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Aug 05.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73

8장 3일째

173.

 마동의 정신은 편안한 잠을 원했지만 육체는 잠 속으로 끌려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 불면에 빠진 사람들과는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메트로놈이 되어 육체와 정신의 세계를 박자에 따라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복도의 바닥은 신발이 닿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걷고 있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조명이 은은하여 눈에 피로가 덜했다. 아주 좋은 조명 같지는 않았지만 조명의 빛은 마동의 눈을 찌르지 않았다. 복도는 생각보다 길었으며 각종 검사실의 팻말이 붙은 문이 복도에 죽 있었다. 복도에는 포르말린 냄새가 나지 않았다. 대신 좋은 냄새가 났다. 냄새는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 지금 복도에 번지고 있는 냄새는 움직이는 것이다. 냄새는 충분히 움직일 수 있다. 맞아, 냄새는 움직이는 거야.


 새삼 냄새가 움직인다는 것이 놀라웠다. 게다가 복도는 동물원 기린의 몸속처럼 고요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소리와 빛 모든 것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이 좋은 냄새는 어디서 나는 냄새일까.


 분홍 간호사가 앞에 걸어가고 마동은 분홍 간호사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뒤따라가면서 분홍 간호사의 엉덩이를 보았다. 앉아 있을 때는 상상하기 힘든 엉덩이를 소유하고 있었다. 간호사의 엉덩이도 어쩐지 걸을수록 자꾸 풍만해져 갔다. 영화 속의 여배우처럼 풍만한 것이 아니었다. 분홍 간호사의 몸에 비해서 엉덩이는 점점 풍만해져 가는 것이다. 모르겠다. 설명은 늘 어렵다. 어쩌면 단지 그런 느낌이 들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엉덩이는 걸음을 걸을 때마다 마치 살아있는 고슴도치처럼 움직였다. 육체에서 분리된 새로운 생명체처럼 분홍 간호사도 엉덩이도 춤을 추며 복도를 걸었다.


 움직이는 좋은 냄새는 분홍 간호사에게서 나는 냄새였다. 병원의 대기실에서는 포르말린 냄새 때문에 맡지 못한 냄새였는데 외부와 단절된 복도에 들어오니 분홍 간호사의 냄새가 번진 것이다. 향수 같지만 향수 냄새라고 단정하기에는 무언가 모자람이 있었다. 인공적인 냄새가 아니었다. 지금 복도에서 움직이고 있는 이 냄새는 분홍 간호사의 몸 자체에서 나는 냄새였다. 분홍 간호사의 체취가 복도를 따라서 움직이고 있었다. 좋은 냄새다. 물에 탄 꿀처럼 달달한 냄새였다. 도취될 것만 같았다.


 이 작은 병원 안에 이렇게 오래 걸을 수 있는 복도가 존재한다니.


 “걱정 마세요, 고마동 씨. 이제 다 왔습니다. 검사할 때는 외부의 소리에 방해를 받지 않으려고 특수 제작된 검사실입니다." 분홍 간호사가 말했다.


 도대체 분홍 간호사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분홍 간호사가 고개를 돌려 미소를 지었다.


 맙소사.


 특수제작이라는 말은 오늘만 해도 벌써 두 번째다. 오늘은 전부 특수 제작되는 날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복도는 계속 이어졌다. 복도는 생각 밖으로 길었고 아늑했다. 일반적인 복도에서 전해주는 느낌이 아니라 안온하게 느껴져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어딘가로 들어가기 위한 연결 방편에 지나지 않는 복도가 이렇게 포근함이 들다니. 복도에도 에어컨 바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복도는 덥지 않았고 마동은 냉기도 느끼지 않았다. 그대로 복도의 바닥에 드러누워 잠이나 잤으면 좋겠다.라고 생각이 들 때쯤, 분홍 간호사가 자, 여깁니다. 하면서 복도에 붙어있는 많은 방 중에 한 곳의 문을 열었다.


 “복도에 붙어있는 많은 문들이 전부 검사실입니까?” 마동의 목소리는 원래의 목소리를 찾았다. 회사에서 겨우 나오던 쇳소리가 아니었다. 병원 내에서는 갈라지거나 쇠붙이의 소리가 나지 않았다. 분홍 간호사는 대답하지 않고 또 한 번 웃음을 보였다. 분홍 웃음이었다. 웃음을 지었을 뿐인데도 풍만한 가슴은 살아있는 듯 움직였다.


 맙소사.


[계속]



작가의 이전글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7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