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4.
그 친구는 남자들은 왜 다 그러냐고 나에게 묻기도 했다. 자위행위, 몽정, 그리고 섹스 체위 같은 것들에 대해서 질문을 남기기도 했다. 그 친구는 애인 때문에 힘들어했다. 힘들면 달려와서 나에게 이것저것 털어놓았다. 털어놓다 보면 금방 털고 일어나서 웃었다. 같이 있으면 심심할 틈이 없었다. 그 친구는 어느 날 모텔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애인의 변태적 성행위를 감당하지 못하고 대들다가 맞아서 죽었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녀는 숨을 쉬지 않았고 얼굴에서 피가 났지만, 애인은 옷을 벗기고 성행위를 즐겼다. 그 친구는 블로그를 통해 나에게 예약 메시지를 보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이야기와 애인의 어두운 모습이 무섭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동안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이었다.
애인은 구치소에 수감되었지만 변태적 성행위는 합의하에 이뤄졌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최종 선고는 3년이 고작이었다. 그 친구의 부모는 울면서 매달렸지만 법은 그들을 무시했다. 가장 정의로워야 할 법은 정의롭지 않았다. 나는 애인이라는 그 남자에 대해서 자주 검색하고 찾아봤다. 교도소 근처에도 가보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 남자를 잊지 않으려고 했다. 나의 옆에서 밝게 웃던 그 친구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쪼그리고 앉아서 곰팡이와 있다 보니 새벽 3시가 되었다. 몇 시간 동안 그 누구도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세상에는 알 수 없는 것들 잔뜩 있다. 나도 그 속에 속한다. 나는 곰팡이를 떼어 내서 집 욕조에 넣어 두었다. 일단 잠들었다. 아주 깊은 잠이었다. 마치 젤리 같은 것에 감싸여서 푹신푹신하게 잠든 것 같았다.
데쳐진 시금치처럼 삶긴 듯하게 푹 자고 나와서 그런지 회사에서 일을 하는데 업무처리가 신속했다. 내부에서 놀랄 정도였다. 오전에 일주일 분 업무처리를 했고, 오후에는 한 달 분량의 업무처리를 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편안함을 느꼈다. 바이칼 호수의 수면처럼 아주 잔잔했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언제나 알 수 없는 불안 때문에 업무가 지연되고 느렸다. 다른 직원에 비해 반려당하기 일쑤였다. 오늘은 8시 넘어 까지 잔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 앞으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었다. 석간을 보니 한 남자의 죽음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죽은 시간은 새벽 2시에서 3시경으로 배가 갈려 죽었다는 기사였다. 미스터리한 사건이었다. 누가 남자의 배를 가리고 그 안을 해부해 놓은 것처럼 죽였다. 뱃속에 곰팡이 포자가 잔뜩 피어 있었다.
기사는 미스터리하고 무서운 사건이라면서도 흐지부지하게 마무리를 했다. 원한에 의한 복수극 아닐까 하며 추측글들이 잔뜩 올라왔다. 죽은 남자는 너무 악독한 일들을 저질러 왔다. 요양원을 만들어 노인들을 구금하고 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음식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요양원에 들어가서 빨리 죽는 노인들이 늘었다. 또 그는 마약을 유통시켜 돈을 갚지 못하는 여자들은 해외로 빼돌렸다. 괴롭힘으로 죽은 사람이 지금까지 여섯 명이나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이고 싶어 했지만 법적으로 피해 요리조리 도망 다니는 그를 어쩌지 못했다. 그런데 배가 갈리고 그 안에 곰팡이가 피어 죽었다. 경찰은 수사방향을 돌렸지만 용의자를 찾을 수 없었다.
죽은 남자가 누구인지 나는 안다. 내가 죽이고 싶었던 그 녀석이었다. 그러나 나는 죽이지 않았다. 죽이고 싶은 마음이 죽을 만큼 들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인간이다.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내가 알고 있는 그 녀석이 죽었다고 해서 마음의 동요가 일지는 않았다. 기쁜 것도 없었고 그렇다고 슬프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평온하고 편안했다. 그 녀석은 결국 개구리처럼 해부가 되어 죽음이 이르렀다. 세상의 여러 죽음 중에서 가장 불행한 죽음일지도 모른다. 그 녀석이 죽은 시간이 내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곰팡이를 쳐다보고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제 회사에서 잔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 집으로 일찍 들어왔다. 10시 이전의 세상은 인공광원으로 낮보다 더 밝은 것 같았다.
8시의 도심지는 그야말로 찬란했다. 사람들이 낮보다 더 많았다. 그래 나도 이런 찬란한 밤을 즐겼던 때가 있었다. 친구가 살아있었을 적 단골 선술집에서 차가운 소주를 같이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선술집은 마늘꼬치도 팔았다. 저렴했고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소주를 마셨다. 그렇게 밝고 재미있을 수가 없던 친구였다. 이제 그 선술집에는 가지 않는다. 그 앞까지 갔다가 근처에서 국물이 있는 음식을 한 그릇 사 먹고 집으로 왔다. 곰팡이가 물을 잔뜩 흘려 찰랑 거릴 정도가 되었다. 나는 옷을 벗고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더없이 평온해지는 느낌이었다. 상처 났던 피부가 아물었고 건조했던 등도 촉촉해졌다. 안 좋은 기운들이 몸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젠 아무리 매운 음식이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건 그냥 알 수 있는 것이다. 밥을 꼭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음식 따위 왜 매일 몇 번이나 먹어야 할까. 먹으면 배설을 해야 하고 불편하기만 한데, 음식을 먹지 않으면 사람은 죽는다. 하지만 음식을 많이 먹어도 사람은 죽는다. 죽는 것에 시간이 든다. 공을 들여 사람은 죽는 것에 점점 다가간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음식을 필요로 하는 만큼 먹는 사람은 드물다. 심심해서 먹고 맛있어서 먹고 누군가 먹으니까 먹는다. 곰팡이가 나를 바꾸고 있다. 오늘 이전의 나의 모습에서 벗어나고 있다. 나는 안다. 그러고 있다. 다음 날 한 남자가 자신의 집 욕조에 빠져 죽은 기사가 났다. 그 남자 역시 욕조 밖으로 내민 얼굴에는 곰팡이가 잔뜩 피어 있었다. 나는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안다. 군대 있을 때 나를 괴롭혀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 선임이었다. 그 선임은 아버지 백을 믿고 직업군인으로 수많은 후임과 병사들을 괴롭혔다. 죽은 병사 가족이 재심을 요구하고 가족들 모임을 만들었지만 소용없었다.
그 선임은 자신의 상관의 말을 듣지 않고 대들었다. 급기야 상관의 가족을 위협했고 육본에서 큰 문제로 삼았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아버지의 권력 덕분에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다. 선임도 점점 괴물이 되더니 급기야 괴물에게 잡혀 먹혀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괴물이 된 선임은 사람의 노력이나 힘으로 제지가 불가능하다. 그 선임이 죽은 시간 역시 내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는 시간이었다. 내가 죽이고 싶은 사람들이 죽었다. 내가 죽이고 싶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죽이는 건 옳은 일인가. 내가 죽이지 않았다. 그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죽인 것만 같은 이 손끝의 느낌은 무엇일까. 내 손끝을 파고 곰팡이가 옮겨간 기분이 들었다. 곰팡이에서 흐르는 물이 내 몸에 흡수되고 난 후 내 속에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꿈틀 되고 있다. 기분 나쁘지는 않다. 그렇지만 좋은 기분도 아니다. 곰팡이가 그 녀석과 선임을 죽였을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