이를 위해 나서지 못했다. 그때 그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그 녀석이 괴롭히는 타깃을 나로 바꾸었다. 도망가고 싶었지만 압도적인 그 녀석의 모습에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다시 한번 그 녀석과 마주친다면 나는 그 녀석을 개구리로 만들고 싶었다. 나를 묵어 놓고 개구리를 내 입에 넣었다. 그때 너무 징그럽고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았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다. 개구리가 눈앞에서 개굴개굴 하며 입으로 들어왔을 때 그 이상하고 더럽고 무서운 기억. 그 녀석이 나를 괴롭히려 다가왔을 때 나는 피하지 않고 그 녀석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그 녀석은 온데간데없고 개구리 한 마리가 앞에 있었다. 그동안 그 녀석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아이들이 와서 개구릴 잡아서 해부했다. 그런 꿈이었다. 꿈속에서 개구리는 해부되었을 때 배 안에 곰팡이가 가득 피어있었다. 눈을 떴을 때 손바닥이 축축해져 있었다. 마치 꿈속의 개구리를 손으로 만진 느낌이었다. 출근해서 일을 하는 동나 기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먹은 것도 없는데 배가 고프지 않았다. 해가 들지 않는 곳에 가면 맛있는 냄새가 자꾸 따라다녔다.


옷을 입고 밥을 먹고 다음 날 씻을 얼굴인데 왜 오늘 씻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아이들을 생각했다. 아이 때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과 어른이 되었을 때 인간군상 속의 내 모습에 대해서 생각했다. 천사는 어째서 인간이 되려고 했을까. 인간이란 점점 순수한 마음에서 벗어나 탐욕과 욕망으로 물들어갈 뿐이다. 죽기 싫어 타인을 죽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죽지 않는 것도 아니면서. 예술이 그동안은 인간의 타락을 막아주었지만 정치가 예술을 먹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정치는 진실을 사실과 다르게 말한다. 사람들은 그걸 진짜라고 믿는다. 믿고 싶은 것만 보면서. 인간의 일상은 언제까지 펼쳐질까.


유튜브에서 82년 쇼쇼쇼를 봤다. 그때는 엄혹한 시기였지만 이전까지 있었던 통금이 풀린 해였다. 민혜경이 아주 어린 모습으로 노래를 부른다. 사바사바 후렴구를 부른다. 2천 년이 오면 세상은 전쟁도 없고 미사일을 타고 우주로 마음껏 가게 되고, 모두가 행복하다는 내용의 노래다. 80년대는 2천 년대라는 게 너무나 먼 미래라고 생각했다. 노래 가사는 유치한데 민혜경이 노래를 너무 잘 부른다. 이 시기의 노래를 죽 들어보면 요즘이나 70년대 노래처럼 우울하거나 심란한 가사의 노래가 없다. 이용이 노래를 부르는데 전부 밝고 활기찬 미래, 앞날을 노래할 뿐이다. 가사는 대부분 유치하다. 70년대의 포크송만큼 가슴을 후벼 파는 가사나 리듬이 없다. 경쾌하고 밝은 가사뿐이다.


이때에도 윤시내는 중견가수로 소개를 한다. 윤시내는 지금이 더 젊어 보인다. 그때는 컴퓨터도 없고 휴대전화도 없어서 불편할 것 같지만 오리혀 훨씬 좋아 보인다. 움직이는 만큼 그 대가가 따라왔다. 지금보다 단순함이 확실했지만 당사자들은 그 시대를 보내기 위해 처절했다. 그 당시에 여기저기에 곰팡이가 많이 피었다. 사람들은 곰팡이를 제거하기 위해 시간을 냈다. 아이들도 학교에 핀 곰팡이를 제거했다. 곰팡이는 습기가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피어난다. 꽃을 보면 사람들은 기분 좋아한다. 곰팡이도 꽃처럼 피어난다. 곰팡이는 습한 곳에 피어나는 꽃과 같다. 곰팡이가 피어난 모습을 보면 마음의 고통이 심한 초현실 예술가가 그려 놓은 그림 같다.


천사는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기로 한다. 연필로 선을 가늘게 긋거나 굵게 그으면 그림이 된다는 걸 느끼고 싶어서, 추울 땐 손을 비비는 그 단순한 행동을 위해서, 귀찮지만 매일 자라는 면도를 하고 터키인 가게에서 마사지도 받으면서 하늘에서 천사의 눈으로 내려다보는 게 아니라 인간과 같은 눈높이에서 인간을 알고 싶어서 천사는 인간이 되기로 한다. 그리고 인간 세상에는 곰팡이도 있다. 무엇보다 흑백의 세계가 아닌 컬러의 세상을 위해서 인간이 된다. 평소에 하지 않았던 생각을 하면서 회사에서 일과를 보냈다.


이렇게 앉아서 생산적이지도 않은 작업을 매일 하면서 보내는 게 어떤 의미일까. 이런 곳에 앉아 있으면 세상을 알 수 없다. 보고서를 작성하다가 중간에 멈췄다. 퇴근 후 집으로 가다가 사고라도 당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일을 마치니 녹초가 된 것 같았다. 생각의 노동 강도가 크다. 자정이 다 되어서 집으로 왔다. 항상 시간이 이렇다. 회사까지 두 시간이 걸린다. 저녁을 밖에서 늘 사 먹고 오기 때문이다. 가끔 강변에 나가 흐르는 강물을 보기도 한다. 그러나 들어오는 시간은 비슷하다. 엘리베이터 앞에 검은곰팡이가 물을 많이 흘리고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 물을 만졌다. 끈적끈적하고 미끄덩거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일반 물처럼 투명하고 깨끗했다.


손가락으로 돌돌 돌려가면서 점성을 느끼려고 했다. 일반 물 같았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곰팡이와 있다 보니 한 시간 정도 시간이 흘렀다. 곰팡이는 나를 자꾸 붙잡았다. 곰팡이와 있으니 그동안 잊고 있었던, 잊고 싶었던 일들이 하나둘 생각났다. 그래, 나에겐 친구가 한 명 있었다. 명랑했고 쾌활해서 곁이 있으면 행복한 사람이었다. 반찬을 먼저 먹고 밥을 먹는 나에게 다가와서는 자신도 그렇게 먹는다면서 자기처럼 밥을 먹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아는 체했다. 우리는 친해졌다. 비공개 블로그를 만들어서 서로만 볼 수 있게 일기를 썼다. 말을 잘하지 않던 나 때문에 그 친구의 배려였다. 우리 둘만 볼 수 있는 일기였다. 하지만 비밀 블로그에는 그 친구가 남자친구 흉보는 이야기만 잔뜩 올라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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